[비즈한국] 12월 27일 정부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2018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경제정책방향의 과제 첫 번째는 일자리·소득 주도 성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하고 장하성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진두지휘하는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은 일자리 창출로 인한 소득 주도 성장이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증대와 이에 따른 일자리 확대가 결국 소득 주도 성장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한다. 일자리 증대의 핵심 키는 민간 부문의 투자 증가에 있다.
민간 부문의 투자 확대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대기업들이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 때문이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주식발행초과금)을 더한 것이다. 여기서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계속 사업을 전개하며 발생한 영업이익 중 배당을 제하고 남은 이익의 누적을 의미한다. 사내유보금에는 공장이나 점포 부지에 해당하는 유형자산, 재고자산,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등이 폭넓게 포함된다.
블룸버그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분석해 우리나라 10대 기업의 지난 3년간 사내유보금(각 그룹 계열사 사내유보금 총합) 현황을 살펴봤다. 상장된 모든 회사의 사내유보금은 2015년 759조 7570억 원에서 2017년 3분기 857조 9310억 원으로 12.92% 증가했다. 이 중 10대 기업이 보유한 사내유보금은 515조 650억 원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한다.
재계 1, 2위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유보금은 304조 3350억 원이다. 기업 전체 사내유보금의 35.47%에 달하는 규모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업 규모가 크고 제조업 특성상 사내유보금에 포함되는 투자자산, 유형자산 등이 큰 부분을 차지해 전체 금액이 크다.
같은 기간 삼성과 현대차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4년 12월 31일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14년 12월 31일 1조 6433억 원에서 2017년 3분기 2조 9559억 원으로 증가했다. 현대자동차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083억 원에서 1조 원으로 증가했다.
기업 규모가 커지며 자산이 증가하는 와중에도 일자리는 오히려 뒷걸음쳤다. 삼성전자 직원 수는 2015년 3월 9만 9927명에서 2017년 9월 9만 9836명으로 감소했다.
대신 삼성은 사내유보금을 활용해 자산 취득 규모를 늘렸다. 삼성전자의 유형자산은 연결기준으로 2015년 3월 83조 4424억 원에서 2017년 9월 109조 60억 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의 연결기준 유형자산은 23조 9663억 원에서 29조 7370억 원으로 증가했다.
기업들이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을 당장 임직원 임금이나 투자 활동에 모두 사용할 수는 없다. 예기치 못했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 활동에 긴급하게 큰 자금이 필요할 경우 사내유보금을 활용해 대응할 수 있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는 사상 초유의 리콜사태로 4000억~600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한데, 사내유보금을 여기에 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이 재벌의 곳간이 아니며, 경영활동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며 회계상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기업이 투자에 나서면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투자자산으로 회계 처리되고 사내유보금에는 변동이 없다.
하지만 현금성 자산과 기업 규모가 커졌으면서도 임직원 복지 확대나 투자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문제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대 기업이 최근 2년간 사내유보금과 토지를 늘렸지만 국내 투자는 도리어 줄였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30대 기업의 투자액은 415조 원으로 2014년보다 12조 7000억 원가량 감소했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투자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만들었다.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이 쌓아둔 사내유보금을 투자·주주배당·임금 등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과세해 기업들의 투자를 유인하는 제도다. 하지만 기업들은 투자 확대나 임금 인상보다 배당확대 정책을 펼쳐왔고, 기업들이 배당을 늘려 법인세를 줄이려 한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또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하고 계열사 지분을 확보하는 등 오너의 경영권 안정과 기업 이익을 위해 사내유보금을 활용해왔다. 물론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 매매 목적으로 사들이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물량이 줄어들어 주가가 부양되는 등 주주가치가 제고되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내유보금 활용은 기업이나 임직원이 아닌 오너의 이익이 선반영된 방식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경영권 승계가 필요하지만 기업 규모가 커질 대로 커져, 지배력을 강화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드는 삼성이나 현대차그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재벌은 오너 일가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자산이 기업주식이나 유형자산에 묶여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적다. 이럴 경우 회사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해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출자고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에는 계열사나 관계사 주식을 매입해 경영권 세습에 활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종속기업, 관계기업 공동투자 금액은 2014년 41조 원에서 2017년 55조 원, 현대자동차는 15조 5388억 원에서 17조 8063억 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5년 말부터 2017년 3분기까지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 증가율을 따져보면 삼성은 2.55%, 현대차 11.96%, LG 22.5%, SK 25.61%, 롯데 5.8%, GS 8.05%, 신세계 26.08%, 포스코 6.23%, 한화 23.31%, 현대중공업 45.49%이다.
금액으로는 삼성이 3년간 사내유보금 4조 7940억 원이 증가했고, 현대차 11조 8480억 원, LG 7조 1950억 원, SK 11조 6480억 원, 롯데 1조 3590억 원, GS 6510억, 신세계 1조 1810억 원, 포스코 2조 7390억 원, 한화 1조 9460억 원, 현대중공업 5조 7380억 원이다.
위기를 겪는 현대중공업의 사내유보금 증가율이 가장 큰 이유는 ‘경영개선계획’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보유하던 현대차·포스코·KCC 지분을 매각하고, 회사와 직접영업에 관련이 없는 유형자산을 대거 매각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중공업은 현금성 자산을 비롯한 사내유보금을 신규 투자에 당장 활용하지는 않고, 무차입 경영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꾀할 예정이다.
사내유보금 증가율 2위를 기록한 신세계그룹은 백화점 부문을 담당하는 계열사 신세계에서 2017년 3분기 사내유보금이 큰 폭으로 늘었다. 신세계가 보유하던 신세계프라퍼티 지분을 이마트에 매각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분간 신세계의 현금성 자산은 곳간에 잠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 2016년 하남, 김해 등 신규 점포를 내는 등 투자가 이뤄졌지만 2021년 준공되는 대전 사이언스콤플렉스를 제외하고는 당분간 신규 투자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10대 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내유보금은 임직원 인건비를 포함한 판관비를 제하고 난 다음 영업이익이 누적되는 것이라, 임금을 올려주고 말고와는 관련이 없다”며 “사내유보금은 곳간에 쟁여 놓은 현금이 아니라 투자에 사용하거나 당장 투자에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능성 있는 부지를 매입하는 등의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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