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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우리만의 책 있다" 작은 서점 탐방기

사진 전문 '이라선', 시 전문 '위트 앤 시니컬', 카페서점 '비플러스'…"전문·차별화된 콘텐츠 중요"

2017.12.28(Thu) 12:29:24

[비즈한국] 풍성한 음량의 선율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는 흡사 카페나 바(Bar), 때로는 미술관이 연상될 정도다.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손에 든 맥주는 바닥을 보인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종종 무대에서 펼쳐지는 음악공연은 덤이다. 온라인·대형 서점에 밀려 사라지던 작은 서점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재단장하고 있다. 여행·요리·시각예술 등 특정 분야 서적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맥주·와인 등의 주류를 함께 파는 서점도 있다. 서가를 배경으로 각종 문화공연을 선보이는 서점도 눈에 띈다. 

 

동네서점지도 앱을 만드는 퍼니플랜이 조사한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7년 7월 현재 전국에 총 277개의 작은 서점이 있다. 2017년에만 31개가 문을 열었다. 인디뮤지션 요조, 방송인 노홍철, 아나운서 출신 김소영·오상진 부부도 작은 서점 주인이 됐다. 출판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작은 서점을 직접 찾아가봤다.

 

# ‘집 안 서재’를 모티브로 한 사진책방 ‘이라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이라선’은 이 같은 대열에서 앞장선 서점들 중 하나다. ‘집 안 서재’를 모티브로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를 꾸민 이라선은 2016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이들이 취급하는 책은 오직 ‘사진집’뿐이다.  

 

이라선은 사진집 전문 서점이다. 사진=이라선 홈페이지


이라선의 서재는 국내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서적들로 구성돼 있다. 최근 출간된 사진집은 물론 유명 사진작가들의 작품집, 오래된 초판본·희귀 서적까지 갖추고 있다. 좋은 사진이 실린 신문, 잡지도 가리지 않고 들여놓는다. 사진·디자인·질감 등을 일일이 확인해 책들을 구비했다. 

 

그러다보니 이라선에 구비된 책들은 대형·온라인 서점이 취급하는 책과 결이 다르다. 죽어가는 서점업계에서 이들이 살아남은 주된 이유다. 운영자는 “대형 서점들은 이런 책들을 판매하지도 구하지도 못한다. 대형 서점 사진서가에 있는 책들은 10종도 되지 않는다. 다양하지도 않다. 내용적으로도 부족한 점이 많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큰 서점보다 작더라도 알찬 서점을 지향한다”며 “대형 서점이 베스트셀러를 비치한다면, 이라선은 우리의 안목으로 직접 선정한 책들을 선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라선에선 책만 판매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사진책과 관련한 북토크를 진행한다. 적정 도서를 방문객에게 추전해주고, 요청에 따라 구하기 힘든 사진집을 직접 들여오는 일도 이라선의 주된 업무다.

 

사람들 반응은 대형 서점 부럽지 않다. 주말엔 100명 넘는 손님들이 찾는다. 운영자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이라선에 대한 사람들 관심이 계속 높아지는 듯하다”며 “매출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를 주제로 한 2호점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 카페와 공간을 공유하는 시집 책방 ‘위트 앤 시니컬’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위트 앤 시니컬’은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으로 유명하다. 한때 독서 장려 운동 등을 기획한 시인이자 출판사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유희경 대표가 2016년 6월 오픈했다. 2017년 2월에는 합정에 위트 앤 시니컬 2호점도 문을 열었다.

 

위트 앤 시니컬은 카페와 공간을 공유하는 시집 전문 서점이다. 사진=이성진 기자


위트 앤 시니컬 1호점에 구비된 시집은 1300~1400종에 이른다. 주로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민음사 등에서 출간하는 시인선으로 구성돼 있다. 시집을 줄이는 추세인 대형 서점들과 대비된다. 유 대표는 “교보문고보다 시집들이 잘 갖춰져 있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옆 건물 메가박스에서 영화 티켓을 끊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부산에서 직접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트 앤 시니컬의 즐길거리는 시집으로 그치지 않다. 요조, 에피톤 프로젝트, 짙은 등의 유명 인디가수를 배출한 파스텔 뮤직이 운영하는 카페 ‘파스텔’과 셀렉트숍 ‘프렌테’와 공간을 공유해 귀와 입도 즐겁다. 시집을 보며 분위기 있는 음악, 커피나 맥주 한 잔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외부 간판이 없어도 다수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넓은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이뤄지는 시 낭독회와 독서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유 대표는 “사람들이 서점을 더 자주 찾게 하고, 편의성 높고 가격 저렴한 인터넷 서점에 밀리지 않기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며 “보통 50여 명이 모이는 낭독회 참가비는 2만 원으로, 한 번 행사로 카페와 서점이 1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함께 가져간다. 낭독회 이후 관련 시인의 책을 사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 카페 겸 서점 ‘비플러스(B+)’

 

서교동 출판거리에 위치한 카페 겸 서점인 비플러스(B+)도 눈에 띄는 서점 중 하나다. 비플러스는 출판업계에 종사하던 김진아 대표가 자신이 갖고 있던 수많은 구간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카페로 처음 문을 열었다. 책 판매를 시작한 건, 신간을 들이면서부터다. 비플러스는 곧 책과 커피·주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비플러스는 북카페로 시작했지만 신간 판매를 통해 서점으로 변신했다. 사진=이성진 기자


비플러스에 구비된 책들은 앞서의 서점들처럼 평범치 않다. 상당수가 독립출판 서적들이다. 모두 김 대표의 안목으로 고른 책들이다. 대형 서점이 주요하게 취급하는 베스트셀러는 찾아볼 수 없다. 장르 역시 작은 공간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하다. 역사, 과학, 잡지, 예술, 심지어 의류학 관련 서적까지 구비돼 있다. 

 

비플러스는 다변화하는 서점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점이 본래 갖던 책 판매 기능보다,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것. 김 대표는 방문객들이 서가에 진열된 책을 보기 쉽게 책을 주기적으로 중고서점에 팔거나 도서관 등에 기부한다. 가격을 1000원까지 낮춰 팔기도 한다. 김 대표는 “책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가보다 책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서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비플러스가 책 판매에 무게를 두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이곳은 자연스레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물론 책을 쓰는 사람들까지 모이는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고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선 과거부터 신간 출간 작가와 독자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열렸다. 가수 조규찬, 작가 김지영의 신간 출간을 기념한 독자와의 만남도 열렸다. 김 대표는 “과거엔 독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행사가 많지 않았다. 저희 공간에서 이 같은 행사가 늘어나면서 보편화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 서점 주인은 책을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사람

 

세 명의 운영자들은 독특한 콘셉트의 서점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 위트 앤 시니컬의 유희경 대표는 “서점을 찾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대안으로 기획력 높은 서점들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며 “이는 서점업계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콘텐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국 이라선 사장은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서적을 다뤄야 질 높은 콘텐츠로 서점을 채울 수 있다. 우리가 사진과 디자인 서적만을 취급해 성공할 수 있던 건 그 분야를 잘 알아서다”라며 “전문화를 통해 차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희경 위트 앤 시니컬 대표 또한 출판업계가 지닌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같은 의견에 공감했다. “대형 서점과 지역 서점이 ​정가 ​만 원짜리 책을 들인다고 가정할 때 대형 서점은 5000원, 지역 서점은 7000원을 출판사에 지불하는 구조다. 작은 서점을 일궈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기만의 콘셉트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위트 앤 시니컬 근처에 있는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엄선된 추리소설만을 판매하는 곳’이란 콘셉트를 잘 잡았기 때문이란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김진아 비플러스 대표는 “책은 물과 쌀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서점 운영자는 책을 필요한 것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책에 관심을 갖고, 직접 사서 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성진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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