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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파트라슈와 라이카, 그리고 '개의 해'

2018년 무술년엔 유기견·동물실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2017.12.27(Wed) 13:29:49

[비즈한국] 애견인 1000만 명 시대라고 합니다. 아쉽게도 우리 집에는 개가 없습니다. 아내가 싫어하는 데다가 아이들과 저도 털 알레르기가 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혼 전까지는 알레르기를 참으면서도 개를 열심히 키웠습니다. 엄마의 선택이었지요. 지금까지 함께 살았던 개는 수십 마리에 이릅니다. 하지만 딱히 얼굴이 기억나는 개는 없습니다. 사실 개는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새끼가 새끼를 낳다보면 내가 가진 기억에 등장하는 개가 손자 개인지 할머니 개인지 구분도 되지 않습니다. 

 

정작 내 인생의 개는 따로 있습니다. ‘파트라슈’도 그 가운데 한 마리죠. 중학생 시절에는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해태우유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해태우유는 가끔 만화책을 부록으로 넣어주었는데 ‘플랜더스의 개’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파트라슈는 만화에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는 커다란 개입니다. 아름답게 시작했지만 결말은 슬픈 만화입니다. 

 

주인공 네로는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소문만 들은 루벤스의 그림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시련을 참으면서 공모전에 출품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교회에서 가서 그림 아래에서 쓰러져 죽죠. 네로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습니다. 만화에서는 벌거벗은 아기천사들이 내려와서 네로와 파트라슈를 들고 하늘나라로 갑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파트라슈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간다.


그런데 나중에 읽은 비룡소 판 ‘플랜더스의 개’는 많이 달랐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네로(Nero)가 아니라 넬로(Nello)더군요. 만화에서 넬로는 우유만 배달하면 됐습니다. 여자 친구 아로아와 신나게 놀기만 하면 되었지요. 하지만 동화책에서 넬로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손바닥만 한 흙집에서 끼닛거리도 없이 살았습니다. 양배추 몇 잎에 기뻐할 정도였죠. 넬로의 인생만큼이나 파트라슈의 견생(犬生) 역시 처참했습니다. 파트라슈가 넬로의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플랜더스의 다른 개들과 같은 삶을 살았죠.

 

파트라슈의 조상들은 수백 년 동안 엄하고 지독한 대우를 받으며 일해 왔고, 파트라슈의 몸속에는 그 피가 흘렀어요. 노예의 노예, 하층민들의 개, 수레를 끄는 짐승이었어요. 짐마차를 끄느라 살가죽이 벗겨져 피가 줄줄 흐르면서도 개들은 그 고통을 묵묵히 참으며 살았지요. 그러다가 거리의 차디찬 돌바닥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바로 플랜더스 개들의 운명이었습니다.

 

파트라슈는 운 좋게 넬로의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파트라슈는 넬로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군대에서 부상당한 할아버지는 류머티즘으로 몸을 쓰지 못했고, 넬로는 겨울에도 맨발로 나막신을 신고 다닐 정도로 가난했거든요. 파트라슈는 넬로 가족에게 끼닛거리를 벌어다 주는 가장이자 일꾼이었으며, 할아버지와 넬로의 손이요 발이었습니다. 만화와 달리 동화 ‘플랜더스의 개’는 아름답지는 않고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내 인생의 개는 ‘라이카(Laika)’입니다. 아마 1974년에 영화 ‘벤지’가 개봉하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개였을 것입니다. 생일은 모르지만 1954년에 태어났습니다. 일곱 형제 중 한 마리로 다른 집에 입양된 잡종견입니다. 주인집이 이사 가면서 개를 버렸습니다. 뭐,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매년 이렇게 버려지는 개가 10만 마리는 되니까요. 모스크바 빈민가를 떠도는 유기견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러시아 항공의학연구소의 연구원 눈에 띄어서 연구소로 잡혀 왔습니다. 연구원들은 라이카(Leika)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독일제 최고급 카메라와 우연히 발음이 같지만 우리말로 하면 ‘바둑이’쯤 되는 하찮은 이름입니다. 

 

구소련이 1957년 10월 4일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는 최초의 지구 저궤도 인공위성입니다. 성능 좋은 쌍안경으로도 잘 볼 수 있는 인공위성이라 미국 사람들이 쇼크를 받았지요. 이후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비행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우주로 쏘아 올리기 전에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선택된 동물이 바로 라이카입니다.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진 우주개 라이카. 라이카는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진=spaceanswers.com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지 겨우 한 달 뒤인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라이카가 탑승했습니다. 아니 강제로 태워졌습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처음부터 귀환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들은 발사 이듬해인 1958년 4월 4일 인공위성이 대기권에 재돌입하기 직전 라이카에게 독이 들어있는 먹이를 먹여 안락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라이카는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우주 비행 개시 후 다섯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이미 라이카에게서 생명신호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라이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열을 견디지 못한 것 같습니다. 1998년 라이카 프로젝트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인 올레그 가첸코(Oleg Gazenko)는 후회합니다.

 

“동물을 이용하는 연구는 우리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마치 말 못하는 아기처럼 대했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더더욱 죄책감을 느꼈고,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임무에서 라이카의 죽음을 정당화할 방법은 없습니다.”

 

내 인생의 개로 남아 있는 파트라슈와 라이카는 모두 자기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게 늑대가 인간과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개가 된 이후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견생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곧 개의 해인 무술년(戊戌年)입니다. 12년에 한 번 오는 개띠 해만이라도 유기견과 동물실험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칼럼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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