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저가 단체 관광 있지 않습니까. 3박 4일 왕복 비행기에 호텔, 식사까지 해서 29만 9000원 받고 하는 거요. 국내 여행사에서 손님을 한 명 유치할 때마다 마진이 얼마 남을 것 같아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저히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비행기는 남는 좌석을 채우는 방식으로 싸게 간다고 하고, 호텔도 1박에 5만 원 미만의 저렴한 곳에 묵고, 저렴한 현지 물가를 감안한 식사를 한다고 해도, 29만 9000원은 너무 적다.
“전부 다입니다. 29만 9000원 100% 전부 국내 여행사 수입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저가 단체 관광은 둘째 치고 원가가 1원도 들지 않는 사업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12년간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여행 관련 사업을 해온 A 사 대표의 말이라고 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모든 비용은 중국 현지 여행사가 책임집니다. 항공료, 숙박비, 식비 전부 다요. 국내 여행사는 그냥 비용을 받고 예약 업무만 진행하고 손님은 중국 여행사에 넘겨요. 중국 여행사는 단체 관광객을 데리고 다니면서 쇼핑센터를 거쳐 이익을 뽑아내죠. 마진이 상상을 초월하니까 가능한 거지요. 쇼핑센터에서 30만 원에 판매하는 보이차가 있다고 합시다. 그거 원가는 1만 원도 안 합니다. 이걸 업계 용어로는 ‘제로빵’이라고 하죠.”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A 사 대표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중국 여행사가 1999위안(32만 8000원)짜리 한국행 저가 단체 관광 상품을 팔았다고 칩시다. 마진은 얼마가 남을 것 같습니까?”
# “유커도 우리나라 볼 것 없다 한다”
여행업계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시점을 2012년으로 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접 국가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일본과 조어도(댜오위다오,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영토 분쟁이 발생해 반일 감정이 격화되면서 중국 관광업계는 대안을 찾아야 했다. 마침 한류 열풍이 불고 있던 우리나라가 최적지였다.
순식간에 한국행 저가 단체 관광 상품이 무수히 만들어졌다. 중국 여행사들과 조선족 출신들이 운영하는 한국 내 여행사의 합작품이다. 한국 면세점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과 질 좋은 화장품, 각종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요 명소들이 절묘하게 버무려졌다.
2012년 9월 일본 정부가 조어도 내 3개 섬을 개인 소유자에게서 구입하면서 중국의 반일 감정은 절정에 달했다. 중국 내 일본 기업들의 매출은 급감했고, 일본행 관광 상품은 판매도 허가도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드 보복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는 것이 여행업계의 통설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2011년 중국인 관광객 수는 222만 명. 2015년 메르스 여파로 다소 주춤한 것을 제외하면 매년 큰 폭의 성장을 기록하다가, 절정을 이룬 2016년에는 무려 807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국 내 중국 전담여행사들이 중국 여행사로부터 단체 관광객을 사옵니다. 인두세로 200위안에서 500위안을 주고 말이죠. 당연히 항공료, 숙박비, 식비는 모두 한국 여행사 부담이죠. 중국 여행사가 가져가는 마진이요? 1999위안 그 이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을 찾은 중국 단체 관광객, 이른바 ‘유커’들도 코스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남산 한옥마을, 명동, 홍대 등 입장료가 없는 곳에 잠시 내려주고 인증 사진을 찍게 한다. 비용을 최대한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여행사가 거래하는 쇼핑센터와 면세점을 방문한다. 여기서 나오는 매출을 쇼핑센터와 여행사 분배해 수익을 보전한다.
“계약 맺기 나름이지만 보통 여행사는 쇼핑센터 매출의 절반을 가져갑니다. 버스기사에게도 주차료 조로 돈을 쥐어주고요. 유명 대기업 면세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단체 관광객을 버스에 실어온 국내 여행사에게 매출의 일정 부분을 인센티브로 지급합니다.”
싼 맛에 해외여행에 나선 유커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유커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한국 식당의 불결한 위생 상태와 저질 식재료 문제가 중국 CCTV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적도 있다. 중국 정부에서도 오랫동안 이를 예의 주시했다. 공식적으로 사드 보복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저가 단체 관광을 제재하는 명분은 대부분 여기에 있다.
“중국인들도 다 알아요. 우리나라 진짜 볼 것 없다고. 싼 맛에 쇼핑하러 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 갈 것 같아요? 사드 보복 장기화해서 여행업계 다 죽으면 중국인들은 다시 다른 나라로 갈 겁니다.”
# 면세점은 지금 따이거 천국…바뀐 것 아무것도 없다
중국은 국가여유국 산하에 각 성과 시에 직영 여행사를 하나씩 둔다. 이름만 여행사일 뿐, 실제로 관광 상품을 팔지는 않는다. 대신 관할 지역 수많은 여행사의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공무원이다.
“시나 성 여행사에서 허가를 해준 여행사에게 과거 실적을 바탕으로 단체 항공기 좌석의 수를 할당해줘요. 정기편은 비즈니스 수요로도 늘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보통 단체 관광객들은 전세기를 타고 옵니다. 그런데 이런 좌석을 틀어막으면 답이 없는 거죠. 게다가 단체 관광 제재는 보통 이러한 식으로 이뤄집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중국 정부의 암묵적인 사드 보복 이후로 중국 단체 관광객은 급감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중국 국적의 여행 가이드들은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들이 찾은 새로운 일자리는 ‘따이거(代哥)’다. 과거 중국 보따리상을 일컫는 ‘따이공(代工)’에서 한층 격상한 호칭이다.
“따이거는 주로 한국에서 홍콩이나 마카오로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홍콩이나 마카오 공항에서는 아무리 많은 면세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도 잡지를 않아요. 출국하면서 면세점에서 개인 수하물 허용치까지 물건을 들고 가는 거죠. 여기서 내린 물건은 중국 본토로 흘러갑니다. 구매와 결제는 중간관리자가 알아서 합니다. 따이거는 그냥 공항 면세품 인도장에서 물건만 받아 들고 가요. 대신 수고비를 따로 받고요. 돈 아낀다고 잠도 공항에서 자요. 이렇게 해서 요즘 월 200만 원 정도는 거뜬히 번다고 하더군요.”
저가 단체 관광 길이 막히면서 한국 면세점 상품을 선호하는 중국 내 수요는 오히려 느는 추세다. 면세점 입장에서도 면세 한도가 정해져 있는 내국인과 달리, 큰손 따이거들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규모 따이거 조직을 운영하는 큰손들은 아예 국내 대기업 면세점이 계약을 맺고 움직여요. 여기서도 당연히 인센티브가 오고 갑니다. 중국 단체 관광객이 막힌 상황에서 따이거까지 없다면 아마 우리나라 면세점들은 당장 문 닫아야 할 판입니다.”
실제로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면세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7% 증가한 12억 2658억 달러를 기록했다. 관련 업계는 사드 국면에서 오히려 매출이 늘어난 것이 따이거 때문이라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을 했지만 실제로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사드 철수나 탐지 거리 제한과 같은 해결책을 가지고 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베이징과 산둥성에서 부분적으로 풀었다고 하지만, 방중 이후에도 신청한 단체 비자는 모조리 거절됐어요. 바뀐 것이 전혀 없다는 이야깁니다. 오히려 중국 정부의 추가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돌아요. 정부가 빨리 해결해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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