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 번째 시즌을 맞은 ‘한국미술응원 프로젝트’는 한국미술 응원 개념에 더 충실하기 위해 소외돼온 작가와 흐름을 조명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경향-팝아트, 재료와 기법의 다양한 개발, 순수한 미감의 재해석 등-에서 역량 있는 작가 발굴은 기본으로 하면서, 우리 미감을 현대화하는 분야의 작가 발굴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소명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2018년 세 번째 전시회에서는 관람객들과 더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작가와의 대화, 작품 시연, 작품 해설, 소품 특별전의 확대 등을 계획하고 있다.
눈 덮인 겨울 풍경은 솔직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산이 속살을 내보이는 것도 눈 속의 겨울 산이다. 시절에 맞춰 색깔을 바꾸는 숲은 눈이 내리고 나면 내밀한 구조를 보여준다. 산의 솔직한 고백을 듣는 듯하다. 이 모두가 눈 내린 겨울이 주는 시각적 호사다.
윤인자는 겨울 산을 그린다. 진솔한 화풍으로. 갈색의 농담으로 숲의 깊이를, 흰색의 진폭으로 산의 골격을 그린다. 스카이라인의 흐릿한 윤곽선으로는 찬 공기의 여운을 연출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시점에서 나온 구성은 생각의 거리를 가늠케 한다. 단출한 색감으로만 우려내는 그의 풍경은 지극히 평범하다. 겨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산골의 보통 경치다.
이렇게 감정을 억제한 그의 그림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사색이다. 겨울 산만큼 맑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산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보이는 현실을 재현하는 그림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풍경화지만 풍경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추상화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그는 경관이 빼어난 특정한 산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산세나 윤곽을 강조하지도 않고, 산이 계절별로 연출하는 형형색색의 표현에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산이나 들판에서 받은 인상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그림이다.
“산이 작품의 모티브는 되지만 주제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스치듯 지나가는 자연의 모습 중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인상을, 거기서 받은 당시 분위기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제 작업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산을 그렸지만 방법론적 추상화처럼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물감과 캔버스 그리고 페인팅 나이프가 연출하는 우연의 효과를 강조해서 작업하는 것입니다. 겨울 산에 끌리는 이유는 색채에서 통일감이 있고 산의 깊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인자의 생각은 제작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올이 굵은 캔버스 뒷면에다 그린다. 붓보다는 페인팅 나이프를 주로 사용하여 작업한다. 이런 작업 태도는 사물을 묘사하거나 재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묘사나 재현은 자신의 생각을 주도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보이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려는 태도다. 보이는 현실보다 거기에서 받은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데 관심을 두는 그의 작업은 제작 방법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린다기보다 만들어나가는 쪽에 가깝다. 캔버스 천의 거친 질감, 물감의 번짐 효과와 물질감에서 오는 우연성으로,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그의 회화는 풍경의 사유이자 방법론적 풍경화인 셈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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