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재벌 본사 사옥은 터 마련부터 건물 형태까지 기업의 위상과 정체성이 스며 있다. 기업들은 사옥을 매입하고 또 매각해 이전하며 사세를 확장해왔다. 그런 가운데 각 그룹이 건물을 소유하는 방법과 활용하는 방법도 다변화됐다. ‘재벌 본사 사옥 해부’ 마지막 회에서는 우리나라 첨단사업(IT)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어떻게 발달해 왔으며 그 둥지를 옮겨 왔는지, 또 소유 구조는 어떤 방식을 띠고 있는지 알아봤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있다. 국내 IT와 게임 산업을 선도하는 네이버·카카오·넥슨 등의 사옥은 직원들 간 교류가 가능한 소통 공간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카카오와 넥슨은 제주도에 둥지를 틀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상상과 혁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주도가 가진 공간적 매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밖에 본사를 둬 소득세와 법인세 등 조세를 감면받는 효과도 제주도에 본사를 둔 배경 중 하나로 알려진다.
포털 1위 기업으로 대기업 반열에 오른 네이버 사옥은 ‘그린팩토리’로 불린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그린팩토리는 사무용 책상부터 직원을 위한 공간까지 네이버의 철학이 담겨 있다. 사내에는 행사와 공연이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 직원 복지를 위한 코어운동센터, 미디어 월, 전문 도서 위주의 네이버 라이브러리 등이 있다.
2005년 성남시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네이버는 2010년 첫 번째 사옥 그린팩토리를 완공했다. 네이버 비즈니스플랫폼·네이버아이앤에스·웍스모바일·서치솔루션 등 계열사가 입주해 있고 2800명이 상주한다. 그 외 계열사는 그린팩토리 부근 빌딩과 서초 교보타워, 금천구 등지를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그린팩토리와 토지는 네이버가 소유하고 있으며 입주 계열사로부터 임대료를 받지만 액수는 공개하지 않는다.
사업영역이 넓어지고 인원이 많아지며 네이버는 제2사옥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3년 성남시로부터 그린팩토리 남쪽에 위치한 성남 시유지 5필지를 1235억 원에 매입했다. 이 시유지는 벤처기업, 콘텐츠·IT산업만 영위할 수 있게끔 용도가 결정돼 있어 매각 공모가 세 차례나 무산되기도 했다. 네이버는 소프트웨어 진흥시설 용도로 네 번째 공모에 단독 참여해 부지를 매입했다.
또 다른 포털 공룡 카카오 본사는 제주도에 있다. 제주시 영평동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위치한 스페이스닷원(Space.1) 빌딩이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카카오와 합병하기 전인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를 제주도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8년 뒤인 2012년 제주시 영평동 첨단과학기술단지에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의 스페이스닷원에 이어 2015년 스페이스닷투를(Space.2) 완공했다.
스페이스닷원이 오름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상징성을 강조했다면 스페이스닷투는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서로 마주치고 소통할 수 있게끔 건물의 중심부에는 휴게공간과 공용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업무 공간이 주를 이루는 스페이스닷원과 달리 스페이스닷투에는 직원들을 위한 게스트룸과 직원 자녀들을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스페이스닷키즈 등의 시설이 있다. 스페이스닷원과 닷투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카카오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에이치스퀘어 빌딩에 판교 오피스를 두고 있다. 판교 오피스 중추인 에이치스퀘어에는 홍보 기능을 담당하는 미디어부서와 신규사업을 개발하는 다음글로벌홀딩스, O2O 사업을 영위하는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 페이 등 주력 계열사가 입주해 있다.
최근 김범수 의장이 인공지능(AI) 사업의 전초기지로 삼은 ‘카카오브레인’ 역시 판교 오피스 부근 미래에셋벤처타워에 둥지를 틀었다. 김범수 의장이 카카오브레인의 대표이사인 만큼 김 의장의 집무실도 판교에 마련된 것. 이 때문에 카카오가 판교로 본사를 이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지만 카카오 측은 강하게 부인했다.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입주기업들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받는다. 3년간 법인세 100%를 면제받고, 이후 2년간은 50%를 감면받는다. 또 지방세 면세혜택과 고용보조금 등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카카오와 합병 전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제주도 이전으로 100억 원 이상의 절세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 열댓 명으로 시작해 게임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넥슨코리아는 임차료가 비싼 강남 테헤란로의 셋방살이를 끝내고 판교테크노밸리에 사옥을 지었다. 판교에 자리 잡은 넥슨 사옥은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거 반영해 건물 실용성이 뛰어나고 직원 만족도가 높다고 알려진다.
IT 기업 특성상 야근이 잦은 것을 고려해 숙면실과 체력관리를 위한 피트니스센터 렙업이 준비돼 있다. 또 직장인들 사이에서 신의 어린이집으로 불리는 ‘도토리소풍’이 마련돼 있다. 도토리소풍은 일반 어린이집과 달리 오후 9시까지 아이를 맡길 수 있어 넥슨 임직원의 만족도가 높다.
300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넥슨코리아 판교 사옥은 넥슨 본사가 아니다. 통상 그룹의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가 주력 계열사와 본사 사옥에 함께 입주해 있는 것과 달리, 넥슨의 지주회사는 제주도에 있다. 김정주 회장을 비롯해 넥슨그룹의 지주회사인 엔엑스씨(NXC)는 2009년 제주도에 둥지를 틀었다. 2013년에는 제주시 노형동에 ‘넥슨컴퓨터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던전앤파이터’로 대박을 터뜨린 계열사 네오플도 제주도로 이전했다.
넥슨은 지주회사를 제주도에 두며 본사가 수도권 밖으로 이전할 경우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조세특례 혜택’을 받았다. 조세특례 혜택에 따라 엔엑스씨는 2009~2011년 총 1800억 원 이상의 법인세를 감면받았다. 이를 두고 감사원은 넥슨그룹이 넥슨코리아를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해왔음에도 9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엔엑스씨 이전으로 수천억 원을 감면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한바 있다.
감사원 조사 결과 엔엑스씨는 9명의 직원만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어 실제 사업운영의 주체는 수도권에 대거 상주하고, 소규모의 지주회사 인력을 지방으로 이전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기업들의 탈 수도권을 장려하고 이에 조세감면 혜택을 주는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아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게임개발사 네오플의 제주도 이전은 편법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나왔다.
금재은 기자
silo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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