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마케팅 업계에서는 ‘여성 혐오(여혐)’ 논란이 화두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여혐’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져서다. 그러나 여전히 시대를 역행하는 마케팅은 대중에 노출되며 비난을 받고 있다.
식품전문업체 (주)팔도는 지난 10월 컵라면 ‘왕뚜껑’의 누적판매 17억 개 돌파를 기념해 왕뚜껑 용기에 ‘츤데레(무심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다정하다는 뜻) 문구’를 기입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팔도는 SNS 등을 통해 ‘무심한 듯 진심을 전하는 문구를 댓글로 남겨 달라’며 공모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벤트 홍보글 예시에는 ‘오다 주웠다 먹던가, 버리던가’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팔도는 공모 이벤트를 통해 용기에 기입할 문구 30여 개를 선정하고, ‘짜증나게 먹는 모습도 예쁘네’ ‘또 먹냐? 먹는 게 예쁜 건 알아가지고’ 등의 문구를 용기 뚜껑에 새겨 넣었다.
그러나 문구가 기입된 물량이 시중에 풀리자 문제가 생겼다. 라면이 익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펀마케팅’의 일환으로 츤데레 문구를 새겨 넣었다는 팔도 측의 취지와 달리 소비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 한 누리꾼에 따르면 뚜껑에 ‘돼지냐? 먹는 것도 예쁘게’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관계자는 “주고객층인 젊은 세대가 즐겨 사용하는 ‘츤데레 멘트’를 활용해 소비자를 공략하려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츤데레’ 콘셉트 자체가 격한 부분이 있다 보니 공모한 문구 가운데 팔도 광고마케팅팀 내부에서 30여 개 문구를 자체 선정했다. 이슈가 된 일부 문구를 제외하고는 고백을 한다거나, 상대방의 외모를 칭찬하는 등의 긍정적 내용”이라며 “의도와 다르게 이슈가 되면서 생산을 중단하고 이벤트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이어 “팔도의 경우 타사의 광고를 인용해 패러디하거나 재미있는 멘트를 사용해 예전부터 트렌드를 앞서 나간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서 진행했던 이벤트였다. 의도와 다르게 거슬리는 문구가 있었던 것은 우리가 미흡했던 부분이다. 이번 이슈가 선행학습이 됐다. 앞으로 더 고민해 마케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공개된 LG전자 세탁기 ‘트윈워시’ TV 광고 또한 ‘여혐’ 논란에 휩싸였다. 광고를 비판하는 이들은 영상 속 남편이 세탁기 사용법에 무지한 것을 ‘빨래할 줄 모르는 남자, 나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설명하거나, 워킹맘이 회사로 출근하며 집안일을 확인하는 장면 등을 문제 삼았다. 성인 남성이 집안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것을 미화했다는 지적이다. 누리꾼들은 LG전자 공식 유튜브 계정에 게재된 영상에 “시대를 못 따라가는 광고”라며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LG전자는 비난 댓글이 달리자 해당 광고를 삭제했다. 누리꾼들은 LG가 게재한 다른 광고영상에도 “가전 주고객층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혐 광고를 하고, 피드백조차 안 하다니 실망스럽다” “댓글을 왜 막느냐. 앞으로 엘지를 이용하지 않겠다. 시대 흐름 좀 읽어라” 등의 비판 댓글을 달았다.
LG전자 측은 “확인한 결과, 댓글 창을 막은 사실은 없다. 광고를 게재하고 일주일이 지나 어느 시점부터 광고영상에 지나친 비난 댓글이 올라와 오해를 받을 수 있겠다는 우려에 영상을 삭제하는 조치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비판이 제기된 뒤 다시 내부에서 광고를 검토했으나 거친 비난 댓글이 달릴 만큼의 콘텐츠는 아니었다. 그럴 의도도 없었다. 영상 자체는 ‘여혐’ 논란과 거리가 있어 억울한 면이 있다. 광고 영상은 내부 심의를 거치는데,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한 마케팅업계 관계자는 ‘여혐’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업계가 여전히 소비자의 민감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기준의 모호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이슈에 대한 업계 내부의 가이드라인이 없어 담당자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는 점 또한 연이어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앞서의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민감한 키워드를 빅데이터상으로 확인하고 거르는 작업을 한다. 다만 ‘여혐’의 경우 명확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 개인이 주의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 아직까지 특정 이슈에 대해 특별히 조심하는 분위기는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안전한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비속어나 은어, ‘급식체’, ‘섹드립’ 등도 대중의 뇌리에 박히게 만들 수 있다면 용인이 된다. 비난은 곧 사그라지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최근 여혐 문제가 자주 불거지고 있어, 곧 마케팅 업계에서도 소구 포인트로 다뤄지리라 예측된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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