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7년 신드롬이라 할 만큼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받았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의원 300명에게 선물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사회구조적 차별을 생생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소설이나 언론에서 찾지 말고 바로 옆에 있는 여성을 봐라. 그들이 모두 김지영이다”라는 말처럼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은 공기와도 같다. 차별은 결혼과 출산을 겪는 30대 이후 극대화된다. 20대부터 50대의 여성들을 만나 차별, 결혼, 출산, 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 아이 낳고 돌아온 내 자리에 ‘찬바람’뿐
20~50대 여성 9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을 실제로 만나는 건 어려웠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를 돌봐야 했기 때문. 출산 후 복직한 사람을 찾기는 더 어려웠다.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복직하더라도 비정규직인 경우도 많았다. 드물게 창업한 경우도 있었다.
30세 A 씨는 “아이를 낳기 전에 서울에 있는 무역회사에서 일했고, 집도 회사 근처라 복귀 후에도 서울에서 일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인천 발령을 받았고, 서울 근무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출산휴가를 쓰면서 그해 업무평가도 C, D를 받은 터라 (출산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 같아) 복귀하자마자 정이 떨어져 그만뒀다. 일을 계속 하고 싶어 아예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했다”고 했다. 그는 “나처럼 사업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대부분 직장에서 고통 받다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병리사인 42세 B 씨는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0개월을 쉬었다. 그는 “복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과 총무를 시켜서 4년째 하고 있다. 과에서 필요한 교육, 활동도 주도적으로 맡으라 유도하는 등 일부러 일을 더 시키는 게 눈에 보였다”고 했다.
이어 그는 “한 부서에서 다 같이 임신하면 안 되니까 가임여성은 순번을 정해서 낳으라고 했다”며 “출산휴가 때 상사들이 ‘나 때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 ‘나는 아이 낳고 한 달 만에 나와서 일했다’고 핀잔 주는 경우도 있었다. 강한 멘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과의사 보조로 일하는 39세 C 씨는 “아이가 아플 때 휴가 쓰는 게 눈치가 보인다. 법정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이라도 못 보내게 되면 더 어렵다. 출산휴가 쓴 뒤 상사가 전에 없던 일을 시키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육아까지 혼자 도맡아 너무 힘들다”며 “여자에게만 직장생활과 육아 모두에 충실하라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 “아이 낳는 건 여건과 마음의 준비가 돼야” 한목소리
앞서의 B 씨는 “(출산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아이한테 미안할 때가 많다. 일하고 와서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한테 짜증을 내는 건 아닌지 고민할 때도 있다”고 했다. 남편도 같은 고민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르겠다”며 멋쩍게 웃었다.
C 씨는 “결혼과 출산을 후회해서 뭐하나. 되돌릴 수 없는데”라며 “힘들어도 아이들 때문에 아플 수도 없다. 외로움을 덜 탄다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두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9개월째인 37세 치위생사 D 씨는 “아이를 힘들게 가졌고, 정말 기뻤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며 “미혼 여성에게는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육아는 여건과 마음이 준비가 되면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농협에서 일하는 51세 E 씨는 “결혼과 출산을 후회한 적이 왜 없겠냐. 출근할 때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두고 나오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회사에서 행사가 있을 때 참석하기 힘들고, 승진에서 멀어져 아쉽다. 한국에서 직장여성이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너무 힘들다. 젊은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는 52세 F 씨는 “직장과 아이 때문에 동동거리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내 마음이 다 아프다”며 “지난달 한 교사가 복직신청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가 한 달 정도 적응훈련을 했는데 헤어질 때마다 힘들어 해서 다시 휴직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한테 뭐가 가장 무서우냐고 물어보면 ‘뒤처질까 봐 무섭다’고 한다”며 “그 말을 들으면 나도 아찔해진다”고 했다.
# 미씽: 출산 후 사라진 여성들, 어디에 있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25세 G 씨는 “‘이 사람 없인 안 된다’면 결혼하겠지만 그게 아니면 할 생각이 없다. 고생할 바에야 혼자 내 돈 쓰면서 행복하게 살겠다”며 “고시를 시작한 이유는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서였지만, 시작하고 보니 평범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괜찮은 직업이 거의 없고, 공무원이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취업준비생 24세 H 씨는 “결혼은 절대 안 한다”며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제 명에 못 산다. 평생 고양이 키우면서 혼자 살 거다”라고 했다.
직장인 26세 I 씨는 “일하다가 문득 ‘30대 후반 이상의 여자선배는 다 어디로 증발했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난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은데 미래에 (결혼이나 출산을 이유로) 내 자리가 여기에 없을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인터뷰한 기혼 여성들은 모두 아이가 어릴 땐 친정엄마, 시어머니가 돌봤고, 조금 크면 어린이집에 보냈다고 했다. I 씨는 “보통 젊은 부부는 시부모랑 사는 걸 안 좋아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올케는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함께 산다”며 “젊을 땐 나 키우겠다고 일 포기한 친정엄마가 손주까지 키우고 있다. 희생이 대물림된다”고 지적했다.
2016년 10월 통계청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1982년생 여성 중 경제활동인구는 24만 8000명으로 남성보다 16만 5000명이나 적다. 1982년생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93.4%이지만, 여성은 59.8%다. 특히 결혼한 1982년생 여성(30만 7000명)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1%로 미혼(84.8%)이나 이혼·사별한 여성(83.4%)보다 훨씬 낮았다. 2016년 통계청에 따르면 34.6%의 여성이 결혼 때문에, 30.1%가 육아로 인해 일을 그만뒀다.
여성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육아를 위해 언제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는 인식이다. ‘힘들면 그만두고 남편 돈으로 살면 되지’라는 말을 쉽게 한다. 조직에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인식되다 보니 부서장, 임원, 최고경영자까지 승진하기가 쉽지 않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또한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중략) 내가 책임질게.”
“나는 지금의 젊음, 건강, 사회적 네트워크, 계획,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얻는 거보다 잃게 되는 것만 생각나. 그런데 오빠(남편)가 잃는 건 뭔데? (중략) 그래 힘들겠다. 근데 나 오빠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거 아니야. 재미있고 좋아서 다녀. 일도, 돈 버는 것도.”
올해 가장 인기 있던 여아 이름은 서윤이다. ‘17년생 서윤’이는 김지영 씨와는 다른 사회를 살 수 있을까.
구예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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