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임요환 이후 스타크래프트 리그 최고의 스타였던 택뱅리쌍(김택용, 송병구, 이영호, 이제동) 중 한 명인 김택용이 입대했다. 현역 시절 팬들을 불러 모으던 미남 프로게이머였던 김택용은 아프리카TV에서도 월등한 게임 실력을 보였다. 최고의 게이머에서 최고의 방송인으로, 이제는 훈련병이 된 김택용을 알아보자.
김택용이 어떤 선수냐 물으면 그는 혁명가이자 프로토스 최초로 ‘본좌’에 가까웠던 이카루스라 답하겠다.
김택용의 별명은 ‘혁명가’다. 그가 생애 최초 개인리그 결승전에서 프로토스의 재앙이라 불린 마재윤을 꺾었기 때문이다. 스코어는 3:0이었고 경기 내용은 압도적이었다. 김택용은 당대 프로토스의 저그전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다. 당시 대부분의 프로토스는 저그에 맞서 빠르게 앞마당을 가져간 후 커세어와 리버를 생산해 운영하던 ‘수비형 프로토스’ 전략을 택했다. 안정적으로 앞마당을 가져갈 수 있었으며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으나 수비적 운영으로 인해 경기의 주도권을 저그에게 넘겨야만 했다. 김택용은 수비적인 리버 대신에 공격적인 다크템플러를 택했다. 커세어와 다크템플러로 저그의 멀티를 견제하며 본인은 멀티를 가져갔다. ‘비수’라는 그의 아이디에 걸맞게 저그의 폐부를 찔렀다. 모든 프로토스가 그의 플레이를 따랐다.
그는 프로토스 최초로 본좌에 가까웠다. ‘본좌’는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은어로, 당대 최고의 선수를 뜻했다. 김택용은 가장 본좌에 가까웠다. 결승전에서 당대 최강자인 마재윤을 꺾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2007년에 무려 5개 리그를 우승했다. 우수한 성적과 더불어 외모도 준수했다. 많은 팬이 그를 임요환을 잇는 새로운 아이콘이라 칭했다.
하지만 그는 이카루스처럼 추락했다. 김택용은 세 번째 MSL 결승전에서 ‘독사’ 박성균에게 1:3으로 패배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우승은커녕 결승전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가장 완벽한 프로토스라는 칭호를 갖자마자 이제동과 이영호가 등장했다. 라이벌 송병구가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우승할 때 그는 끝없는 침체기를 겪었다. 강민과 마재윤을 부지불식간에 꺾고 라이징 스타가 되었던 그였다. 추락도 순간이었다.
개인리그에서 부진했지만, 프로리그에선 ‘SKT 정직원’이라 불릴 만큼 준수했다. 정규 시즌 다승왕과 MVP, 그리고 결승전 MVP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수다. 숙명의 라이벌 KT와의 2012 SK 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 결승전에선 에이스 이영호를 꺾고 팀에게 우승컵을 선사했다. SKT T1의 선배 최연성과 임요환이 프로리그 성적이 개인리그에 비해 우수하지 못했던 것에 반해, 김택용은 ‘프로리그의 사나이’라 불릴 만큼 꾸준했다. 이영호와 이제동이 떠오른 이후 김택용은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올라서지 못했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SKT T1이 가장 빛나던 순간에, 가장 중심에 서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1이 끝난 이후 그는 가시밭길만 걸었다. 스타크래프트 2로 종목을 전환한 이후, 그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 모두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채 그는 은퇴했고, 곧이어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인으로 돌아왔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 초라했던 그지만, 아프리카TV에서 다시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김택용은 2019년에 전역한다. 스타크래프트가 그때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팬들은 2019년은 물론이요, 2029년까지 그를 기다릴 수 있다. 전 프로게이머이자 방송인, 그리고 혁명가라 불리던 김택용이 무사히, 부디 건강하게 군 생활을 마치길 바란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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