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정조준하면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동시에 칼날을 세웠는데, 초점도 대주주 이사회, 최고 경영진 등 ‘수뇌부’에 맞춰졌다. 금융업계에선 민간 금융사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신관치’ 논란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주인이 없으니 현직이 계속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이다. 지난 11월 금융회사 승계 프로그램 등 지배구조 개선을 화두로 던진 이후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또 다시 전면 점검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날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재벌 총수처럼 돼 간다는 비판이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에) 선임되고 그 사람이 제대로 평가 받게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위원장이 언급한 ‘주인’과 ‘현직’은 각각 금융회사 대주주와 현재 회장을 뜻한다. 대주주가 없으니 회장이 스스로 연임할 수 있도록 금융사별로 여러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게 최 위원장의 지적이다.
실제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는 대부분 주인이 없다. KB·신한·하나 3대 금융지주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약 9%)으로 연금 가입자인 국민의 돈으로 지분을 샀다. 나머지 지분은 외국인, 개인투자자 등이 각각 나눠 갖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있지만 5% 이하다.
최근 금융권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셀프연임’ 논란을 비롯해, 그동안 회장 교체 시기마다 잡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셀프연임은 회장이 사외이사들을 추천하고 그 사외이사들이 다시 회장의 연임을 판단하는 방식을 뜻한다. 금융당국은 사실상 회장 한 사람의 영향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을 그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 대형 금융사, 회장 선임 과정서 잡음 꾸준히 나와
금융당국이 특정 금융사를 지목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쏠리는 금융사들이 있다. 실질적인 대주주가 없거나 확실한 차기 회장 후보가 없는 금융사들이다. 오는 2018년 3월 회장의 임기가 마무리 되는 하나금융이 대표적이다. 현재 상황이 최 위원장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관련 주요 발언들에 가장 가깝다.
하나금융은 실질적인 주인이 없는 대형 금융사 중 하나다. 5% 이상 주주는 국민연금공단(12월 기준 9.6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외국인, 개인투자자들로 구성된 소액주주다. 우리사주조합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회장이 혼자 연임할 수 있는 시스템 운영’ 표현과도 가깝다. 금융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나은행에는 회장 경쟁구도가 없다. 한 대형 금융지주 관계자는 “함영주 부회장(겸 KEB하나은행장)은 은행 경영, 김병호 부회장은 해외 사업에 집중한다. 주요 업무나 인사권 행사는 하지 않는다”며 “보통 금융지주 자회사 CEO나 은행 부행장급부터 경쟁구도가 형성되는데, 연임한 사례가 거의 없다. 또한 하나금융은 부행장 임기가 1년인 곳이 많아 회장은 물론 행장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내년 초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한다. 하나금융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정태 회장은 최근 사내 강연이나 조회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 “조직에 기여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사실상 3연임을 시사했다. 다만 이번 금융당국의 개선 의지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최근 주주총회에 회장 선임 안건을 통과시킨 KB금융과 BNK금융도 금융당국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두 금융사는 이미 회장이 선임됐지만 여전히 회사 안팎으로 잡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KB금융의 ‘회장 이사회 장악 논란’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논란거리다. KB금융은 회장 연임 과정에서 내부 권력화 의혹이 반복되고 있다. 회장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9월 윤종규 KB금융 회장 연임 과정에서도 이사회 구성원이 윤 회장에 의해 선임된 사람들로 이뤄져 선임 절차의 불투명성이 KB노동조합에 의해 제기됐다. KB금융은 노조 측이 진행한 윤종규 회장의 연임 찬반 설문조사에 회사 측이 개입한 의혹으로 최근 두 차례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BNK금융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앞서의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BNK금융은 지난 8월 성세환 전 회장이 주가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다가 사의를 표명한 뒤, 차기 회장 선임을 놓고 내부인사와 외부인사 간 2파전이 장기화되면서 ‘낙하산’ 등 논란이 불거졌다. 최 위원장은 “BNK금융지주의 경우 경영진 부재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다음에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 금융권 “지나친 관치” 금융당국은 “평가에 집중”
이번 금융당국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 의지에 대해 금융권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민간 회사에 대한 지나친 ‘관치’가 아니냐는 불만이다. 금융사들은 금융당국의 개선 의지가 알려진 이후 “실질적인 대주주가 없는 만큼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 중”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들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을 따라 차기 회장을 뽑는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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