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신세계그룹이 지난 8일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이마트 영업시간도 24시에서 23시로 앞당기는 등 일부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변화에 대기업이 신호탄을 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임금을 줄이기 위한 꼼수라는 반론도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신세계그룹 발표에 따라 신세계 임직원은 내년 1월부터 하루 7시간만 일하고, 출퇴근 시간을 오전 9시~오후 5시, 오전 8시~오후 3시, 오전 10시~오후 6시 등 업무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이마트의 경우 매장 특성에 따라 영업시간을 23시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세계그룹은 ‘주 35시간 근무제’는 대기업 최초이고, 이에 따른 임금 삭감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일부 노조는 최저임금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일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에는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조(전국이마트노조·위원장 김상기), 한국노총 전국관광서비스연맹 이마트민주노조(이마트민주노조·위원장 김주홍),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이마트노조(이마트노조·위원장 전수찬), 세 개의 노조가 있다. 이 중 노동시간을 주당 35시간으로 줄이는 임금협상에 합의한 교섭대표는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조다. 전국이마트노조의 이 같은 결정에 이마트민주노조와 이마트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이마트노조는 12일 신세계 백화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가 고용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 하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이마트의 2018년 예상 시급인 8644원으로 주 40시간, 한 달 209시간을 일하면 약 18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주 35시간, 한 달 183시간을 일하면 158만 원을 수령하게 된다. 사측에서는 여기에 기본급의 10%를 더 주겠다고 하지만 기본급이 높지 않기에 기존보다 적은 금액이라는 것이다.
미래의 시급을 가정해서 계산해 보면 월 임금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문재인 정부 공약대로 2020년에 최저임금 1만 원이 된다는 가정하에 월급을 계산해 보면 183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바꿨을 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게 된다.
이마트노조 관계자는 “노동시간이 줄면 퇴직금이 감소하고, 자정에 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야근수당 개념으로 주던 교통비를 주지 않게 돼 회사 측에는 이익이지만 실질 임금이 줄어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이라며 “할 일의 양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업무 강도만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마트민주노조 측도 “임금이 원래 낮은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더 줄게 된다. 낮아진 월급만큼 삶의 질이 올라가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 노동시간 감축은 불이익 변경”이라며 “오전, 오후가 아닌 미들타임 노동자가 늘어날 텐데 이들은 아침, 저녁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진정으로 바라는 조치가 아니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과정상의 문제도 지적했다. 이마트민주노조 관계자는 “임금협상을 하기 전에 전국이마트노조가 대표 노조로서 소수 노조인 이마트민주노조와 이마트노조에 교섭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 하지만 소수 노조는 임금협상이 체결된 이후 회사 측이 마련한 설명회에서 노동시간 감축 내용을 처음 알게 됐다. 이는 공정대표의무제에 위반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불이익 변경이기 때문에) 임금협상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하려면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측에서는 노동시간 감축 관련 설명회에 참석했다는 서명을 변경된 취업규칙에 동의로 간주하려 한다”며 반발했다.
이에 신세계 측은 “2020년에 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은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것을 부정적으로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납득하기 힘들다”며 “노동강도가 증가한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 다르다. 불필요한 업무를 줄여 업무 구조를 개선하면 충분히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결정 과정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 답변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마트노조와 이마트민주노조가 함께 전국이마트노조의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상황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는 “따로 언급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경쟁관계에 있는 조직들이 하는 말은 객관성이 떨어진다. 시간에 가치를 더 두느냐, 돈에 더 가치를 두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게 아니냐”고 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추진핵심팀 관계자는 “노동시간 단축 자체는 환영할 일”이라며 “임금이 줄어든다는 문제 제기는 논의되거나 결정된 바 없다. 노조 측과 사측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즈한국’은 이마트 직원들의 생각을 물었다. 서울의 한 이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은 “회사 측에서 명확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임금 하락이나 노동 강도의 상승에 대해 미리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직원은 “주변에서도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신세계그룹의 다른 계열사 직원들은 관련 언급을 피하고 있는 모양새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직원은 “회사 내부적으로 논쟁이 많고, 예민한 사항이라 따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밝혔다. 다른 직원도 “쉬쉬하는 분위기”라며 말을 아꼈다.
구예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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