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1년 전 오늘’엔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기사가 가득하다. 박 전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을 비롯해 수많은 기사가 나온다.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는 지난해 이맘때 하나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게이트의 중심에 있던 K스포츠재단의 정현식 전 사무총장이 재단과 관련한 최순실 씨의 비리를 언론에 제보했기에 청와대와 최순실 씨 사이에 있는 연결고리가 밝혀졌다. 정 씨와 그의 가족은 참여연대가 시상하는 ‘참여연대 의인상’을 받았다. 국민이 느끼는 고마움을 하나의 상패에 담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참여연대 의인상은 총 9명에게 돌아갔다. 그 중 한 명은 김광호 전 현대자동차 부장이다. 김 전 부장은 작년 9월 현대차가 제품 관련 결함을 숨겼다며 언론과 국토교통부 등에 관련 사항 총 32건을 제보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중 5건과 관련해 현대차에 강제 리콜을 명령했고, 현대차는 관련 부품이 들어간 자동차 약 23만 대를 리콜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부실한 부품이 탑재된 수많은 자동차에서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났을지 모를 일이다.
소비자는 안전해졌으나 공익제보자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대차는 김 전 부장이 보안 의무를 어겼다며 해고했으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김 전 부장은 생일에 경찰에게 압수수색까지 당했으나, 다행히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해고 역시 무효로 판결 나 복직이 결정됐으나 얼마 전 자진 퇴사했다.
직장에서 고소당한 회사원에게 회사는 가시방석이라는 낡은 표현으로 담을 수 없이 불편했을 터다. 사회는 그에게 큰 빚을 졌으나 그에게 남은 건 참여연대와 한국투명성기구가 수여한 상패가 전부다. 상처뿐인 영광이다. 가만히 있으면 대기업 부장으로 꽃길을 걸을 수 있던 그는 공익제보 이후 가시밭길을 걷는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는 공익제보자의 말처럼 공익제보는 개인에게 손해일 뿐이다. 행동 경제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익제보를 할 유인이 없다. 하지만 사회엔 큰 효용을 가져다준다. 호루라기로 비유되는 공익제보는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범죄와 비리를 막아준다. 자동차 소비자는 김 씨 덕분에 안전한 차를 탈 수 있게 됐으며, 국민은 정현식 전 사무총장 덕분에 박근혜 게이트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고 공익제보를 활발히 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현재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민간 영역의 공익제보를 안전과 환경에 국한했다. 횡령과 배임, 그리고 분식회계 관련 제보자는 보호법에서 지켜주지 않는다.
보상액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다. 이종수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익제보자 1명에게 돌아가는 보상액은 3000만 원에 불과하며 재판 기간은 평균 3년에 달한다. 심지어 해당 부패 행위와 연루된 당사자는 보호는커녕 처벌 대상이다. 3년 동안 법원을 오가며 씨름하는데 보상액은 터무니없이 적으며 심지어 처벌받을 가능성도 농후하니 침묵하기 바쁘다.
법의 사각지대만큼 공익제보자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한국 사회는 공익제보자를 배신자나 의리 없는 놈이라고 부른다. 인식을 바꾸기 위해 내부고발이라는 단어를 공익제보로 바꾸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토양에서 공익제보가 활발해지기 만무하다. 보상금을 높이고, 보호 범위를 넓히고,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그간 고질병인 저신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의 김영란법 제정과 최근 공공기관 채용 전수 조사와 블라인드 채용 도입은 그 노력 중 일부다. 부당한 청탁을 근절하고 채용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어 신뢰를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공익제보자 보호다. 사회의 의인이 죄인이 되는 사회에 공익은 존재할 수 없다. 공익제보가 달걀로 바위 치는 바보짓이 아니고, 더는 희생의 동의어가 되어선 안 되는 이유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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