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월 22일에서 3월 1일 사이에는 일체의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때가 반일 감정이 가장 커지는 시기라서 그렇다. 2월 22일은 일본 시마네현이 정한 다케시마의 날, 3월 1일은 모두가 다 아는 삼일절이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런데, 우리나라에 파견 온 일본인 지사장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일본인이 있다. 바로 카와우치 시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SCEK) 전 대표다.
현재는 소니 인터렉티브 엔터테인먼트 저팬 아시아(SIEJA) 소프트웨어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오는 12월 15일 은퇴한다. 소니 특유의 만 60세 정년 룰에 의해서다. 아시아를 총괄하는 카와우치 부사장은 은퇴를 앞두고 아시아 여러 국가를 차례대로 돌며 고별인사를 전했다. 그 어느 국가보다 그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한국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지난 5일 방한한 카와우치 부사장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 속에도 코엑스, 목동, 판교 등 플레이스테이션 전문 매장을 숨 가쁘게 둘러봤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최근 문을 연 ‘플레이스테이션 라운지’에서 카와우치 부사장을 6일 ‘비즈한국’이 만났다.
# 한국은 특별한 나라…은퇴 이후에도 다시 찾을 것
“한국은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라입니다. 음식도 아주 맛있고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꼭 함께 하고 싶습니다.”
카와우치 시로 부사장은 2010년 5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SCEK(현 SIEK) 대표이사를 맡았다. 플레이스테이션3(PS3)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던 어려운 시기에 한국 지사장을 맡아, 후속작 플레이스테이션4(PS4)를 성공적으로 론칭시켰다.
정년 퇴임을 앞둔 카와우치 부사장은 지금도 얼마든지 업무를 해나갈 수 있을 정도로 활기차 보였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콧수염과 푸근한 외모로 인해 ‘마리오 사장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오는 경쟁사 닌텐도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자세히 보니 수염이 많이 희끗해져서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카와우치 부사장은 ‘울보 사장’이라는 또 다른 별명도 가지고 있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었던 2013년 12월, PS4 론칭 행사에 몰려든 1000명 가까운 인파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생긴 별명이다. 정작 본인은 당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수많은 영상과 사진이 증거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 한국 지사장 퇴임 당시 자발적으로 뜻을 모은 100여 명의 게이머들로부터 ‘한국 콘솔게이머 일동’ 명의로 된 감사패를 받았다. 소니 엔터테인먼트 사업 역사상 해외 지사장이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인물은 카와우치 부사장이 유일하다.
카와우치 부사장은 먼저 매장을 한번 둘러 본 다음 동행한 한국 직원들과 환담을 계속 이어나갔다. 비교적 짧고 조용한 순방이었지만 모리타 아츠시 SIEJA 대표와 안도 테츠야 SIEK 지사장 등 아시아 지역 수뇌부가 함께했다. 특히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위치한 플레이스테이션 라운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오로지 플레이스테이션 제품만 취급하는 전문 매장이라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날(5일) 방문한 플레이스테이션 코엑스점에서는 묘한 만남도 이뤄졌다. 매장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구입하러 온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우연히 마주친 것.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던 만큼 오고간 대화 없이 어색한 분위기만 흘렀다는 후문이다.
“과거에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비교적 작은 시장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일본, 중국 다음가는 큰 시장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한글화가 많이 이뤄진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게이머들이 플레이스테이션을 많이 사랑해주신 결과입니다.”
# 한글화를 통한 성공 신화 아듀! ‘마리오 사장님’
카와우치 부사장의 말처럼 그가 한국 게이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지사장 재임 시절 다수의 한글화 게임이 발매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한 번도 한글화가 이뤄지지 않은 일부 인기 게임들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글화가 발표될 때마다, 게이머들은 크게 열광하며 입을 모아 ‘마리오 사장님’을 칭송했다.
카와우치 부사장이 취임 이후 한글화에 힘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운도 어느 정도 따랐다. 무엇보다 재임 시절 중국 콘솔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많은 게임들이 중국어화가 된 것이 호재가 됐다. 일본어로 된 게임을 중국어화 하기 위해서는 문자 인코딩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간체 중국어와 한국어는 보통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즉, 중국어화 된 게임은 한글화도 수월하다는 의미다. 그동안 최소 판매량을 핑계로 한글화를 꺼리던 일본 게임사들의 마음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의 한글화 러시는 다시 선순환을 불러일으켰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PS3와 달리 PS4가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한 것. 카와우치 부사장이 한국 지사장에 취임한 2010년 당시 한국 플레이스테이션 시장은 대만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A급 게임 타이틀조차 판매량이 2만 장을 넘기기 버거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판매량이 10만 장에 육박하는 게임도 종종 나올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전체 시장규모도 대만의 두 배가 됐다.
한때 소니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한직으로 취급받던 한국 지사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 카와우치 부사장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일본을 포함 아시아 시장 전체를 총괄하는 본사 부사장 자리로 승진한다.
많이 알려진 한글화 업적 이외에도 카와우치 부사장은 본사로 자리를 옮겨 온라인 게임서비스인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PSN)’에 다수의 부분유료화(Free to Play) 게임 론칭을 주도했다. 특히 지사장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 온라인 게임사들을 다수 포섭했다. 매출은 많지 않았지만 PSN의 외연과 다양성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5분 남짓 짧았던 판교 매장 방문을 끝으로 카와우치 부사장 일행은 비행기 출발 시간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야 했다. 주차장에서도 끝까지 가까웠던 한국 직원들과 거듭 작별인사를 나누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공식적인 은퇴 행사나 기자 회견 등은 없었다. 대신 언제나 한글화 소식을 전하던 방식인 영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 게이머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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