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들에게 본사 사옥은 금두꺼비와도 같다. 사옥은 그룹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 실탄을 마련해 급한 불을 끌 수 있게도 해주기 때문이다. 각 그룹들이 건물을 소유하는 방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계열사별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나선 대기업들은 어떤 형태의 사옥 소유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비즈한국’이 해부했다.
이번에는 본사 사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SK·한화그룹과 오너 일가 개인회사가 사옥을 소유한 효성그룹, 중견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며 사옥을 새로 장만한 부영·하림그룹을 살펴봤다. 사옥 변천사를 통해 기업이 겪은 우여곡절을 한눈에 알 수 있다.
SK그룹 본사 사옥은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SK서린빌딩’이다. 서린빌딩의 역사가 오랜 만큼 통상 재계에서는 ‘서린빌딩’이라 하면 SK그룹을 떠올린다. 1999년 설립된 서린빌딩은 유명한 건축가인 김종성 씨 작품이다. 서린빌딩에는 (주)SK와 계열사인 SK E&S·SK이노베이션 등이 입주해 있다. 의외지만 현재 SK그룹은 이 사옥을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2005년 SK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메릴린치 컨소시엄에 서린빌딩을 4500억 원에 매각했다. 당시 인천석유화학을 매입하기 위해 SK그룹은 사옥을 팔아 실탄을 마련했지만 2011년 국민연금과 부동산펀드를 조성해 5500억 원을 주고 서린빌딩을 되샀다. 지주회사가 서린빌딩 부동산펀드에 넣은 지분은 전체의 10%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SK그룹은 지주회사가 부동산펀드로부터 건물 전체를 임차하고, 다시 계열사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사옥을 사용하고 있다. 사옥에 입주한 SK이노베이션은 지주회사에 연 323억 원을 임차료로 지불하고 있다. 부동산펀드로부터 사옥을 빌려 쓰며 SK그룹이 지불하는 임차료는 상당한 금액으로 알려진다.
한화그룹 본사는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장교빌딩이다. 지주회사 한화를 필두로 한화케미칼·한화테크윈·한화지상방산·한화시스템 등 총 13개 회사가 장교빌딩에 입주해 있다. 1988년 설립된 장교빌딩은 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이 한창인데 2011년 시작된 리모델링은 건물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며 장기화됐다.
한화그룹은 2002년 기업 구조조정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소유하던 장교빌딩을 자산관리회사에 매각했다가 5년 뒤 다시 사들였다. 1860억 원에 팔았지만 청계천이 재개발되며 빌딩 가격이 올라 두 배 가까운 3500억 원에 되샀다.
한화케미칼 소유의 장교빌딩은 한화생명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한화생명은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5205억 원을 들여 장교빌딩과 부속 토지를 매입했다. 한화 사옥은 소유주가 한화케미칼(한화석유화학)에서 한화생명으로 바뀌며 리모델링 작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사옥에 입주한 한화건설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한화생명에 171억 원의 임차료를 지불했다.
한화 사옥에는 재미있게도 경찰이 입주해 있다. 성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 산하 여성청소년수사1대와 2대가 입주인이다. 경찰이 한화 사옥에 둥지를 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정보2분실이 한화 사옥에 들어가 있었다.
대기업 사옥에 경찰이 입주한 것은 1980년대 파출소 부지가 있었던 지분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을지로2가 제16·17지구 재개발사업(1983년 9월 12일~1988년 3월 31일)에 따라 당시 한화 사옥 부지에 위치해 있던 한화,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 태평로1가 동사무소, 을지로2가 파출소의 지분이 인정됐다.
효성그룹의 본사 사옥은 마포구 공덕동에 자리하고 있다. 마포 사옥에는 (주)효성의 중공업, 섬유 분야와 계열사의 일부 부서가 입주해 있다. 마포 사옥은 효성 계열사인 공덕개발이 소유하고 있는데 (주)효성이 매년 공덕개발에 지불하는 임차료는 54억 원 수준이다. 공덕개발은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로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서울 반포와 방배에 있는 효성 빌딩에도 (주)효성 일부 조직이 입주해 있다. 이들 빌딩에 (주)효성은 매년 40억 원 상당의 임차료를 지불하고 있다. 반포와 방배 빌딩 역시 오너일가의 개인회사인 ‘신동진’이 소유하고 있다. 신동진은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현상 회장이 지분 80%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신동진은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효성그룹의 위장계열사로 적발됐다.
신동진은 오너일가의 개인 회사가 효성 계열사를 입주시켜 임대료 수입을 거둔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 통상 대기업이 본사 사옥 건물을 법인 소유로 두는 것과는 상반돼 재계에서도 논란이 됐다. 종업원이 12명인 신동진의 2016년 매출은 172억 원, 영업이익은 96억 원이다.
부동산계의 큰손으로 급부상한 부영그룹 사옥에는 기업 성장의 역사와 희비가 서려 있다. 중견기업이던 부영이 재계 16위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부영은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대우자판부지·포스코건설 사옥·KEB하나은행 본사 사옥 등을 매집하며 오피스 빌딩계 큰손으로 부상했다.
부영의 본사 사옥은 중구 서소문동에 있다. 2003년 중견 건설업체 부영이 553억 원에 동아건설 사옥을 인수해 부영으로 건물이름을 바꿔 달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120-3에 위치한 이 건물은 동아건설이 1980년대 초 준공해 사용해 왔는데, 경매가 두 차례 유찰되며 당초 감정가격인 710억 원에서 한참 낮은 553억 원에 최종 낙찰됐다. 건물을 사용하던 동아건설은 청산절차를 밟았지만,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부영은 사세를 확장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재계 30위 기업으로 올라선 하림은 논현동 시대를 열었다. 하림그룹은 호남 지역 기업으로 출발해 닭고기 사업으로 명실상부한 대기업이 됐다. 하림그룹은 계열사인 ‘제일사료’가 소유하고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신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논현 사옥에는 하림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팜스코와 일부 계열사의 본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16층으로 이뤄진 하림 신사옥은 부지가 좁아 계열사들이 입주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 때문에 계열사들의 본부 정도가 입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건물 소유주인 제일사료가 계열사로부터 받는 임차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림그룹이 논현동 시대를 연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호남 기업인 하림그룹이 지역색을 빼고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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