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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억새꽃 축제'가 아니라 '억새 축제'

억새(벼과, 학명 Miscanthus sinensis var. purpurascens)

2017.12.06(Wed) 16:10:24

[비즈한국] 산과 들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던 단풍 물결이 한바탕 불어제친 회오리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어느새 단풍철이 지나고 발가벗은 나목(裸木)만이 황량한 숲속에 남아 양팔 벌리듯 빈 가지를 활짝 펼치고 앙상하게 서 있다. 차가운 바람이 신음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빈 가지 사이를 빠져나가 산골짝을 훑고 지나간다. 이따금 휘몰아치는 돌개바람에 떨어진 낙엽은 이리로 저리로 휩쓸려 떠돌다가 낮은 도랑이나 으슥한 귀퉁이, 계곡에 쌓이고 묻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영면(永眠)의 자리를 잡는다.

 

이맘때쯤이면 산기슭 언덕배기, 황량한 들판과 강변에 억새의 하얀 솜털 씨앗 송이가 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의 만장(輓章)인 양 흐느끼듯 바람에 나부낀다. 무리를 지은 억새 씨앗 송이가 하얀 물보라처럼 넘실대며 가을을 흘려보낸다.

 

무리를 지은 억새 씨앗 송이가 하얀 물보라처럼 넘실댄다. 이 하얀 솜털 씨앗은 ‘억새꽃’이 아니다. 사진=필자 제공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억새의 하얀 솜털 씨앗마저 떠나버리고, 앙상한 쭉정이만 남은 억새의 이삭 줄기는 바람이 불 적마다 서로 비벼대며 사각대다가 닳고 꺾이고 부스러지며 사그라져 간다. 한해살이 삶을 끝내고 씨앗마저 떠나보내고 난 후 그 흔적마저 지우는 장엄하고 비장한 한 생의 마무리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처절한 억새의 흐느낌과 같은 솜털 씨앗 송이 휘날림을 축제라 하여 맞이한다. 널따란 억새밭은 단풍놀이 명소만큼 관광자원이 되고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에 대한 홍보 활동도 활발하게 펼친다. 그런데 이들 홍보물을 대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더구나 올해는 생물자원 활용으로 발생한 이익을 원산지 국가와 공유하도록 한 국제협약으로 ‘나고야 의정서’가 국내에서도 발효되고 보니 그 아쉬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제 국가생물자원과 종자 보전에 관한 인식이 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억새풀 관광지 홍보물이나 기사 내용과 우리 노랫말에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잘못된 식물 관련 용어들이 이제는 바로 잡아야 할 때다. 잘못된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 즉 억새꽃, 상사화, 민들레 홀씨, 붉게 피는 찔레꽃 등을 이 기회에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상사화 축제’라는 현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꽃무릇이 만발해 있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확연히 다른 식물임에도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신종(新種)이 아닌 모든 초목은 각기 이름이 있음에도 무명초, 잡초로 통칭하고 이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 널리 잘 알려진 노랫말 가사도 부끄러운 구절이 있다.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노랫말도 있다. 홀씨는 고사리류 같은 포자식물의 무성생식 세포를 말하는 것이므로 민들레 홀씨는 틀린 말이다. 또 찔레꽃은 흰색이다. 붉게 피는 찔레꽃은 없다. 

 

억새꽃은 가느다란 꽃차례에 아주 작은 자줏빛 꽃술을 가을이 아닌 늦여름에 피워낸다. 사진=필자 제공


억새꽃은 위의 사진과 같이 가느다란 꽃차례에 아주 작은 자줏빛 꽃술을 가을이 아닌 늦여름에 피워낸다. 단풍에 물든 낙엽이 지고 늦가을 이후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속칭하는 ‘억새꽃’은 꽃이 아니라 잘 익어서 갓털(冠毛)이 풍성하게 부푼 억새의 솜털 씨앗 송이다. ‘억새 축제’라 해도 될 것을 굳이 ‘억새꽃 축제’라고 하는 것은 꽃과 씨앗도 구분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이 사소한 것 같지만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고야 의정서’의 의무사항 시행을 앞둔,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모두 우리 꽃에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두고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고 바른말을 찾아 쓰도록 노력하는 새로운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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