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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흡연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설 자리 좁아지는 그녀들의 아우성

흡연구역에서도 욕설 듣는 등 봉변 당하기 일쑤…인터넷 떠도는 여성 전용 흡연구역은 없어

2017.12.06(Wed) 11:27:38

[비즈한국] 2015년, 카페나 음식점이 전면 금연 구역이 된 데 이어 2017년 12월 3일부터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도 금연구역이 됐다. 환영의 목소리도 있지만 몇몇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울 곳이 없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여성 흡연자에게는 유독 가혹한 시선이 쏟아지곤 한다. 동대문 두산타워 앞 흡연구역. 사진=구예지 인턴기자


사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온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여성 흡연자들이다. 2016년 11월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 흡연자 비율은 3.1%, 남성 흡연자는 39.1%다. 여성 흡연율이 압도적으로 적지만, 여성 흡연자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흡연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여성 흡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통계뿐만 아니라 여성의 흡연 경험과 행동에도 큰 영향을 준다.

 

서울시 공식 자료로 등록된 흡연구역은 79곳이다. 가장 많은 자치구는 서초구이고, 흡연구역이 한 곳도 없는 자치구는 8곳이나 된다. 금연구역은 늘어나지만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흡연구역 관리는 여성 흡연자가 설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든다.

 

A 씨(여·​25)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친구 둘과 이야기하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50대 남성이 “XXX야, 여기서 담배 피지 마라”며 소리 지르며 욕을 한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아는 사이에도 할 수 없는 욕을 하자 A 씨는 당황했다. “우리가 떠날 때까지 욕을 퍼부었다. 남자였다면 그렇게 욕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일은 A 씨만 겪는 게 아니다. 여성 흡연자들에게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붙잡혀 욕설을 듣는 건 기본이고, 남성들과 함께 흡연해도 여성 본인만 과태료를 물기도 한다. 20대 여성 흡연자 13명과 남성 흡연자 10명에게 ‘야외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지적을 받은 적이 있는가’를 물었다. 여성 13명 모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런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그렇다”고 답한 남성은 한 명도 없었다.

 

B 씨(여·​23)는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는 “같이 일하던 30대 남자 강사는 20분에 한 번씩 담배를 피우고 왔다”며 “냄새가 밴 상태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을 계속 대면하기 때문에 흡연은 당연히 근무 외 시간에 해야 한다. 담배 냄새가 나는 여자 강사는 지적을 받지만 남자 강사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C 씨(여·​24)도 “남성들과 함께 피울 때는 눈치를 안 보는데, 혼자 피우면 눈치를 보게 된다”며 “오늘만 해도 ‘흡연구역’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다가 ‘네가 이 나라 국민이냐’ ‘니 어미 앞에 가서 피워라’ 같은 폭언을 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남성 흡연자들도 이런 분위기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경우도 있다. 남성 흡연자 D 씨(29)는 “담배 피울 때 내게는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며 “여성들에게 뭐라 하는 건 많이 봤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의 여성 흡연자 13명 중 성인이 되기 전부터 담배를 피운 4명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남성들의 ‘지적질’과 주변의 이상한 시선이 싫어 흡연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E 씨(여·​20)는 “수업시간에 책상 위에 담배를 뒀는데, 모르는 사람이 와서 지적을 했다”며 “그 후로는 흡연 사실을 숨기게 된다”고 했다.

 

최근의 금연구역 확대에 긍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F 씨(여·​23)는 “대학 안 흡연구역이 줄면서 담배를 피우다 아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며 “대개 놀라면서 가르치려고 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앞서의 C 씨는 “금연구역은 늘어나는데 흡연구역은 늘지 않는다. 주변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적어졌다”며 “흡연구역 지정에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똑같이 피워도 욕을 더 먹기 때문에 구석진 골목이나 주차장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흡연을 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분명 존재해 왔다. 금연구역 확대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혹은 불만 모두 그동안의 불편함과 연결된다. 그래서 여성 흡연구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존재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터미널에 여성 흡연구역이 존재한다는 인증샷이 올라온 것이다.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 고속버스터미널, 지리산휴게소, 보성녹차휴게소가 그렇다.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 떠도는 여성 전용 흡연구역 사진들. 그러나 직접 확인해본 결과 여성 전용 흡연구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이런 ‘여성흡연구역’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동대문 두산타워 앞과 고속버스터미널 주변 흡연 부스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여성 전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한 경찰에게 “여성흡연구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그런 건 없다”는 답을 얻었다. ‘왜 그런 걸 찾느냐’는 듯한 이상한 눈초리는 덤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도 찾아갔지만 역시나 없었다. 터미널 직원에게 전화를 해 묻자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흡연구역 자체가 생긴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때도 성별을 나누지는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사에도 소개된 적 있는 보성 녹차휴게소와 지리산휴게소에도 전화해 물었다. 두 곳 모두 “여성흡연구역은 없으며 예전에도 없었다”고 했다.

 

남성 역차별 논란까지 일으켰던 네 곳의 여성 흡연구역 사진에 관계자들은 모두 ‘그런 것은 없다’고 답했다. 사진을 누가 어디서 찍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에 여성흡연구역 설치와 여성금연정책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여성가족부는 “관련 부처가 없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또한 “정부 차원에서 금연은 권장하지만 흡연구역을 관리하지는 않는다”며 “흡연구역 지정은 지자체에서 관할하는 부분”이라며 “여성 대학생과 노동자를 대상으로 찾아가는 금연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도 밝혔다.

 

앞서의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에는 남성도 영향을 준다” 며 “그냥 보기 싫은 건데 걱정해주는 척 하는 게 더 웃기다. 남성에게는 못하지만 여성이니까 만만해서 한마디 하는 게 아니냐”고 입을 모아 말했다. 

 

G 씨 (24)는 “나는 담배를 피우지만 내 딸이나 애인은 안 피웠으면 좋겠다.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본인 건강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자라서 흡연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G 씨의 발언은 여성들이 흡연을 하면서 불편을 느끼는 시선 중 하나를 잘 보여준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의 흡연구역 모습. 남성 흡연자는 질문에 답을 잘 했지만, 여성 흡연자들은 손사래를 치며 질문을 피했다. 사진=구예지 인턴기자


여성 흡연구역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H 씨(여·​22)는 “여성 흡연구역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흡연부스에 남자들이 바글바글 할 때 피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빨리 나가고 싶다. 흉기로 위협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남성이 강자인 건 맞지 않냐”고 했다.

 

B 씨는 “여성 흡연구역을 따로 만들면 기존의 공용 흡연구역은 남성 전용, 여성 흡연구역만 여성용으로 나뉠 거 같다. 오히려 흡연할 곳이 줄어들 것 같다.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라고 했다. C 씨는 “여성 흡연구역이 생기면 안전하다고는 느낄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공간의 필요성 자체가 슬플 것 같다. 바뀌어야 하는 건 사람들의 인식이지 내가 담배 피는 공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은 “여성 전용 흡연구역이 생긴다고 (사람들의 시선이나 욕설 등) 신경 쓸 게 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여자들만 모여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욕을 하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동대문역, 고속버스터미널역, 여의도역 근처 흡연구역들을 찾았다. 여성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흡연하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말을 걸어봤다. 본인의 흡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남성들은 흡연에 대한 생각을 모두 거침없이 답했다. 반면 여성들은 담배를 언급하자마자 질색했다. ​ 

구예지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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