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수십 년간 지급·결제 시장의 ‘터줏대감’이었던 카드사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쟁 상대가 기존 금융사들을 넘어 최근 핀테크(금융+기술)를 주도하며 ‘슈퍼 메기’로 불리는 IT기업, 인터넷 전문은행 등으로 확대되면서부터다. 카드사들은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고 토로하고 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다. 내년 전망은 더 어둡다.” 한 대형 카드사 임원의 말이다. 최근 카드업계가 처한 상황과 향후 전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했다. 그는 “새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쉽지 않다. 다른 카드사들도 마찬가지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카드사들 ‘삼중고’에 고심
카드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카드사들은 ‘삼중고’에 빠졌다. △줄어든 가맹점수수료 수익 △앞으로의 대출 규제 △금융시장의 ‘메기’로 불리는 핀테크 업체들의 등장 등이다. 모두 카드사 매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앞으로 수익 악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① 줄어든 가맹점수수료 수익
11월 17일 카드업계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내 카드사의 올해 3분기 순이익은 416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246억 원)보다 20% 줄었다. 하나카드를 제외한 7개 카드사 순익이 모두 하락했다.
가맹점수수료율 인하가 실적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8월, 정부는 카드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영세·중소가맹점 범위(각각 0.8%, 1.3%)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올해 3500억~4000억 원의 손실을 예상한다.
내년 전망은 올해보다 어둡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맹점 수수료율을 단계적으로 낮춰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겠다”며 내년 중 가맹점 수수료율 2차 인하를 시사했다. 앞서의 대형 카드사 임원은 “내년 가맹점 수수료율은 더 떨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② 앞으로의 대출 규제
11월 30일 단행된 기준금리 인상은 향후 카드사들의 수익 악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카드사의 조달비용도 늘어난다. 반대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내년 2월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현행 연 27.9%→연 24.0%)되면서, 카드사들은 대출 최고금리를 낮춰야 한다.
③ 핀테크 업체들의 등장
최근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있는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ICT(정보통신) 업체 등도 카드업계의 경계 대상이다. ICT업체들은 각종 페이·간편결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핀테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26일 발표한 ‘2017년 2분기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을 보면, 올해 2분기 하루 평균 간편결제 수단 사용액은 567억 원으로 1분기보다 26.9%(447억 원)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약 360% 증가했다. 2008년 통계가 작성된 후 최고치다. 사용자 수는 이미 카드업계를 넘어섰다. 네이버페이(2400만 명)·삼성페이(1100만 명) 등 순이다. 카드업계 1위 신한카드 가입자는 2200만 명이며, 앱카드인 신한판(FAN) 이용자는 약 1000만 명이다.
인터넷은행은 한 발 더 나아가 신용카드 사업까지 준비 중이다. 카드사가 ‘시장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전망은 여기서 나온다. 특히 인터넷 은행은 중간 수수료를 없애는 새로운 결제 시스템인 ‘앱투앱(app-to-app)’ 서비스 도입을 앞두고 있다.
앱투앱 결제는 물건을 산 고객이 미리 설치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상점에 직접 송금하는 방식이다. 기존 부가통신사업자(VAN사)나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사) 등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아 중간 수수료가 없다. 이에 따라 가맹점수수료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카드업계에 수수료 추가인하 요구 압박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신용카드사업자 인가를 받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 대형 카드사들 ‘공동대응’ 필요성에 공감
카드사 위협 요소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대형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공동대응’에 대한 인식이 높다. 국내 신용카드시장이 포화 상태라, 기존 전략을 유지한다면 타사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치킨게임’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대형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이용액은 늘 수 있어도 성장폭과 수익성은 정체된 상황”이라며 “최근 카드 업계에선 기존 고객을 지키거나 타사에서 새 고객 유치하는 것보다 새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은행과 카드 등을 보유한 대형 금융지주사들은 ‘플랫폼’에 집중한다. ICT기업 등이 결제 플랫폼을 선점해 몸집을 불린 것에 더해 소비자 소비 패턴, 사업자 매출 자료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수익원까지 확보했기 때문이다. 실제 한 페이사 관계자는 “인터넷 포털사가 간편결제를 통해 확보한 고객 결제 데이터로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면 광고 단가도 크게 올라간다”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최근 카드사들이 공동으로 간편결제 시스템을 구축해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융사별로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보다 공동으로 간편결제 시스템(플랫폼)을 도입한 뒤, 축적한 고객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별도로 기존 ‘앱카드(모바일 신용카드)’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앞서의 ‘앱투앱’ 결제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비용 마련, 결제정보 공유 등 ‘넘어야 할 산’ 커
반대로 카드사들이 공동대응 인식은 함께하지만 실제 도입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국내 카드사 8곳과 여신금융협회는 모바일 협의체를 구성해 ‘한국형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표준 규격’을 만들기로 했다. NFC는 카드나 스마트폰을 단말기 가까이 대면 결제가 이뤄지는 기술이다.
그간 신용카드사들이 각기 앱카드를 내놓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앱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단말기 보급이 늦어졌다는 판단에 협의했지만, 1년이 넘은 지난 10월에서야 일부 대형 가맹점에 단말기 8만 9000대를 설치하고 시범 서비스에 들어갔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각 카드사별로 CEO 결제를 받고 비용 마련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특히 각 카드사가 시장점유율에 비례해 분담금을 내 시범서비스 비용을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카드사별) 경영환경이 어려워 모금이 순탄치 않았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카드사 독자 규격을 갖춰야 한다는 공통 인식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신용카드 더치페이 서비스에선 ‘공동대응’의 현실적 어려움이 그대로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카드 더치페이란 고객 한 명이 대표로 물건이나 음식값을 결제한 뒤 추후 다른 사람과 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같은 카드사 고객끼리만 이용이 가능하다. 각 카드사는 편리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서비스를 도입한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서비스는 아니다. 그동안 고객들의 요청이 많아 도입했다”면서도 “모든 카드사가 이 서비스를 도입하더라도 통합은 쉽지 않다. 카드 포인트 통합도 어려운데, 고객들의 결제정보 등을 각 카드사가 공유하는 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카드사들의 변화 속도가 느린 점은 공통된 인식이다. 공동 플랫폼 등의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
[재벌 본사 건물 해부2] '분가'해 근사한 새 집 마련, 임대수익도 '쏠쏠'
·
중국인 '여행 공략집' 한국 상륙, '싼커' 맞춤형 서비스가 관광한류 살릴까
·
남경필 지사 '엄포'에도 버티는 이중근 부영 회장 '패기'의 원천
·
김승연 한화 회장 집터 담보로 회사에 71억 빚 20년 만에 갚은 사연
·
[재벌 본사 건물 해부1] '주력사' 이름으로 창업주 경영철학 담은 랜드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