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잠시라도 쉴 곳이 간절하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 이동노동자는 약 297만 964명. 서울시에는 이들을 위한 쉼터 21개소가 있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시기, 쉼터들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 ‘비즈한국’은 여성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 ‘이어쉼’ 2개소와 대리기사, 퀵서비스 기사를 위한 ‘휴(休) 이동노동자 쉼터’ 2개소, 총 4곳을 찾았다.
# ‘이어쉼’ 이동노동자 위한 쉼터라더니…관리직원 “이동노동자가 뭐예요?”
‘이어쉼’은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이 담당하며 위탁 운영을 맡기는 곳으로 요양보호사, 방문판매원 등 고정된 업무공간이 없는 이들을 위한 휴식처다. 서울시내에 18곳이 있다. 2014년 8개소, 2015년 10개소를 총 예산 1억여 원을 투입해 만들었다. 서울시는 이어쉼을 각 단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와 이동노동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정작 필요한 사람은 찾지 않는 시설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서울 도심의 한 복지관 1층에 있는 이어쉼. 오후 2시. 추운 날씨에 외투를 여미며 쉼터로 들어갔지만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찬 공기를 막아줄 출입문이 없기 때문이다. 30명 정도가 들어가도 남을 만큼 큰 쉼터는 비어 있고 TV 소리만 가득했다. 오후 3시. 1시간이 지났지만, 쉼터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쉼터 옆 안내실로 향했다. 창문을 두드리자 서류 작업을 하던 관리직원이 작은 창을 열었다.
관리직원은 “하루에 이어쉼을 이용하는 인원이 50명 정도”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놀랐다. 이동노동자만 50명이냐 물었지만, 직원은 이동노동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방문판매원 등 외부에서 이동하며 일을 하는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니다. 오전에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방과 후 어린이들이 복지관 프로그램 때문에 온다. 이동노동자는 전혀 안 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시에 따르면 이 복지관 이어쉼을 방문하는 이동노동자는 하루 평균 18.4명이었다.
오후 4시 30분. 서울 남부권 주민공동이용시설 이어쉼을 찾아 걸었다. 길을 찾는 동안 만난 일명 ‘요구르트 아줌마’는 “이어쉼이 뭐예요? 그런 게 있어요?”라며 전용 스쿠터를 타고 사라졌다. 오후 4시 45분. 주민공동이용시설 1층 구석에 있는 쉼터를 가까스로 발견했다. 불이 꺼진 작은 도서관과 화장실 사이 좁은 골목 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이 잠겨 있었다. 대문 손잡이 위에는 ‘이어쉼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현관 앞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관리자에게 요청하자 문을 열어 주었다. 8명이 들어갈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선반 위에는 지역 알림판과 어린 학생들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관리자에게 이어쉼을 이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많아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따로 방명록을 쓰지 않아 정확한 인원은 알 수 없었다.
그중 이동노동자가 몇 명이냐 묻자 “여긴 그런 사람 없어요. 그냥 주민이 다 같이 사용하는 곳이지”라고 말했다. 이동노동자 쉼터란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20분도 채 있지 못하고 쉼터를 나왔다. 현관 앞에 서 있었지만 이동노동자는 오지 않았다.
# 휴(休) 서울이동노동자 쉼터, 좋은 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만족도 높아
서울시 일자리노동정책실 담당으로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위탁 운영하는 ‘휴(休) 서울이동노동자 쉼터’는 이용자 만족도가 높다. ‘이동노동자 지원방안 연구’를 토대로 설립했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대리기사와 퀵서비스 기사를 고려한 위치선정이 유효했다. 2016년 3월 서초점 개소 이후 2017년 3월 장교점, 지난 11월 29일 합정점까지 성공적으로 열었다. 기사들의 건의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점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오전 10시 40분. 빌딩숲 사이를 걸어 중구 한빛갤러리에 있는 휴(休) 서울이동노동자 장교 쉼터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온기가 느껴졌다. 입구 정면에 넓은 책상과 의자, 수십 개의 휴대폰 충전기, 컴퓨터 2대가 보였다. 관리실 옆으로 발마사지기 2대와 안마의자 2대가 시선을 끌었다. 기계 정면에는 덧신을 신으라는 안내문과 ‘사용 전, 사용 후’로 나뉜 통이 놓여 있었다. 퀵서비스 업무가 바쁠 때인지 기사들은 없었다.
휴 서울이동노동자 장교 쉼터. 사진=김종용 인턴기자
12시 40분. 쉼터를 다시 방문했다. 점심을 먹고 온 8명의 기사는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장교 쉼터를 관리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 정경화 간사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하루 평균 60~70명 방문한다. 여성노동자를 위해 휴게실을 따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장교 쉼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토바이 자가정비 교실, 퀵서비스 교육 등 직무교육과 주거상담(LH공사), 건강상담(근로자건강센터), 금융상담(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을 매주 번갈아 진행한다. 정 간사는 “특히 기사들이 건강상담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1시 20분이 되자 쉼터 이용자는 15명으로 늘었다. 이곳에서 만난 최 아무개 씨는 “쉼터가 생겨 너무 좋다. 퀵서비스가 몰리는 시간이 있어 그 외에는 대기시간이 긴데 쉼터가 없을 때는 처마 밑에 숨고, 건물 안에 있다가 관리인에게 쫓겨난 적도 있다”며 쉼터를 만족스러워했다.
오후 11시 30분. 휴(休) 서울이동노동자 서초 쉼터를 찾아 신논현역을 나오니 비가 내렸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모여 있던 대리기사들은 쉼터로 자리를 옮겼다. 서초 쉼터에는 커피 자판기(무료)와 전자레인지, 컴퓨터 3대, 발마시지기 3대가 있었다. 오전 2시 40분이 되자 쉼터에 14명의 기사가 모였다. 애플리케이션 조작이 서투른 김 아무개 씨를 위해 여러 명의 기사가 자신만의 업무 팁을 주며 담소를 나눴다. 오전 3시 14분. 기존 14명에서 7명이 늘어 21명으로 쉼터가 가득 찼다.
서초 쉼터 배병호 간사는 “직원들이 전단을 만들어 대리기사 회사에 돌리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들어가 알리기도 한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분이 이용하면 좋겠다”며 “건강, 금융 상담 외에도 법률과 전직 상담도 진행한다”고 밝혔다. 오전 4시. ‘오더’를 받은 기사와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낸 기사가 나가니 4명 남짓한 인원이 남았다. 이들은 관리직원과 편하게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전 5시 30분. 첫차 시간이 가까워지자 남은 4명의 기사도 밖으로 나갔다.
휴(休) 서울이동노동자 쉼터가 활발히 운영되는데 비해 이어쉼이 원활히 운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실은 “최근 간담회를 열었다. 콜이 올 때까지 긴 시간 대기하는 대리기사, 퀵서비스 기사와 달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는 대기 시간이 짧아 별도의 쉼터가 필요 없다는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이어쉼을 확대할 계획은 없다. 이미 설립된 쉼터는 직종별 협회, 노동조합을 통해 홍보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종용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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