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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염색신공으로 입스와 싸워" LPGA 평정 박성현의 남다른 골프인생

24개 대회서 10번 컷오프 슬럼프도…렉시 톰슨과 라운딩 후엔 그녀의 웨이트 동영상 연구

2017.11.27(Mon) 13:12:45

[비즈한국]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39년 만에(1978년 낸시 로페즈 이후) 신인왕과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까지 휩쓴 박성현(24·KEB하나은행). 이 놀라운 기록이 미국 진출 첫해에 이뤄진 결과물이란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올해의 선수상은 유소연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LPGA 한국 선수 중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는 박인비(2013년)뿐이었다. 

 

미국 진출의 길도 다른 선수들과 ‘남달랐다’. 틈틈이 비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LPGA 투어 7개 대회에서 상금순위 20위에 해당하는 68만 2000달러를 획득해 2017년 L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비회원 선수가 상금순위로 LPGA 투어에 직행한 것은 박성현이 사상 처음이다. 

 

LPGA 최초 신인 세계랭킹 1위 박성현 프로. 사진=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LPGA 투어에 나타난 박성현은 특유의 ‘닥공(닥치고 공격) 샷’으로 전 세계 골프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올 시즌 전반기에는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아쉬움만 곱씹다가 3, 4개월 후에는 투어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팬클럽 이름은 ‘남달라’. 박성현의 남다른 LPGA 정복기를 소개한다. 

 

# ‘남다른’ 박성현의 LPGA 성공 스토리

 

“LPGA 진출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내가 원래 외국을 안 좋아하는 편이다. 해외 동계 훈련을 제외하고는 가급적이면 한국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깐의 동계 훈련이 아닌 아예 투어 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이동하는 것 아닌가.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서 잘 지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먼저 미국에 가서 살게 될 집을 둘러보고 그곳에 머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1년 전 LPGA 진출을 앞둔 박성현은 기자에게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기자를 만난 시점이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 거처할 집을 보고 귀국한 직후였다. 올랜도를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뀌게 될 환경과 언어 소통에 대한 부담이 그의 마음을 짓눌렀지만 미국을 다녀온 뒤로 헤쳐 나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LPGA에 진출한 박성현은 시즌 첫 대회부터 3위를 기록했고 5월 말 열린 볼빅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우승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지만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다. 첫 우승은 LPGA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이뤄졌다. 7월 US여자오픈에서 우승을 맛본 박성현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이후 무려 9개 대회에서 톱10에만 여섯 차례나 올랐고 8월 캐네디언 퍼시픽 위민스 오픈에서는 시즌 2승을 달성했다. 

 

이 시기에 박성현은 신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올 시즌 박성현은 LPGA 23개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 2회, 톱10 11회를 이뤄냈다. LPGA 신인이 이룬 성적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박성현의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스포츠 홍미영 상무는 박성현의 성공 비결로 자기 스타일을 버리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즌 초반 우승 문턱에 이르렀다가 주저앉은 적이 많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박성현 프로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자기 스윙을 갖고 자기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던 게 올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숏게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숏게임을 보완해나갔고 우승에 이르게 됐다. 원래 박 프로는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US여자오픈 우승 후 첫마디가 ‘이게 왜 이렇게 안됐지’였다. 즉 이렇게 할 수 있는 우승을 왜 이렇게 힘들게 이뤘나 하는 의미였다.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번번이 좌절을 느꼈던 사람이 뱉어낸 말이라 그냥 흘려듣지 않게 되더라.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KLPGA 투어에서도 박성현은 숏게임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올 시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가 270.815야드(전체 7위, 한국에서 평균 드라이버는 265.59야드)일 정도로 장타는 인정받았지만 숏게임은 한국, 미국에서도 계속 제기된 문제점이었다. 

 

박성현은 KLPGA 시절 숏게임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실전 경기에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봤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난 연습장에서 배운 걸 실전 경기에 적용시켜 보는 걸 선호한다. 연습장에서 했던 샷을 실전에 적용시키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줄곧 경기하면서 쳐보고 몸으로 익혀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상금왕, 신인상, 올해의선수상을 동시 석권한 박성현 프로와 데이비드 존스 캐디. 사진=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LPGA 도전, 꿈은 이루어진다!

 

박성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처음부터 골프 선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골프였고 자연스레 재미가 붙으면서 골프 경기를 찾아보기도 했다. 박성현은 LPGA 진출 직전 이뤄진 인터뷰에서 TV를 통해 LPGA 대회를 접했던 경험담을 들려줬다. 

 

“골프를 막 시작했을 때 TV로 LPGA 경기를 보다가 선수들 이름을 모르니까 엄마한테 선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애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박세리, 김미현 선수의 이름을 들려주셨다. 어린 마음에 그분들이 골프하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나도 미국에 가서 골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LPGA 무대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게 신기하다. 세계에서 가장 골프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곳인데 그곳에서 투어를 하게 됐으니 말이다. 꿈은 이뤄진다는 말이 나한테도 해당되는 것 같다.”

 

박성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드라이버 입스를 경험했다. 티 박스에 올라서면 스윙 타이밍을 잡지 못해 OB를 내기 일쑤였다. 루키 시즌이던 2014년, 24개 대회에 참가해 10차례나 컷오프를 당했다. 2014년 한화금융 클래식 3라운드 4번홀(파5)에선 OB 3방을 내며 12타를 친 적도 있었다. 당시 박성현은 중학교 시절의 스윙 영상을 찾아보며 문제점을 찾아냈고, 가까스로 입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OB는 박성현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한 라운드에 OB가 대여섯 차례 나온 적도 있었다. 그땐 새로운 건 무서워서 시도조차 안했다. 무서운 마음에 자꾸 뒤로 도망가니까 샷이 더 안 되더라. 그 경험을 통해 생각을 바꿔 먹었다. 새로운 걸 시도하지 못하는 골퍼는 성공할 수 없다는 다짐과 함께 자꾸 변화를 주고, 다양한 방법을 추구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게 결국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박성현외 왼손목에는 ‘Lucete’(루케테, 밝게 빛나라)라는 라틴어 문신을 새겨져 있다. 2부 투어에 있을 때 우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다고 한다. 입스에 빠졌을 때는 3주에 한 번씩 염색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견뎌내려는, 이겨내려는 그만의 작은 몸부림이었다.

 

올해의선수상 공동수상으로 트로피를 함께 들고 있는 박성현 프로와 유소연 프로. 사진=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 “박성현은 굉장히 영리하고 센스가 있는 선수”

 

2014년 KLPGA에서도 박성현의 존재감은 극히 적었다. 그러다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5년 6월,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 최종일 마지막 홀에서 1m 거리의 버디 퍼트를 놓치며 연장전에 돌입했다가 우승에 실패하면서부터다. 2주 후 그는 한국여자오픈에서 정규 투어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KLPGA에 박성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2015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박성현은 LPGA를 대표하는 장타자 렉시 톰슨, 미셸 위와 한 조를 이뤘다. KLPGA에서 최고의 비거리를 자랑하는 박성현도 자존심을 걸고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1번 홀부터 힘이 많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실제 라운딩 해보니 미셸 위보다 렉시 톰슨의 비거리가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렉시 톰슨과의 대결은 박성현에게 새로운 배움을 안겨줬다. 

 

“경기 후 렉시 톰슨의 SNS를 찾아 들어갔다. 그가 어떤 운동을 하기에 그런 비거리가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렉시 톰슨이 SNS에 올려놓은 웨이트트레이닝 동영상을 연구했고 참고했다.”

 

정말 남다른 박성현이 아닐 수 없다. 박성현의 팬클럽 이름은 위에 소개한 대로 ‘남달라’. 그의 별명이기도 하다. 박성현이 소개한 ‘남달라’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중학교 때 날 가르치신 선생님이 남들보다 달라야 그 위에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남달라’를 애칭으로 사용했고, 온라인 게임할 때 ID로도 썼다. 골프백에는 ‘namdala’라고 새겨 넣기도 했다. 결국 팬클럽 이름도 ‘남달라’가 됐다.”

 

상금왕, 신인상, 올해의선수상을 동시 석권한 박성현 프로가 올해의선수상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박성현의 팬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남녀노소다. 다양한 연령층의 골프 팬들이 박성현을 응원하며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박성현은 자신이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자세를 낮춘다. 

 

1년 전 기자를 만났을 때만 해도 박성현은 자신이 LPGA에서 실패하고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1년 후의 박성현은 실패가 아닌 대성공을 이뤄냈다. 

 

박성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던 홍미영 세마스포츠 상무는 박성현을 가리켜 “센스 있고 영리한 선수”라고 평했다. 

 

“미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영어에 자신 없어 했던 박성현 프로였다. 지난 7월 US여자오픈을 보기 위해 미국에 갔다가 박 프로가 캐디랑 편하게 의사소통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듣기는 거의 완벽했다. 아직까지 인터뷰할 때는 통역을 대동하면서도 통역이 정확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다. 아무리 피곤해도 자신이 세운 계획은 꼭 실천에 옮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홍 상무는 박성현이 미국 진출 첫 우승 후 남은 시즌을 숨 가쁘게 달렸고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얻어냈지만 반면에 그만큼 내년 시즌이 부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박성현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입스도 이겨냈고, 지독한 OB의 슬럼프도 견뎌낸 그가 어떤 시련을 두려워하겠나. 센스 있고 영리한 선수라면 말이다. 박성현의 3관왕을 축하한다.

이영미 일요신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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