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자신이 없다.” “사소한 일에도 끙끙 고민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자칫 불리해 보이는 네거티브 사고의 소유자. 그런데 그로 인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가 있다. 바로 일본 다이소산업의 야노 히로타케 사장(74)이다.
생활용품을 100엔 균일가에 판매하는 다이소는 일본 거리에서 친근한 존재다. 고작 100엔 숍이라고 깔봐서는 안 된다. 다이소는 일본 국내에만 3150개 점포, 해외 26개국에 1800개 매장을 가진 유통업계의 ‘공룡기업’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다이소의 연간 매출은 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쯤 되면 ‘시대의 총아’로 불려도 손색없을 그다. 하지만 야노 사장은 스스로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의 결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답 안 나오는 아저씨일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10년 전까지만 해도 ‘조만간 다이소는 망할 게 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소 점포가 늘어나는 게 무서워 “내지 마, 내지 마!”라며 주변 사람에게 말하고 다녔단다.
성공한 기업인답지 않게 부정적인 발언을 자주 해 일본 네티즌들에게는 ‘괴짜 사장’으로 통한다. 이에 대해 야노 사장은 “기본적으로 나는 소심하다.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소심하고 비관적인 성격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뭐든지 계속 잘나갈 순 없다는 게 그의 인생철학. ‘더 좋은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손님이 끊길 것’이라는 염려가 새로운 상품개발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겸손하다 못해 어찌 보면 자학적인 면도 있다. 일례로 “회사 직원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묻자 “퇴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왜 그는 이토록 비관적일까. 하지만 야노 사장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린다. 직업 바꾸기를 9번. 야반도주와 화재사고 등 천신만고 끝에 이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때 기자들이 그를 두고 ‘불행이 들러붙었던 억만장자’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야노 히로타케는 1943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의사였는데, 가난한 환자들에겐 돈을 받지 않아 그다지 유복한 형편은 아니었다. 야노는 결혼을 계기로 처가의 방어 양식업을 물려받지만, 3년 만에 부도가 나 빚더미에 앉았다. 결국 형제들에게 700만 엔(약 7000만 원)의 빚을 남기고, 도쿄로 야반도주를 한다. 그 뒤 세일즈맨, 종이회수업자, 볼링장근무 등 9번의 전직을 거듭했으며 그때마다 좌절을 맛봤다. 막내아들이 걱정됐던 부모님은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성화였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쩔 수 없이 히로시마로 향했다.
그러던 1972년, 야노는 아내와 함께 트럭에 잡화를 싣고 이동판매하는 ‘야노상점’을 창업한다. 부도기업과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기업의 재고품을 매입해 싸게 파는 장사였다. 물건들이 곧잘 팔려 모처럼 그의 인생에도 봄날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또다시 불운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화재로 트럭을 비롯해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마저 불타버린 것이다. 게다가 보험을 들지 않아 배상금도 한 푼 없었다.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야노 사장은 한 달 내내 앓아누웠다고 한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자 ‘인생이란 캄캄한 어둠과 같다. 언제 헛발을 디뎌 떨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다시 일어나야만 했다. 히로시마의 슈퍼마켓에 부탁해 매장 한쪽에서 100엔 균일가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이 작은 출발이 오늘날의 다이소로 이어지게 된다.
성공한 지금도 “죄송하다”를 입에 달고 살며, 매번 겸손해하는 야노 사장이다. 그렇다고 해도 회사를 이만큼이나 키웠으니 사업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일본 주간지 ‘주간겐다이’와의 인터뷰에서 야노 사장은 “그런 건 없다”며 딱 잘랐다. 다만 일하는 것이 너무 좋단다. 특히 육체노동을 좋아해 지금도 자금사정이 나빠지거나 불안할 때면 창고에 가서 상품 정리를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침착해진다.
‘100엔 균일가’라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야노 사장은 “간단히 말하면 계산하기가 귀찮아서였다”고 털어놓는다. 어느 날 트럭에다 상품을 싣고 이동판매를 하는데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이건 얼마죠?” “이건요?” 하며 여기저기서 물어왔다. 가격표를 일일이 붙이는 데도 품이 모자라던 시기였다. 일손은 부족하고 정신없이 바쁜 탓에 “전부 100엔!”이라고 말해버렸다.
그 후 모든 상품을 100엔으로 통일했더니 주부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손님들로부터 ‘싼 게 비지떡이지’라는 말을 들었을 땐 꽤 충격이 컸다. “어차피 싸구려는 금방 망가질 테니 돈만 버린다”는 손님도 있었다. 100엔 가치의 물건을 100엔에 파는 건 고객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이런 것까지 100엔에 살 수 있다니”라는 놀라움이 다이소의 생명선이다.
이후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고객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품질 좋은 상품을 팔기 위해 노력했다. 원가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자 매출이 껑충 뛰었다. 야노 사장은 “100엔이라는 상한선이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좋았다. 덕분에 상품을 어떻게 연구하고, 어디서 유통비를 줄여야할지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로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며 업계마다 아우성이다. 소매업계의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될까. 야노 사장은 “머리를 굴려 계획을 짜도 예상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오직 손님을 위해 ‘100엔에 살 수 있는 고급품’을 연구하고 만들어낼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성공을 이렇게 말한다.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지혜가 성공의 원천이 되어 준다. 성공은 운이나 능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애초 운(運)이란 것은 무기로 내세울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야노 사장의 성공 뒤에는 결코 방심하지 않는 위기감, 그리고 불운을 노력으로 이겨낸 집념이 있었다. 참고로, 한국 다이소는 원래 일본 다이소의 납품업체 중 하나였으며, 야노 사장의 허락 하에 다이소 이름을 빌렸다고 한다.
강윤화 외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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