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이후 많은 사람이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다고 토로하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사람의 전화번호는 기억한다. 터치 한두 번으로 전화할 수 있지만,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기억한다. 애인의 전화번호와 아파트의 비밀번호, 학교의 번호를 기억한다. 부모님의 생일을 기억하고 애인의 생일도 기억한다. 이처럼 기억하는 일은 중요한 무언가를 잊지 않고 챙기기 위해서다.
일본은 재난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한다. 일본이 한국의 태안 기름유출 사고와 세월호 사고로 비유되는 고베 대지진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 1995년 벌어진 고베 대지진은 6400여 명의 사망자와 4만 3000여 명의 부상자, 그리고 약 10조 엔의 피해를 낳았다. 일본은 2002년 고베 대지진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인간과 방재미래센터’를 건립했다.
고베지진방지센터라고도 불리는 이 박물관은 고베 대지진 관련 자료를 수집 및 보존하고 재해 및 방재 전문가를 육성하고 재해가 없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이름과 날짜를 기억하거나 무언가를 기리는 일은 너무나 소중하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현 세대에 대한 조명보다 과거에 대한 향수와 교조적 평가가 전부였다. 한국의 현대사를 만든 사람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현 세대의 주역인 미래를 만들 사람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부족한 청년 정책과 부실한 교육 정책 모두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 부족에서 나온 결과다.
최근 논란이 된 박정희 동상도 마찬가지다. 과거 시대 아이콘인 박정희 대통령을 재조명해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사회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그를 기억하는 일은 그 혹은 그가 상징하는 가치가 현 세대의 공동체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공과 과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그가 상징하는 과거 1960년대의 개발 가치가 과연 2017년에 필요한지 판단하자는 뜻이다. 필요하면 하고, 필요 없으면 하지 않는 것이 실용이며 그것이야말로 박정희의 가치가 아니었던가. 미래 세대에게 필요 없는 가치라면 세울 이유도 없다.
현 시대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미래를 위하지 않는다. 과거 백성의 단합을 위해 왕의 동상을 만들던 나라는 대개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몰락에 봉착했던 왕조였다. 대한제국은 과거사를 발굴하는 데에 힘썼고, 북한은 동상을 세웠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과거 박정희 정권의 민족주의 고취 일환 중 하나였다. 역대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일은 결국 과거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이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막기 마련이다.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면 동상은 민주주의와 새로운 세대를 향하는 길을 막는 걸림돌이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추억하기보다 새롭게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고민하자. 역대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무의미하다. 그의 공과 과를 평가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치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서 나온다. 동상, 세우지 말자. 박정희라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가치를 담은 동상이라 문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추앙이 아닌 미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현모 알트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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