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행 의료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가 들어간 문장을 읽고 저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쓰지 않으려 했으나,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에겐 범죄 행위를 재단하는 일이 한낱 쉽고 간편한 일이겠지요. 당신이 아닌 누군가를 방에 앉아 비난하고, 그 사람이 응당 맡아야 할 사회적 책임을 부풀려 한껏 꾸짖고 단죄를 부르짖으면 되는 일이겠지요.
의료에 종사하는 자는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보다 우리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러 기자회견을 열어서 일개 환자에 대한 정보를 떠벌일 의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당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아무도 관심이 없기에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잠깐 검색만 해보아도 세상 많은 기사들은 누군가의 질병 상태나 외상을 기사화하고 있습니다. 당신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다치고 치료받는 순간, 그것들은 아무도 몰라야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럼에도 그것은 전부 의료법으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그 기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의사가 발설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의사에게 묻기 때문이고, 여기서 사회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함의가 있으며, 그것이 공론화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 귀순, 판문점에서의 총격, 국민과 언론의 큰 관심, 이것 때문에 사회는 의사에게 그 사람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 의사는 ‘국민에게 그 환자의 상태를 소상’히 알릴 수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언급한 ‘수술 상황이나 감염 여부 등 생명의 위독 상태’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짊어지고, 방금까지 수술방에서 그 사람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다가 나온 사람은, 누군가 묻기에 그 준엄한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리고 그 환자의 상태를 언급합니다. 그 언급은 제가 보기에 단순히 고군분투한 사람의 언어입니다. 그가 앓았던 병이나 영양 상태는 생명의 위독 상태와 직결됩니다. 기생충은 당신이 언급한 감염 여부이며, 수술 상황입니다. 위장에 든 옥수수는 그가 먹었으니 거기 있는 겁니다. 소장 안의 분변은 당신을 포함한 지구 모든 사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배 안에 들어있는 분변이나 방금 먹은 점심이 부끄럽습니까. 적어도 우리는 환자 배 안에 무엇이 들어있어도, 호들갑 떨거나 놀라거나 자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그것을 직시하고 치료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 현장의 끔찍함을 보고 나와 소상히 알리는 언어가 당신에게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것입니까.
1년에 한 알만 먹어도 되며 500원도 안 하는 구충제가 없어, 인분을 비료로 쓰기에, 북한의 주민 대다수는 기생충 감염을 앓고 있습니다. 보건위생의 미비로 그 나라 대다수가 앓고 있는 감염이, 그곳에서 넘어온 한 병사에게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알리는 것은 사회적 맥락과는 관련 없이 그 사람의 인권을 학살하는 것입니까. 당신에게는 극단적으로 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으로 판단할 지적 능력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번 사건과 그가 행한 일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려는 것은, 당신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사람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기생충은 그냥 보건 의료의 미비로 인한 감염입니다. 지구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극히 적고, 그 나라에는 많을 뿐입니다. 그 논지를 확장해 ‘북한은 더러운 나라, 혐오스러운 나라’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당신이 가진 사고체계를 증명할 뿐입니다.
저는 제 환자가 기생충에 감염되어도, 절대로 더럽고 혐오스럽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비난은 당신네들이 잘못 만든 법에다가 하십시오. 법이 이를 진작 규정했다면, 의사들은 일언반구 없이 그 사람을 살리고는 침묵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살리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정상성과 인격의 테러를 지껄이는 것은 당신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는 많은 짐이 있습니다. 그는 환자가 있는 현장에서 피와 분변을 뒤집어쓰고, 진실을 묻는 전짓불 아래 서서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온 국민이 주목하기에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환자를, 생명이 위급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떠안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라면, 그는 그 역할을 하면서도 당신 같은 사람들이 물어뜯지 않도록 대중을 고려해서 환자에 대해 겉핥는 이야기만 언급하고, 언론의 과도한 관심과 정략적인 외부 시선을 막아내고, 수술방에 사태를 파악하러 온 요원도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그 짐은 누가 정한 것이고, 누가 원하는 것이고, 누가 짊어지게 만드는 것입니까. 또 그것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숙명을 짊어진 사람에게 일차적 비난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환자를 살리느라 지쳐 말이 말을 낳는 복잡한 상황을 헤쳐 나갈 힘까지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신 같이 지치지 않고 세치 혀를 놀리는 자만이 그를 물어뜯을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장과는 동떨어진 당신 같은 사람이 높은 자세에서 보고받고는 괜히 사견을 내세우고 꾸짖으며 ‘인권’ 같은 거창한 개념을 운운하는 것을 많이 봐 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느꼈던 분한 기시감이 이번에도 듭니다.
당신은 병사가 회복되었다고 그분께 ‘축하’드릴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는 환자가 살아났다고 축하한다는 말을 나누지 않습니다. 대신 수고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현장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 노력에만 격려를 받으면 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같이 방에 앉아 누군가를 꾸짖고 치하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그런 일을 축하합니다. 그러니 비난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겠지요. 당신같이 법을 만드는 사람이 놀면서 책상머리의 언어나 되풀이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더 많은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인권에 대한 언급, 좋습니다. 하지만 인권을 더 보호하고 싶은 것은 의사들입니다. 제발 일선에 선 사람을 비난할 시간에 권력이 있는 당신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비난하고 그런 법이나 만들어주십시오. 저희는 선량한 사람들이라 법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입을 열기 전에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떤 신념을 가지고 행하는지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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