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 X세대 총아, 나락 그리고 부활 '가위손'의 위노나 라이더

[비즈한국] “그(가위손 에드워드)가 마을로 오기 전에 눈이 온 적이 없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눈이 오거든. 지금 내리는 눈은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나는 이제 너무 늙었단다. 그가 내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게 훨씬 좋단다. 너도 언젠가 눈 속에서 춤추는 기쁨을 느끼게 될 거야.” 

영화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의 마지막 장면. 영원히 소녀일 듯했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할머니가 되어 버린 킴(위노나 라이더 분)이 자신의 푸른 시절의 추억을 손녀에게 들려주면서 말하던 대사다. ‘가위손’은 겨울로 접어들어 첫 눈이 내릴 즈음이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뇌리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찬란하고 가슴시린 동화다. 

손가락이 가위인 채 탄생한 인조인간 에드워드(조니 뎁 분)가 거대한 얼음을 기막힌 솜씨로 조각하면서 만들어내는 얼음 눈송이에 킴이 함박웃음을 짓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장면을 어찌 잊겠는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과 대조되는 하얀 옷을 입고 하얀 피부에 금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이다. 

당시 10대 후반이던 위노나 라이더는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앳된 얼굴과 유난히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환상적인 미모로 전 세계 청소년들의 첫사랑으로 자리 잡았다. 

‘가위손’처럼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그린 몽환적 동화는 정서적으로 메마를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 예로 송중기와 박보영이 주연한 ‘늑대소년’(2012)을 들 수 있다. 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멜로 영화 최대 흥행작으로 남은 ‘늑대소년’은 20년여 전 ‘가위손’과 인물 설정과 줄거리 전개에서 상당히 흡사하다. 

위노나 라이더는 20세기 후반 X세대(무관심, 무정형, 기존 질서 부정을 특징으로 하는 1965∼1976년 사이 출생한 세대)를 상징하는 총아였다.

그녀는 피비 케이츠, 브룩 실즈, 다이안 레인 등 언니뻘 할리우드 스타들이 청춘 물에서 발을 뺄 즈음인 19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위노나 라이더의 매력은 이들과는 차별화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양면성과 반전을 가진 기묘한 매력이었다. 

소녀 여배우들에게 정형화한 듯 청순하고 순수한 면을 부각시키던 시절이었다. 위노나 라이더 역시 청순한 미모의 마스크를 지니고 있지만 커다란 눈과 눈동자는 때로는 반항적이고 불량스럽거나 퇴폐적이기까지 한 상반된 모습을 연출해냈다. 

할리우드 여배우로선 아담한 161cm의 키에 동안인 그녀였지만 매우 굴곡 있는 반전 몸매를 가진 ‘베이글녀’이기도 했다. 그녀의 본래 머리 색깔은 ‘가위손’에 나왔을 때처럼 금발이었다. 마릴린 먼로처럼 금발을 갖지 못한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후천적인 염색을 통해 금발을 연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위노나 라이더는 자신의 작고 하얀 얼굴과 곱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흑발 내지 짙은 갈색이 잘 어울린다는 점을 알고 염색을 하며 작품에 출연하고 대중 앞에 나섰다. 단발 내지 숏 컷이 많았던 그녀의 헤어스타일 역시 당대의 여배우들과 차별화 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그녀는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이미지까지 연출할 수 있었다. 

위노나 라이더에게 산재한 여러 이미지는 반체제 자연친화를 부르짖던 히피 문화에 빠져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녀는 10세까지 히피 문화 아래에서 생활했다.

1971년 미국 미네소타주 옴스테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자체가 작명까지 특이하게 하는 히피 문화의 산물이었다. 위노나는 그녀의 출생지 옴스테드 인근의 도시 이름이었다. 원래 그녀의 성은 호로위츠였다. 그녀가 데뷔작인 영화 ‘루커스’(Lucas, 1986)에 출연하면서 엔딩 자막에 넣을 이름과 관련해 그녀의 아버지는 좋아하던 록 뮤지션인 ‘미치 라이더’의 성 ‘라이더’를 딸에게 쓰게 하면서 지금의 위노나 라이더가 됐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88년 판타지 코미디 물 ‘비틀쥬스’(BeetleJuice)부터다. 위노나 라이더는 예쁘지만 괴상한 무당 소녀 리디아 역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했고 영화 역시 흥행에 성공했다. 이 해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함께 출연한 ‘헤더스’(Heathers)도 개봉되면서 그녀는 확고한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1990년 이후 위노나 라이더는 청춘스타로서 한계를 벗고 폭넓은 스펙트럼의 연기에 도전했다. 이 시기 출연작들은 비평과 흥행 면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거장 감독들과 작품을 함께하는 당대의 여배우였다. 하층민과 귀족, 시대극과 현대극, 사실주의와 SF 판타지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 냈다. 

1990년 ‘비틀쥬스’​ 이후 그녀는 팀 버튼 감독과 연인 사이었던 조니 뎁과 호흡을 맞춘 ‘​가위손’​이 개봉하면서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해 그녀는 팝스타이자 배우인 셰어와 모녀 사이로 출연한 ‘​귀여운 바람둥이’​​(Mermaids) 에서 자유분방한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사랑스러운 연기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1991년에 거장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Night on Earth, 1991)에 출연했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 중 절정의 미모를 선보였던 것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드라큐라’(Bram Stoker's Dracula, 1992)가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 1993)에 출연하면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등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에단 호크, 지금은 코믹한 이미지로만 굳어진 벤 스틸러와 함께한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 1994)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X 세대의 상징같은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녀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1995)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지명됐다. 프랑스 감독 장 피에르 주네가 메가폰을 잡고 여전사 시고니 위버와 호흡을 맞춘 ‘에이리언 4’(Alien: Resurrection, 1997)에서 그녀는 화장기 없는 숏 컷의 여성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2000년 이후 그녀는 오랜 시간 끊임없는 나락을 헤매야 했다. 리처드 기어와 함께 출연한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 2000)이 혹평을 받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추락은 의외의 장소에서 시작됐다. 위노나 라이더는 2001년 12월 LA 베벌리 힐스의 한 백화점에서 고가의 의류와 악세서리를 숨겨서 나가려는 장면이 CCTV에 그대로 찍혔고 달아나려다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녀는 “다음 배역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는 어이없는 변명으로 일관해 대중들의 공분을 샀다. 

재판 과정에서 그녀의 상습적인 도벽과 진통제를 과다 복용한 것 외에도 약물 중돆까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2002년 11월 재판에서 그녀는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480시간, 그리고 1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오랜 침체기를 보내야 했던 위노나 라이더는 한동안 단역이나 저예산 영화 출연에 의존해야 했다. 그녀의 존재가 대중에게 서서히 멀어져 갈 즈음 그녀는 ‘스타트렉’(Star Trek, 2009)에서 불칸족과 인간의 혼혈인인 스팍의 어머니로 출연하면서 다시 한 번 이름을 각인시킨다. 카메오급에 지나지 않는 짧은 출연임에도 그녀를 몰랐던 세대에게 “저 미녀가 누구냐?”라는 압도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블랙 스완’(Black Swan, 2010)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자신처럼 나이가 들면서 발레단 주역을 빼앗기는 베스 역을 실감나게 연기했지만 한편으로 “이제는 퇴물 취급을 받는 것이냐”며 그녀를 아끼던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꾸준히 활동을 이어온 위노나 라이더는 현재 배우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2016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에서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한층 완숙해진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시리즈는 최근 시즌2 역시 호평 속에 막을 내려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키아누 리브스와 ‘드라큐라’, ‘스캐너 다클리’ 이후 세 번째로 재회하는 ‘데스티네이션 웨딩’(Destination Wedding) 출연 소식도 들려 반갑다. 

X세대 청춘의 총아에서 나락 그리고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며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위노나 라이더의 드라마틱한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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