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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날씬한 자태에 매혹적인 향기까지 '기생여뀌'

마디풀과, 학명 Persicaria viscosa H.Gross

2017.11.21(Tue) 16:26:56

[비즈한국] 온갖 초목이 단풍 물결에 휩싸여 산천이 울긋불긋 때때옷을 입은 것처럼 변해가는 가을날에 들판을 거닐면 마음도 풍요롭고 한가로운 기분이 든다. 너른 들판에 익어가는 벼와 밭작물의 풍성함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아름답고 여유 있는 세상의 멋진 멋거리에 빨려드는 것 같다. 들판에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계절에 습지에 자라는 식물을 찾아 나섰다. 

 

예전에는 제초제 같은 농약을 많이 뿌리지 않았기에 논두렁이나 들판 물고랑을 가면 물달개비, 물옥잠, 자라풀, 택사 등 수생식물이나 습지에 자라는 물고랭이, 개수염, 사마귀풀, 고마리 등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따로 알려진 강변 습지나 특정지역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종(種)이 되고 말았다. 

 

시원한 막새바람에 황금물결이 일렁이고 찬 기운이 느껴지는 늦가을 들녘에서 만난 기생여뀌. 국내에 자라는 여뀌 종류는 약 20종이 된다. 어린 시절 줄기를 찧어서 동네 앞 시냇물에 풀어 고기를 잡기도 했던 여뀌부터 개여뀌, 가시여뀌, 물여뀌, 털여뀌 등이 있다. 논밭이나 냇가 습지는 여뀌들 세상이었다. 대부분은 개여뀌였다. 꽃이 필 때는 밭두렁, 논두렁이 분홍빛으로 바뀔 정도였으니 농사꾼에게는 참 골치 아픈 잡초였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분홍색 꽃 무더기가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좁쌀보다 더 작은 꽃 하나하나가 앙증맞게 곱기도 한 것이 여뀌다. 그 수많은 여뀌 중 제일은 아무래도 기생여뀌가 아닌가 싶다. 

 

여뀌, 개여뀌, 가시여뀌, 물여뀌, 털여뀌 등 많은 여뀌 종류 중에 제일은 꽃도 예쁘고 향도 좋은 기생여뀌가 아닌가 싶다. 사진=필자 제공


기생여뀌는 우리나라 자생 여뀌류(類) 중에서 털여뀌나 장대여뀌처럼 가장 키가 큰 종의 하나다. 이파리 또한 멋들어지게 날렵하고 길다. 줄기에 보송보송한 하얀 솜털이 촘촘히 나 있고 접촉하면 식물체 전체에서 강한 향기가 난다. 꽃은 여름부터 10월까지 긴 기간에 걸쳐 피는데 선명한 홍자색 꽃이 조밀하게 달려 돋보인다. 주로 하천변 습지나 경작지 도랑 또는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기생여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는 꽃이다. 전체적으로 은근한 붉은빛이 돌며 키가 늘씬하게 크고 잎도 날렵하며 길쭉하고 꽃 색깔도 아름다워 그야말로 꽃미녀 모습이다. 게다가 식물 전체에서 유혹적인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예전에는 한자 이름으로 향료(香 향기 향, 蓼 여뀌 요)라 했으며 지금도 북한에서는 향여뀌라 부른다고 한다. 언제부터 기생여뀌로 바뀌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날씬한 자태에 꽃도 곱고 금상첨화로 매혹적인 향기가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5000종에 이르는 국내 식물 이름 중 기생이라는 칭호가 붙은 이름은 필자가 아는 바로는 세 개뿐이다. 기생꽃, 기생초, 그리고 기생여뀌다. 

 

기생꽃은 국내 설악산, 대암산, 태백산, 지리산 등 특정의 높은 산지에 드물게 자라는 앵초과 식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는 우리 자생식물이다. 순백의 꽃잎에 단아한 황금빛 꽃술이 왕관처럼 빛나는, 곱고도 앙증맞게 작은 아름다운 꽃이다. 기생초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며 원예품종으로 도입된 국화과 식물이다. 최근 도로변 절개지 녹화용으로 많이 심고 있어 널리 퍼진, 금계국과 비슷한 외래종이다. 노란 꽃판 가운데 짙은 자줏빛 무늬가 있어, 화사하게 치장한 기생에 빗대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기생여뀌는 전국 각처에 널리 퍼진 우리 자생식물로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5000종에 이르는 국내 식물 이름 중 기생이 붙은 이름은 기생꽃, 기생초, 기생여뀌뿐이다. 사진=필자 제공


식물 전체가 은근한 붉은빛을 띠고 휘어질 듯 날씬하고 키가 크며 고운 꽃을 피우고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향기로운 꽃, 도도하고 콧대 높은 양반댁 규수처럼 범접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어렵지 않게 사랑의 꽃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곱고 아리따운 여인 같은 꽃, 그래서 기생여뀌라 이름 지었을까? 수수한 듯 화려하고 각처에 흔한 듯하면서도 만나 보기 쉽지는 않은 꽃, 고운 향기 그윽하고 낭창낭창한 줄기가 접어 뻗는 손짓처럼 하늘대는 기생여뀌를 바라보는 가을 남자의 마음이 왜 이다지도 어수선해지는지 모르겠다.

 

기생여뀌 

 

바람결에 너울너울 

살랑대는 기생여뀌.

 

꽃망울 붉은 입술

보송보송 하얀 솜털

휘어질 듯 가녀린 허리 

요염한 자태에 빨려드는 가을 벌판.

 

짙은 향내 풍기며

거머쥘 듯 접어 뻗는 손짓이여!

햇살 빛나는 풍요로운 벌판에

한바탕 춤사위 

어우러질거나.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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