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저는 마블의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 영화를 좋아합니다. 헐크랑 토르랑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늘 궁금하거든요. 액션은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강해지지만, 저는 히어로의 탄생 편을 좋아합니다. 테러 집단에게 납치되어 동굴에 갇힌 스타크가 폐기된 기계 부품을 긁어모아 탈출용 병기를 만드는 ‘아이언맨’ 1탄이나, 신체검사에 떨어져 입대도 못할 정도로 체력이 부실했던 로저스가 초인 병사로 거듭나는 캡틴 아메리카 1탄 ‘퍼스트 어벤저’가 좋아요.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강해지는 계기가 늘 궁금합니다.
일상에서 제가 꿈꾸는 슈퍼 히어로는 재미난 만화나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입니다. 2014년 데뷔하자마자 우리 만화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린 만화가가 있어요. ‘아만자’의 김보통입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만화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그가 낸 에세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김보통 저, 문학동네)를 통해 김보통 씨의 탄생 비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는 건 고난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김보통의 고난은 모두가 꿈꾸는 보편적 삶이라는 형태로 찾아옵니다.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대기업에 입사한 보통 씨, 알고 보니 직장인의 삶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찾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회식에 붙잡힌 말단 사원. 새벽까지 회식을 하고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 택시를 잡는 선배. 술을 먹고 자정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새벽 4시에 부장에게 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동기. 휴가철을 앞두고 “이렇게 바쁜 와중에 휴가 신청하는 미친 놈은 없겠지?” 하고는 혼자 휴가를 떠나는 부장. 직장 초년병의 지옥 같은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만 딱히 할 일은 없어요. 퇴직금으로 버티며 방에서 뒹굴지만 심심한 건 못 견디겠네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 봐도 떠오르지 않아요. 하도 심심해서 빵을 굽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든 브라우니를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17년 만에 처음 그림을 그렸는데 은근 재미있군요. 심심풀이 삼아 트위터에 올라온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짬짬이 트위터에 글을 쓰기도 하고요. 돈은 한 푼도 벌 수 없지만, 회사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삽니다.
‘불행해지지만 말자.’
나는 다짐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 어떤 선택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건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건 상관없다. (중략) 돌아보면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내 모든 불행의 원천이었다. 미래에 진짜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뜬구름 같은 행복을 위해 나는 분명히 실재하는 오늘의 고통과 슬픔을 무수히 감내해야만 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09쪽
직장을 퇴사하고 만화가가 된 과정을 읽고 나니, 그의 데뷔작 ‘아만자’가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아만자’의 책장을 펼치니 저자 소개에 ‘김보통 삼십대 만화가’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정말 간결한 소개네요.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에는 저자 소개에 살이 조금 붙었어요. ‘2009년 입사, 2012년 퇴사, 2013년 만화가 전업, 2015년 수필가 겸업, 2017년 아직 불행하지 않음’ 슈퍼 히어로처럼 조금씩 진화하는 작가의 모습이 반갑습니다.
마블 영화 가운데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좋아합니다. ‘시빌 워’는 히어로들이 총출동해서 서로 싸우는 이야기로 시리즈의 화려한 마무리입니다. ‘퍼스트 어벤저’는 캡틴 혼자 나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고요. 나온 순서대로 봐야 할지 역순으로 봐야 할지 묻는 이들에게 “그냥 아무거나 먼저 봐. 무슨 상관이야. 믿고 보는 마블인데”라고 답합니다. 김보통 작가의 작품 가운데 에세이를 먼저 볼까, 만화를 먼저 볼까 고민하신다면 같은 답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무슨 상관입니까, 믿고 보는 김보통 작가인데.’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청년변호인] 변호사로서 '의뢰인 박근혜'가 측은한 이유
·
'드래곤볼Z 폭렬격전' 확률 조작 의혹 쓰나미 게임업계 덮치나
·
'밀실 매각 논란' SK엔카직영 사측 협상안 확정, 해결 국면 맞을까
·
[김민식 인생독서] 춘추전국시대는 인생대백과사전이다
·
[김민식 인생독서] 우리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