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단풍맞이 행렬이 산길을 메우는 계절에 모처럼 주왕산을 찾았다. 주왕산 하면 대부분 사람은 협곡의 신비스러운 절경과 단풍을 보기 위하여 대전사, 용추폭포가 있는 계곡을 다녀간다. 하지만 주산지 근처에 있는 절골의 계곡도 아름답고 한적한 멋진 산책로이다. 가파른 절벽이 솟아난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절골은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물길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좁고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반복해서 징검다리를 건너고 미끄러운 바위 바닥과 개울의 자갈밭을 지나가는 아기자기한 길이다. 또 계곡의 물길 따라 군데군데 협곡이 형성되어 자연 비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주왕산 국립공원 절골분소를 통과하여 조금 지나니 양쪽에 가파른 암벽이 나타났다. 절벽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손바닥만 해 보였다. 절벽을 한참 훑어보니 바위벽에 매달린 붉은 꽃송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에 붙어 동글동글한 잎사귀를 엽전꾸러미처럼 매단 줄기가 치렁치렁 늘어졌고, 줄기 끝에는 붉고 진한 꽃송이가 솟아나 있었다. 다름 아닌 절골의 바위벽에 붙어 자생하는 둥근잎꿩의비름이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피워 올린 선홍빛 꽃 무더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파란 이끼가 더덕더덕 붙어 있는 바위벽 틈새에 뿌리내려 자라난 가느다란 줄기 끝에는 하늘을 향해 발딱 세운 듯 고운 꽃송이가 도도하게 솟아 있었다. 지나는 산행객을 홀리는 절벽의 요화(妖花)라 할 만큼 곱고 매혹적이었다. 바위벽에 절묘하게 붙은 삶의 묘기와 화사한 꽃송이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때 일행 중 한 분이 둥근잎꿩의비름 개체 수가 예전보다 훨씬 적고 자생지 분포지역도 훨씬 줄었다고 하면서 매우 아쉬워하였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전에는 얼마나 볼만하고 아름다웠을까? 왜 이러한 자연자원을 그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을까?
둥근잎꿩의비름은 우리나라 주왕산과 내연산에 자생한다고 알려진 여러해살이풀로서 경북 주왕산에서 처음 채집되었다. 꽃의 색깔이나 모양이 큰꿩의비름과 비슷하다. 그러나 잎이 둥글며, 꽃차례가 모여나 구형에 가깝고 꽃 색이 훨씬 진하고 아름답다. 한때 신종(新種)으로 여겨, 한국 고유종으로 인식됐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는 종(種)이었다. 나중에 두만강과 러시아 우수리 해안가에 같은 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국내에서도 경북의 주왕산과 내연산이 아닌 몇 군데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둥근잎꿩의비름은 비교적 적응력이 좋아 다양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 꽃을 함부로 채취하여 옮겨 심은 탓에 우리 주변 정원과 공원 등에서도 간혹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그런데도 국내 꿩의비름 속(屬)의 다른 식물들과 달리 둥근잎꿩의비름은 스스로 생육지를 넓혀 가면서 널리 퍼져 자라지 못한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베일에 싸인 꽃이다. 그 결과 자생지가 손꼽을 정도로 매우 한정된 특정 지역에서만 자란다.
희귀종의 자생지는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 번 훼손된 자생지는 다시 심어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절골의 둥근잎꿩의비름 자생지도 무분별한 채취와 무관심으로 심하게 훼손되었으며, 최근 복원사업의 하나로 주왕산 곳곳에 식재지(植栽地)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보호와 관리 끝에 자연스레 복원된 곳이 아닌, 인공으로 심어 복원한 곳은 자생지라 할 수 없다. 자생지로서의 가치가 이미 사라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심은 동질의 식물 개체인 만큼 획일화되어 있으며 유아체와 노령체(老齡體)가 함께 어울려 자라는 곳이 아니므로 유전적 다양성도 없는, 잘 가꾼 정원과 다를 바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절골의 둥근잎꿩의비름 자생지가 잘 보존되어 스스로 분포지역을 확산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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