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한민국은 최근 세계 방위산업계 폭풍의 눈이 되고 있다. 단순히 북핵 위기로 한반도의 분쟁 위기가 높아지거나, 국방예산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방위산업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로 대한민국은 국내 개발과 국외 수입이 경쟁하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라는 점이다. 무기 거래에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규모로, 항상 무기 수입국 세계 10위권 안에 들면서도 자체적인 무기체계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소모한다. 우리보다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이집트와 사우디 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안보 수요에 비해 국방과학 기술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무기체계를 수입하는 데 비해서, 한국은 우선 필요한 무기체계가 국내개발이 가능한지, 또 그것이 효율이 있는지 고민을 거친 후에 무기를 수입할 것을 결정하고, 이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과 정책 연구가 들어간다.
AW159 와일드캣 헬리콥터가 승리한 해상작전헬기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다. 새로운 해상작전헬기 획득을 위해 국내개발과 국외도입 중 어떤 것이 나은지 수년째 논쟁한 끝에 비용 대 효과, 전력화 시점 등의 문제로 국외도입이 결정되었는데, 대한민국처럼 무기를 수입할 것인지, 자체 개발할 것인지 치열한 고민하는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무기를 수입하거나 개발할 예산이 없거나,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방위산업이 고도화되어 대부분의 무기체계를 국내 개발하는 것이 당연시되거나, 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예산이 있으되 기술력이 없어 최신 무기를 무조건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유럽산과 미국산이 정당한 경쟁을 치르는 시장이라는 점이다. 대규모의 무기 도입 사업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하고 또한 정치적 이유로 결정되어 사실상 무기 수입선이 고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만의 경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프랑스의 미라지 2000-5 전투기와 네덜란드의 즈바르다스급 잠수함을 구매한 이후 중국의 압력으로 무기 수입선이 사실상 사라져서 오로지 미국산 무기만 수입할 수 있게 되었고, 이집트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무기를 구매했지만 중동의 영향력 유지, 자국 방위산업의 보호를 위한 프랑스가 재정지원과 함께 무기 수출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우는 무기의 선택이 정치적 결과와 독립적으로 나오는 결과가 왕왕 있다. 여전히 미국제 무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A330 MRTT 다목적 공중급유기, KEPD-350 타우러스 공대지 미사일, 그리고 AW159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와 같이 성능 혹은 가격을 ‘무기’로 상당한 숫자의 유럽제 무기가 한국 입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구매하려는 무기들의 최첨단 기술에 못 미치는 결정과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일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K105HT 105mm 차륜형 자주포 사업은 우리 군이 막대한 양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105mm 야포탄을 활용하기 위해 105mm 견인포를 개조해 트럭에 올리는 사업이다. 원래 우리 육군은 대대급 지원화력으로 120mm 박격포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로 박격포 대신 구형 견인포 포탄을 사용하는 무기체계를 만든 것이다. 105mm 곡사포와 120mm 박격포는 사거리와 위력은 큰 차이가 없지만, 대대 지원화력으로 빠르게 사격준비를 마치고 운용과 취급이 간편한 박격포탄의 장점을 야포탄이 온전히 살릴 수는 없다.
더군다나, 구형 105mm 야포탄을 사용하는 차륜형 자주포는 사실상 M101A1 견인포와 포 구조가 동일하고, 차체는 k721 5톤 제독차량을 활용해서 개발했다. 기존에 있는 제품을 사용했으니 개발비는 절약할 수 있었겠지만, 5톤 트럭의 경우 현재 기아자동차에서 대체 차종을 개발해 둔 상태이고, M101 견인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부터 쓰인 구형 설계다. 차륜형 자주포는 자동화와 정밀도를 위해 자주포에 관성항법장치(INU), 위성항법장치(GPS) 등과 같은 전자장비를 붙였는데, 이런 장비가 적용되는 김에 현재 국제시장의 수준에 걸맞은 차체와 포신 설계를 도입하지 않은 것은 비용을 줄이려다 효과를 반감시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제 경쟁 제품이라 할 수 있는 105mm 자주포와 우리의 K105HT를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중국 노린코(NORINCO)의 SH5 105mm 자주포는 방탄기능이 있는 차체에 장포신 105mm 포를 탑재해 사거리가 18km에 달하고, 영국의 BAE가 만든 LAV III 105mm 자주포의 경우 스트라이커 장갑차 차체에 완전 밀폐된 전투실을 갖추고, 신형 정밀 파편 포탄과 자동장전장치를 사용해서 강력한 화력을 갖추었다.
K105HT가 물론 이들 자주포와 비교하면 가격은 다소 싸겠지만 실제 전투에 나섰을 때의 효과적인 화력투사에는 여러모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자주포는 단순히 포탄을 실어 나르는 무기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포탄을 쓰더라도 더 멀리, 더 정밀하게 쏘고, 적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갖춘다면 그 무기의 효과는 몇 배로 증가되는데, K105HT의 경우에는 이런 부분이 지나치게 등한시되어 있다.
국내개발이 아닌 국외 무기도입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수중 발사 탄도미사일(SLBM)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차기 해상초계기 사업은 L-3 커뮤니케이션의 중고 S-3 바이킹, 보잉의 P-8 포세이돈, 사브의 소드피쉬 MPA가 삼파전을 이루는데, 중고 기체를 제안하는 L-3를 제외한 두 업체들은 해상초계기 사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찰‧지휘통제 항공기의 패키지 판매를 제안 중이다. 해상초계기 이외에 한국이 필요한 무기들로는 공중경보 및 지휘통제(AEW&C) 항공기와 지상감시 영상레이더(SAR) 항공기가 있는데, 이들 항공기들은 모두 민간 항공기를 개조하여 제작하기 때문이다.
보잉이 제시하는 차세대 해상초계기인 P-8 포세이돈은 우리 공군이 이미 운용중인 E-737 피스아이 조기경보기와 같은 보잉 737 기반의 동체를 사용하고, 스웨덴 사브는 소드피쉬와 함께 글로벌 아이(Global Eye)로 불리는 조기경보기를 동시에 개발 중이다. 두 항공기 모두 글로벌6000 비즈니스 제트기를 플랫폼으로 한다.
보잉 입장에서는 P-8 포세이돈과 피스아이를, 사브는 소드피쉬와 글로벌 아이를 패키지로 제작하고 도입할 경우 사업 규모를 키우면서 1대당 가격은 할인할 수 있기 때문에, 두 회사 모두 해상초계기와 공중 조기경보기의 통합 패키지를 제안하고 싶지만 중기 소요 사업과 장기 소요 사업, 공군과 해군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획득하고 구매하는 사업은 전례가 없어 수행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우리 군이 관심을 가지는 영상레이더 탑재 지상감시 항공기 역시 같은 플랫폼을 공유할 수 있다. 보잉사는 P-8을 개조한 P-8 AGS 항공기를 미 공군에 제안중인데 역시 보잉 737 비행기를 개조한 것이고, 레이시온은 영국 공군을 위해 글로벌 6000을 개조한 센티넬 (Sentinel R1) 지상감시 항공기가 있기 때문이다. 해상초계기, 조기경보기 2차, 지상감시가 하나의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할 경우 운용유지비용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지만, 운용유지비를 위해 육‧해‧공군이 사용하는 장비를 공동구매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런 논의는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북핵 대비를 위한 각종 최첨단 무기들의 구매 논의가 계속되는 요즘, 획득과 개발에 대한 이런 엇박자들은 아쉬운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예산과 절차를 만족하기 위한 개발과 획득을 강요하는 이상 국내 업체들이 아무리 좋은 기술과 역량을 가져도 그 절차와 예산에 맞는 무기로 적을 대비할 수밖에 없고, 무기를 수입할 때에도 당장의 예산과 진행방법에만 집중하면 더 좋은 효율과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놓치게 될 것이다. 통합적인 사고와 더 멀리 보는 시각을 가져야만, 북핵 위기를 해결하는 군사력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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