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9일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재정지원, 일명 ‘일자리 안정자금’ 3조 원 지원 시행계획안을 발표했다. 이날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안 발표를 위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는 일자리 안정자금과 별반 상관없는 장관들도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동연 부총리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백운규 산업자원부 장관 외에 최저임금과는 연관성을 찾기 힘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박능후 복지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한승희 국세청장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에는 장관들이 참석하고, 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 대부분 차관들이 장관을 대리 참석하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재정지원안 발표 자리에 문재인 정부 장관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두고 경제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추진에 얼마나 몸이 달았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경제정책의 제 1 목표로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웠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세 가지 축은 ‘공공부문 일자리 증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해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비정규직 제로(0), 최저임금 1만 원을 구체적인 안으로 내놓았다.
이러한 정책 중에서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제로는 시작부터 벽에 부딪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의 반대에 중앙직 공무원 증원 규모가 당초 정부안이었던 4500명에서 2575명으로 절반 정도로 줄었다.
또 내년도 예산안에 정부는 중앙직 공무원 1만 5000명, 지방직 1만 5000명 총 3만 명 증원을 위해 인건비 4000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야당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공무원 증원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도 생각보다 진행이 쉽지 않다. 기간제교사 등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교사 임용교시에 붙고도 미발령 상태인 예비교사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금융공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전 정권과 같은 29% 수준에 머무는 등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놓고 노노갈등 양상이 드러나면서 문재인 정부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유일하게 맘 놓고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뿐이다. 최저임금은 공익위원 9명과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매년 결정하는데 정부 측 인사인 공익위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결정이 난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구조를 활용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나 올린 7530원으로 결정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했지만, 문제는 이러한 높은 인상률을 자영업자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및 영세중소기업 경영난 악화와 고용 감축을 막기 위해 근로자 1인당 월 13만 원씩 지원하는 총 2조 9708억 원의 일자리 안정자금 계획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 장관들이 이러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 대거 자리를 함께한 것은 공공부문 일자리 증대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소득주도 성장’ 엔진을 꺼뜨리지 않으려면 최저임금 인상만큼이라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드러난 것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현행 최저임금법 24조에는 ‘정부는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최저임금제도를 원활하게 실시하는 데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거나 그 밖의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노력한다’고 정부 지원을 규정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에 근거해 3조 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안을 내놓은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도 예산이기 때문에 국회 통과라는 큰 벽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들이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안 발표 자리에 참석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되레 일자리가 줄거나 영세상인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소득주도 성장 자체가 출발과 동시에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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