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다부진 몸의 사나이가 관을 끌며 진흙 바닥을 걸어가는 순간. ‘장고’하는 백 코러스에 맞춰 남자 가수가 부르는 애절한 멜로디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장고’(Django, 1966) 중.
초로에 접어든 총잡이가 안경을 꺼내 끼고 자신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오는 150명의 악당을 상대로 라이플(장총) 방아쇠를 당긴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무숙자’ (My Name Is Nobody, 1973) 중.
장고와 무숙자는 각각 1964년부터 1970년대 초중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절정과 황혼을 대표하는 영화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권선징악과 영웅주의로 공식화 된 미국의 정통 서부극과 달리 조연은 물론 주인공조차 악당에 가까워 선악 경계마저 모호한 인물들을 그린 장르다. 이탈리아 자본을 들여 만들었기에 이 나라 대표 음식 이름을 따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명칭으로 굳어졌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와 그의 페르소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콤비가 만들어 낸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였다. 이 영화가 대성공하면서 시리즈물이 나오자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제작은 붐을 이뤘다(관련 기사 [썬데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과 프랑코 네로 주연의 장고는 죽은 아내에 대한 복수를 다룬 단순한 줄거리와 저예산으로 찍은 영화이지만 폭력성과 우수한 연출로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장고가 끌고 다니던 관에는 시신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개틀링(초기 기관총)’이 들어 있었다. 장고가 이 개틀링을 꺼내 적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신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남성미 물씬 넘치는 프랑코 네로 주연의 원작 장고를 모른다면 할리우드의 괴짜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jo unchained, 2013)가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흑인 배우인 제이미 폭스를 타이틀 롤인 장고 역에 기용하고 폭력성과 예술성이 융합된 ‘장고’를 창조해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신선함이 퇴색되어 갈 무렵 이탈리아의 상남자 테렌스 힐(본명 마리오 지로티)은 포복절도할 코믹 연기를 통해 장르의 황혼을 이끌었다.
테렌스 힐은 190cm가 넘는 거구의 전직 이탈리아 수영 국가대표 선수인 버드 스펜서(카를로 페데르솔리)와 콤비를 이룬 ‘튜니티 시리즈’ 로 40대 이상에게 각인돼 있다.
1탄 ‘내 이름은 튜니티’(They Call Me Trinity 1970)와 2탄인 ‘튜니티라 불러다오’(Trinity Is Still My Name, 1971)는 한마디로 웃기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다. 테렌스 힐과 버드 스펜서는 ‘튜니티는 아직도 내 이름’(All the way boys, 1973)도 함께 찍었지만 이 영화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전작들과 달리 현대물이다.
영문 제목으로 보듯이 테렌스 힐이 분한 ‘Trinity’는 튜니티가 아니라 트리니티로 발음해야 맞지만 국내 개봉 당시 튜니티로 표기돼 지금까지 굳어졌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남 테렌스 힐은 튜니티 시리즈에서 대체 1년에 목욕을 한 번이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꾀죄죄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에서 이런 그가 한번 목욕을 하면 때 구정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튜니티의 형 밤비노 역을 맡은 육중한 버드 스펜서는 다른 사람이 그를 때려도 간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망치질 하듯 때린 사람의 머리를 뭉개면서 제압한다.
개인적으로 튜니티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을 꼽자면 테렌스 힐과 버드 스펜서가 수도원에서 돈이 가득 들어간 전대를 빼앗으려는 적들을 상대로 럭비를 하듯 주고받으면서 물리치는 신을 꼽는다. 정말 웃긴다.
무숙자는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수 있다. 장르의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가 제작을 맡고 토니노 발레리가 감독한 무숙자는 할리우드 전설 헨리 폰다와 테런스 힐이 주연을 맡았다. 주연 배우 두 사람 모두 매우 아름다운 푸른 눈을 가지고 있어 영화 내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전설의 총잡이 생활을 잡고 조용히 살고 싶을 뿐인 잭 보러가드(헨리 폰다 분)는 그를 꺾고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다. ‘똘기’ 충만한 젊은 총잡이 노바디(테렌스 힐 분)는 어렸을 때부터 잭을 우상으로 여기고 이제는 잭의 계보를 잇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좌충우돌 상황이 연신 발생한다.
영화를 못 봤어도 영화의 주제가만큼은 친숙할 것이다.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주제곡은 2000년대 초중반 성대모사의 달인 옥동자 정종철이 개그콘서트에서 주야장천 불렀던 그 음악이다. 밝고 경쾌한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에서 노바디가 그랬던 것처럼 긍정의 에너지가 솟구쳐 오르곤 한다.
영화의 압권은 잭이 혼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150명의 적과 싸우는 장면이다. 적들의 기세에 잠시 주춤하던 잭과 떨어진 곳에 기차를 몰고 온 노바디가 멈추며 잭에게 싸우라고 부추긴다. 잭은 적들이 탄 말 안장에 붙어 있는 금속들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반짝 빛을 내며 달려오는 것을 발견한다.
잭은 적들이 말안장에 다이너마이트를 실었던 것을 기억해내고 곧 자신감을 되찾아 라이플을 들고 말 안장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긴다. 잭의 총은 백발백중 한 번 쏠 때마다 몇 명의 적들이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인해 쓰러진다.
한국어 더빙판에서 노바디(성우 양지운 분)가 하는 대사와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노바디는 잭이 적을 쓰러뜨릴 때마다 흥분된 어조로 ‘역사를 만드는 당신, 역사를 만드는 당신’을 외친다. 역사에 기록되어야할 만큼 위대한 싸움이기에 적들이 쓰러지는 장면마다 사진과 그림처럼 액자에 담긴다.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황혼을 대표하는 만큼 무숙자의 시간적 배경은 서부 개척시대가 끝물에 다다른 시점이다. 서부 개척시대를 대표했던 총잡이 주인공 잭의 은퇴는 일세를 풍미한 장르의 종말을 상징했던 것이다. 물론 똘기 충만한 노바디는 그만의 방식으로 총잡이로서 명성을 이어간다는 뒷맛을 남기면서 스파게티 웨스턴은 언제라도 다시 부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
내년 3월 사장 연임 앞두고 실적 우려, 교보증권 "목표 달성 무난"
·
삼성 미니 미전실 수장 정현호는 '이재용의 아그리파'?
·
[썬데이] '일찍 시든 꽃' 세기의 미녀, 브룩 실즈
·
[썬데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
[밀덕텔링] 대선주자들의 걱정스러운 국방 공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