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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변호인] 의뢰인을 신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판사의 입장에서 의뢰인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2017.11.06(Mon) 15:44:25

[비즈한국] 영화 ‘의뢰인’에서 살인혐의 피고인(장혁 분)이 변호사(하정우 분)에게 물어본다. “변호사님은 저 믿으세요?” 그러자 변호사가 말한다.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난 우리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데에만 집중할 겁니다.”

 

이런 태도를 두고 ‘변호사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나의 답은 이렇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변호사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만족할 만한 결과’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 사진=영화 ‘의뢰인’​


의뢰인을 믿고 안 믿고에 관심을 기울이면 일이 안 풀린다. 의뢰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의뢰인의 거짓말을 걸러내기 어렵고, 변호사가 사실관계를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게 된다. 반대로 의뢰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변호사는 무책임하게 일을 한다. 

 

영화에서 변호사의 말은 적절하다. 변호사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에 집중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만족할 만한 결과’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 

 

간혹 변호사 중에 의뢰인은 선(善)이고 정의이며 상대방은 악(惡)이거나 불의로 규정해 사건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부적절하고 의뢰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변호사의 그런 태도는 실체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물론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결론을 전제하고 근거를 찾아 법정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이는 형식적인 역할극이다. 사건에서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변호사는 그 결론이 절대적 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변호사는 상대 변호사·검사와 싸우는 사람이 아니고 판사를 설득하는 사람이다. 판사는 백지 상태로 양쪽의 말을 듣는다. 변호사는 ‘내가 판사라면 이 말을 믿어줄까?’, ‘내가 판사라면 이 정도 증거로 의뢰인을 믿어줄까?’라는 질문을 계속 해야 한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선(善)으로 대상화하고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감정 과잉에 휩싸이면 법정에서 떼쓰는 모양이 되거나, 패소 후 판사를 비난하는 초라한 행색이 되기 쉽다. 이는 숲속에서 눈을 가린 채 의뢰인 손만 잡고 출구를 찾는 모습과 같다.

 

의뢰인에게 공감은 하되, 감정이입하여 소진되지 않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무척 어렵다. 변호사 1년 차 때 폭행사건 피고인을 변호했다. 의뢰인 주장에 따라 폭행 사실 자체를 부인했지만, 검사가 목격자 진술을 제출해 폭행 사실이 입증됐다. 유죄 선고 후 사무실로 돌아와 기록을 다시 보니 피해자 진술은 구체적이었고 피해자 몸에 난 상처도 진술에 부합했다. 

 

사건 초기 의뢰인 말만 듣고 피해자 진술서를 거짓으로 치부했음을 깨달았다.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폭행 사실에 대해 의뢰인을 조금 더 추궁했으면 어땠을까. 판사에게 피해자가 시비 걸고 욕한 정황을 설명하며 의뢰인이 법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형량을 낮출 수도 있었을 텐데.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법정에서 나온 의뢰인과 지인이 하는 대화를 옆에서 들었다.

 

“근데 너 나쁜 사람 아니잖아.” “응.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근데 왜 그런 나쁜 짓을 했어?” “그거 나쁜 짓 아니야.” “야, 이거 정말 나쁜 놈이네.”

 

나쁜 사람이 아니어도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그 지인의 질문이 나보다 훌륭했다. 다만 결론에서 나는 견해를 달리한다.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구조와 상황에 따라서 선하거나 악한 면이 정도를 달리한 채 표출될 뿐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마저 속이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의뢰인을 대하는 유일한 자세다.​ 

류하경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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