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24일, 저는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평생 로맨틱 코미디를 만든 딴따라 피디가 어쩌다 이런 귀한 상을 받게 되었을까 부끄러웠습니다. 생각해보니 친구를 잘 사귄 덕분입니다. MBC 노동조합 집행부로 함께 일한 이용마 기자는 제게 언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을 가르쳐준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2012년 MBC 노동조합 집행부로 일하던 이용마 기자와 저는 MB 정부의 언론장악에 반대해 170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그때 조계종에서 MBC 노조원들을 템플스테이에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했어요. 오랜 파업에 지친 조합원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싶다고요. 수십 명의 조합원들이 가족과 함께 산사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스님과 차담을 나눴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쌍둥이 아들을, 저는 딸들을 데리고 갔는데요, 그때 보니 파업 현장에서 열혈 투사인 이용마 기자도 아들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아빠더군요.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 이용마 기자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암 투병을 하면서 어린 아들들에게 주는 글을 쓰고 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좋은 스승이, 그 좋은 아빠가, 아들들을 위해 쓰는 글은 어떤 글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차마 보여 달라는 말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책으로 묶여 나왔기에 책이 나온 첫날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이용마는 MBC 기자로 입사한 후, 사회 경제 문화 통일외교 검찰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1년 MB 정부의 언론 탄압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절, 노동조합에서 온 홍보국장 제의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맡게 되는데요, 이후 2012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됩니다. 해직기자로 살던 그는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요양 중입니다. 어린 아들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한국 사회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어요.
선진국이 되는 최고의 조건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신뢰가 쌓이고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건은 국민소득 3만, 4만 달러와 같은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바로 신뢰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332쪽(이용마, 창비)
손석희 앵커는 이용마를 일컬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천이 참 어렵습니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회’라는 MBC 캠페인 문구가 있는데요, 언행일치가 얼마나 힘든지는 현재 MBC 경영진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촛불 혁명 덕에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용마 기자는 아직 마음을 놓기엔 이르다고 말합니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면, 혁명 다음엔 수구 반동 세력의 반격이 이어지거든요. 4·19혁명은 불과 1년 만에 5·16 쿠데타로 무너지고, 1980년 서울의 봄은 5·17 쿠데타에 짓밟힙니다. 1987년 6월 항쟁도 6·29선언과 야당의 분열로 결실을 맺지 못했지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 정부 10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이어진 것도 그렇고요. 수구 세력의 저항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 우선이라고 이용마 기자는 강조합니다. 지난 9년, 가장 철저하게 망가진 곳이 검찰과 언론입니다. 공직 부패에 눈감은 검찰과 비판에 재갈을 물린 언론은 국정 농단 사태의 ‘공범자들’입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난 1년간의 촛불 혁명이 이를 증명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정부의 개혁 의지를 뒷받침하는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강한 의지이니까요.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식 MBC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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