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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 단독인터뷰 "상을 돈으로 사려 한 한국 기업 있다"

좋은 디자인일수록 심사하기 쉬워…인공지능은 디자이너를 대체 못할 것

2017.10.29(Sun) 16:45:37

[비즈한국]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독일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명차로 꼽히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를 비롯해 브라운의 디자인 수장 디터 람스 역시 독일 출신이다. 미니멀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디터 람스의 유명한 말 ‘Weniger, aber besser(Less, but better)’(적지만, 더 나은)는 여전히 전 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금과옥조로 통한다.

 

일찌감치 산업디자인이 발달한 독일에서 세계적인 권위의 시상식이 두 개나 있는 것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하나는 독일 마케팅 회사인 인터내셔널 포럼 디자인사가 수여하는 ‘iF 어워드’이고 다른 하나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에서 주관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다.

 

그중에서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비교적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많은 우리 기업들과 디자이너들이 매년 적잖은 상을 수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상을 수상하게 되면 제품이나 서비스에 특유의 빨간색 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적어도 디자인에 대한 보증수표로 통한다.

 

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 사진=레드닷 조직위원회 제공

 

오늘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위상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대단한 수완가로 통하는 그는 레드닷을 세계적인 권위의 글로벌 시상식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 인물이다. ‘비즈한국’은 시상식에 앞서 27일(현지시각) 베를린 중심가에 위치한 ‘캐피톨 클럽 베를린’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가들에 의해 매우 엄격하고 공정한 심사가 이뤄진다. 비즈니스에 대한 배경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디자인에 대해서만 평가한다. 이 점이 다른 어워드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레드닷 어워드는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또한 레드닷 어워드는 디자이너들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디자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와 지금 달라진 심사기준이 있는가.

“​디자인에 어떤 기술이 바탕이 되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수준 높은 디자인을 평가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의 주된 임무가 바로 실용성에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우리의 관점은 변하지 않았고, 이러한 심사 기준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페터 제흐 회장은 레드닷이 전문적인 심사위원들에 의해 매우 공정하고 엄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과거 한국 기업이 수상에 압력을 가했지만 이를 거절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레드닷 어워드는 돈 주고 살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한 기업은 그동안 많은 압력을 넣었다. 국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그 기업은 혁신도, 브랜드도, 고객 존중도 없었다”고 일갈했다.  

 

―독일이 끊임없이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를 배출하고 있다. 그 원천은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독일은 디자인에 대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바우하우스와 같은 교육기관을 통해 체계적인 육성이 이뤄진다. 또한 기술과 디자인이 동시에 상호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고 있다. 독일에서 엔지니어링(기술)과 디자인은 결코 우위를 논할 수 없다. 디자인 자체가 실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독일의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대단히 높다. 최고의 제품만이 독일에서 성공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그런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가령 독일인들은 애플 제품을 사랑한다. 그런 것들이 큰 차이를 만든다.”​​

 

올해의 신인상에 해당하는 주니어 프라이즈상을 받은 독일의 사라 뮐러. 독일은 체계적인 교육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풍토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사진=레드닷 조직위원회

 

―최근 중국을 포함한 중화권 수상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나 출품작과 수상작 간의 관계를 고려한다. 이것은 우리가 산정하는 국가 순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의 경우 수상 비율이 80% 이상으로 대단히 순위가 높다. 중국은 출품작 대비 수상작의 비율이 낮다. 다만 출품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 중에는 중화권 디자이너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5팀에게만 주어지는 그랑프리는 단 하나도 받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관련기사 [속보] 한국 무명 디자인기업, 레드닷 '그랑프리' 수상 이변).

 

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은 시상식 진행부터 새벽까지 진행된 애프터 파티에 이르기까지 최고책임자로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사진=봉성창 기자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다고 보나. 

“한국은 레드닷 어워드에서도 매우 예외적으로 특출난(exceptional) 나라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레드닷에서 상을 받는다. 우리는 각각의 제품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 모두를 평가한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경제 수준과 함께 급속히 발전했으며, 특히 한국의 중소기업 디자이너들이 그것을 해내고 있다. 오늘밤 행사에도 한국인들이 다수 참석할 예정이다.”​​

 

제흐 회장은 단순히 디자인 분야를 넘어 다양한 산업적, 문화적 분야에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흐 회장에게 일부러 다소 어려운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인공지능(AI)이 세계적인 화두다. 모든 일자리가 인공지능을 걱정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어떻게 될 것으로 생각하나. 

“AI는 디자인에 있어서도 큰 도전이다. 하지만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와 함께 동시에 제품을 개발한다. 이러한 협업은 최적화된 솔루션이 필요한데, 가장 효율적인 제품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디자이너들은 언제나 제품을 끊임없이 다듬는데, 이는 AI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AI가 일반인들도 누구나 손쉽게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본다. 좀 더 스마트한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이 사람의 사소한 잘못은 보정해 줄 수도 있다. 또한 앞으로 몇몇 제품은 더 이상 가게에서 사지 않고, 3D프린터로 출력하는 방식으로 유통될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전 세계적으로 불행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디자인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까. 

“디자인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없다. 제품이 무슨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는가. 디자인이 뛰어나고 사용하기 편리한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몇몇 무기들은 대단히 못생기고 흉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조직을 구성하거나 단체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베를린=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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