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을 받는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배움의 과정에 있을 때는 격려의 의미를 담은 교육 목적으로, 현업에서는 성과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을 수여한다.
그래서 각 분야마다 자국민의 수상 소식 자체가 뉴스가 되는 세계적인 시상식이 존재한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가 손에 꼽힌다. 레드닷, IDEA, iF가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규모나 역사 면에서 늘 가장 먼저 언급되는 어워드가 바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1955년 독일 내 제품 디자인 시상식으로 출발했다. 이후 1993년 무형의 디자인 전반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과 아직 실현되지 않은 콘셉트 디자인 부문이 추가되며 외연을 넓혔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수상작은 독일 에센에 위치한 레드닷 뮤지엄에 전시된다. 또 디자인계 종사자들이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도록 두꺼운 도록과 전자책으로까지 만들어진다.
‘비즈한국’은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열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 부문 시상식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1400명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상 결과를 숨죽이며 지켜봤다.
# 오늘의 주인공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리셉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행사는 10월 27일(현지시각) 오후 5시부터 시작됐다. 1부 순서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들의 리셉션으로 꾸며졌다. 이때는 전체 8051개의 출품작 중 최우수상격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작 67개 작품의 디자이너들과 정해진 취재진만 입장이 가능하다.
이들에게는 마치 레드닷을 상징하는 듯한 빨간색 종이 팔찌가 주어지는데, 이것이 있어야 연회장 형태로 꾸며진 리셉션 공간에 입장할 수 있다. 리셉션의 주요 순서는 액자 형태로 만들어진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상장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는 것. 조명이 설치된 무대에는 전담사진사와 분장사가 있으며, 수상자들은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날 리셉션장의 약 3분의 1은 중화권 디자이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나 독일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릴 정도였다. 국적으로 보면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총 5팀. 일본 역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확연히 달라진 중화권 디자인의 위상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공식 촬영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기념 촬영도 끊임없었다. 한쪽에서는 취재진의 질문 세례도 이어졌다. 고양 현대모터스튜디오 프로젝트를 진행한 현대자동차 스페이스이노베이션팀은 독일 현지 방송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팀을 이끌고 있는 이연희 현대자동차 부장은 “독일의 유명한 공간 디자인 에이전시인 ATB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무려 5년 4개월이나 걸려 이뤄낸 성과”라며 “사내에 브랜드 강화를 위한 조직개편을 앞두고 큰 상을 받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리셉션이 진행되는 가운데 본 행사 1시간 전부터 우수상 격인 ‘위너(Winner)’와, 장려상 격인 아너러블 멘션(Honourable Mention) 수상자들의 입장이 이뤄졌다. 이들에게는 레드닷 어워드 주최 측에서 초청장이 제공되는데, 시상식인 만큼 수상 동선 등을 고려해 모든 좌석이 지정돼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 특유의 그랑프리 발표 방식…끝까지 묘한 긴장감 연출
이날 저녁 8시에 시작한 2부는 ‘레드닷 갈라(Gala)’라는 이름의 본 행사다. 콘체르트하우스 3층까지 좌석을 꽉 채운 전 세계 디자이너들 앞에서 차례대로 상을 받는 순서다. 다만 이때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영광은 오로지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에게만 주어진다.
페터 제흐 레드닷 회장의 등장으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간단한 인사말 이후 무대 상단의 대형 스크린에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들의 소개 영상이 차례대로 소개됐다. 첫 수상자는 현대자동차 사운드 브랜딩 작품인 ‘현대 사운드’. 발표 순서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우리 기업이 가장 먼저 소개된 점이 이채로웠다.
이후 하나씩 수상작이 차례대로 소개될 때 마다 큰 박수가 이어졌다. 6~7개쯤 발표가 되었을까. ‘띠링’하는 알림음과 함께 갑자기 화면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글자가 ‘그랑프리(Grand Prix)’로 바뀌었다. 대상에 해당하는 그랑프리는 67개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 중 올해 단 5팀만 선정됐다. 이들에게는 1만 유로(1311만 원)의 상금이 함께 수여된다.
즉, 그랑프리는 행사 말미에 한꺼번에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돌발적으로 발표되는 방식이었다. 만약 자신의 작품이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로 소개가 됐다면, 이는 동시에 그랑프리 수상이 불발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장치다.
첫 그랑프리의 주인공은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IT기업 ‘어도비’. 어도비는 자사의 디지털 아카이브 서비스인 ‘어도비 스톡’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 광고 영상을 출품했다. 해당 영상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애환을 코믹하게 풀어내 이날 행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이어 차례대로 수상작이 소개되다가 세 번째 그랑프리 수상작으로 LG전자의 ‘미래의 감각’이 발표됐다. 대형 OLED를 활용한 공간 조형물이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이날 첫 그랑프리 수상 소식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요시오카 토쿠진이 디자인을 맡았지만, 아쉽게도 이날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어도비와 LG전자 이외에도 카스퍼스키랩 등이 차례대로 그랑프리 수상자로 호명됐다. 네 번째 그랑프리 수상자에 뜻밖에도 한국의 ‘대기앤준 스튜디오’가 올랐다. 같은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조차 생소한 이름의 이 회사는 마포구에 작은 사무실을 가진 그래픽 디자인 전문 기업이다. 포스터는 종이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천에 인쇄를 해서 입을 수 있도록 만든 ‘북클럽 01’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모든 그랑프리 수상자가 발표되고 올해의 브랜드로 독일차 기업 아우디, 올해의 신인상(Junior Prize)로는 독일의 사라 뮬러가, 마지막으로 올해의 에이전시에는 마찬가지로 독일의 디자인 기업 ‘싱크(Thjnk)’가 선정돼 차례대로 무대에 올랐다.
# 레드닷 귄위의 원천은 디자이너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
2시간 남직한 시상식이 끝나고 난 다음 순서는 본격적인 파티 시간이다. 시상식이 열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걸어서 15분 떨어진 ‘이워크’라는 공간에서 ‘디자이너스 나이트(Designers’ Night)’가 밤 10시부터 시작됐다. 두 개의 건물을 빌려 하나는 수상작들의 전시 공간으로, 다른 하나는 술과 음식이 제공되는 파티 공간으로 꾸며졌다.
디자이너스 나이트의 끝나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주최 측은 ‘아침’이라고만 밝혔다. 전 세계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밤새 마시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파티 문화는 아시아 문화에는 아직 익숙치 않은데, 의외로 중화권 디자이너들은 예쁜 파티복까지 준비하며 스스럼없이 동화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행사 자체는 최우수상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수상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우수상인 위너 역시 결코 받기 쉬운 상은 아니다. 이날 시상식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온 위너 수상자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애완동물 앱으로 위너를 수상한 티엔드티 박현성 씨와 류혜원 씨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 소식을 듣고 회사 팀원들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세계적인 시상식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독일까지 날아왔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행사에는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다수 참가했다.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SCAD(The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재학 중인 이현아 씨도 그중 하나. 이 씨는 이진솔, 윤은비 등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을 출품해 위너를 수상했다. 이 씨는 “졸업 전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시상식에 참가하게 됐다”며 “졸업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디자이너로서 현업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체적인 시상식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기업 관계자들은 저마다 수상을 자축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단순히 시상식이라기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가 기업이 아니라 온전히 디자이너에게 초점을 맞춘 행사였다는 점이다. 보통 기업이 상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장을 보면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의 이름이 가장 위에 표시되며 클라이언트, 즉 기업의 이름은 아래에 표시된다.
해외는 물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대기업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전문 분야의 전문 에이전시가 맡게 된다. 즉, 돈을 지불한 기업보다는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디자이너나 디자인 기업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가령 시상식에서 하이라이트는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된다. 올해의 브랜드는 행사 중간에 발표된 반면, 올해의 에이전시는 행사 마지막에 소개되며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갑을’ 풍토가 여전한 우리 기업들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베를린=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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