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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노동계 돌아오라' 문재인 대통령이 전어에 담은 메시지

이명박 도시락은 규제완화, 박근혜 호화 상차림은 창조경제 상징

2017.10.28(Sat) 17:32:20

[비즈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28일 재계 총수들과의 만찬에 이어 10월 24일 노동계 대표를 초청했다. 이 때 나온 만찬 메뉴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경제정책 방향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계 총수와 노동계 대표를 만났을 때 내놓은 음식도 각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저녁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노동계 인사들과 만찬을 갖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 전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과의 식사를 도시락으로 해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 9일 만인 2007년 12월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찾아가 재계 대표들과 도시락 식사를 했다. 2008년 9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투자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 재계 총수들을 초청한 자리에서도 점심은 도시락이었다. 

 

2011년 1월 24일 전경련 회관에서 이 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출·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도 재계 총수들과 도시락 점심을 먹으며 회의를 했다. 정식 식사 대신 도시락을 제공한 것은 실무를 강조한 이 전 대통령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기업들에게 실무 지원을 빠르게 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를 보여주듯 이 전 대통령 때 기업을 위한 (부작용은 차치하고) 각종 규제 개혁과 함께 자원 투자, 4대강, 뉴타운 등 대규모 사업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노동계 대표와는 매년 4월 30일 근로자의 날에 훈·포장 수상 축하를 이유로 청와대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 이 전 대통령이 내놓는 메뉴는 비빔밥이 주였다. 노동계와는 거리를 두면서 노사화합을 요구하는 의미였다.

 

박 전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과의 식사에서 화려한 메뉴를 내놓아 구설수에 올랐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7월 2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재계 총수 17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이때 내놓은 오찬 메뉴는 캐비어와 훈제연어, 모차렐라 치즈, 농어구이, 한우 안심, 전복구이 등이었다. 단품으로도 고급인 요리가 줄줄이 나온 것이다. 

 

호화 메뉴가 제공된 것은 박 전 대통령 공약 사업인 창조경제에 대한 재계 총수들의 지원을 격려하고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재계 총수 17명은 전국 17개 광역시도 창조경제센터를 지원하는 기업 대표였다. 또 화려한 메뉴 이면에는 최순실에 대한 지원 요청 도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노동계 대표와는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함께 식사를 한 노동계 대표는 노사정위원회 참석자 정도였다. 냉랭한 관계는 정권 막판 최악으로 치달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월 노동 유연화 정책인 양대 침(일반해고 지침·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고 한국노총은 이에 반발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민주노총이 이미 1999년 정리해고 도입에 항의해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노총의 탈퇴는 정부와 노동계의 대화 단절을 의미했다. 이후 양대지침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노동계는 격렬하게 맞섰다. 양대지침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4개월 만인 9월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식사 메뉴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는 평이다. 재계 총수 만찬에 제공된 음식은 국내 최초 수제맥주 기업 세븐브로이의 맥주와 무 카나페(잘게 썬 빵에 채소나 고기를 올린 요리), 시금치와 치즈, 황태 절임 등이었다. 중소기업이 만든 맥주, 해독작용이 있는 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시금치와 치즈, 겨울철 냉·해동을 반복한 황태를 내놓은 것은 재계 총수들에게 중소기업과의 상생, 적폐 해소, 화합, 갈등·대립 극복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더불어 사는 경제’를 만찬 메뉴를 통해 강조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일자리 경제 △활력이 넘치는 공정경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성장 △과학기술 발전이 선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더불어 사는 경제’의 골격으로 삼고 있다. 과거 보수 정부가 해왔던 대기업에 대한 혜택은 찾아보기 힘들다. 

 

청와대는 노동계 초청행사에서 전어초무침(위), 콩나물밥(아래 왼쪽), 추어탕(아래 오른쪽)을 내놓았다. 사진=청와대


노동계 대표의 만찬 메뉴도 의미가 남달랐다. 추어탕과 콩나물밥, 전어 무침 등이 제공됐다. 추어탕은 노동계의 뿌리인 청계천 옆에서 80년 넘게 이어온 용금옥 식당에서 공수된 것이었고, 콩나물밥은 전태일 열사가 즐기던 음식이었다. 노동계를 예우한 것이다. 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를 내놓아 노동계의 대화 복귀를 부탁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 정상 등을 맞는 본관 접견실에서 노동계 대표와 사전 환담을 하고, 만찬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에서 진행했다. 재계 총수와의 만남을 외빈 접객에 쓰이는 상춘재에서 한 것과 비교하면 노동계 대표에게 격이 높은 대우를 한 셈이다. 앞으로 경제정책이 친(親) 노동으로 흐를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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