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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먹지 못하는 대추, 갯대추

갈매나무과, 학명 Paliurus ramosissimus (Lour.) Poir.

2017.10.24(Tue) 16:32:04

[비즈한국] 초가을이 영글어가는 계절, 제주도 모슬포 해안에서 가지 끝에 좁쌀만 한 작은 꽃이 달린 갯대추를 만났다. 이제야 피운 꽃은 언제 열매 맺으려는지? 다른 가지에는 이미 열매가 충실히 익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꽃을 피운 가지가 있다. 꿈을 위해 끈질긴 생을 이어가는 갯대추가 대견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좇아 평생을 고군분투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보는 것만 같아 애잔하기도 했다. 

 

제주도 모슬포 해안에서 만난 갯대추. 한쪽에선 열매가 익어가는데 아직도 꽃을 피운 가지가 있다. 사진=필자 제공


대추는 감, 밤과 함께 우리나라의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는 집마다 뒤뜰이나 밭둑에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가 자랐다. 가을에 ‘대추’를 보면 황희(黃喜 1363~1452)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떨어지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바로 고향의 정겨운 풍경과 멋이 함께 배인 시조다. 아늑한 시골 농촌 마을, 벼 수확 끝난 고즈넉한 들판에 햇살 밝게 빛나는 한 폭의 가을 풍경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바쁜 가을걷이 끝나고 모처럼 농사일 한가한 때에 휑한 들판 논두렁 밑 웅덩이 찾아 미꾸라지 잡고 물꼬에 살살 기어오르는 참게 잡아 집에서 빚은 농주 한 잔으로 무료함을 달래던 시절이 이제는 머나먼 전설 같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뿌려대는 살충제 농약으로 논바닥 생태계가 사막화된 지 오래다. 골목마다 울타리 지주목으로 심거나 밭둑에 그늘용 겸 과실수로 심어 놓은 감나무, 대추나무, 밤나무가 그립다. 붉은 홍시 불거지고, 다닥다닥 매달린 빨간 대추알, 활짝 벌어진 밤송이가 영글어가는 그 풍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대추알 붉어지고 바람이 불 적마다 알밤이 후두두 떨어지는 가을이면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야생의 밤을 줍고 묏감을 따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신기루처럼 피워 오른다. 시골의 야산에는 야생의 묏감나무, 밤나무에 고욤과 쥐밤이라 하여 주인 없는 과실이 열려 있었다. 그런데 야생의 대추는 없었다. 왜 감과 밤은 주인 없는 산에서 자라는 나무가 있는데 대추나무는 없을까? 어린 시절에 궁금하고 아쉬워했던 것 중 하나다.

 

갯대추를 처음 보기 전에 생각했던 것은 바로 야생의 대추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본 고욤이나 쥐밤처럼 갯대추도 갯가에 자라는 야생의 대추나무 정도로 생각하여 그 열매가 어떻게 생겼으며 그 맛은 어떨지가 매우 궁금했다. 그러나 갯대추를 보고, 알고 나서 막연했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갯대추는 기대했던 야생의 대추가 아니었다. 

 

갯대추는 야생 대추가 아니다. 열매(사진)도 대추와 달리 먹을 수 없다. 꽃이 대추나무와 비슷하고 해변에 자라 갯대추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진=필자 제공


갯대추는 우리 자생종으로 제주도의 특정 지역 바닷가에서만 자라는 매우 보기 힘든 희귀종이다. 높이 2~3m 정도의 관목으로 한때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하여 관리하던 나무다. 대추나무보다 전체에 억센 가시가 달리고 잎이 넓은 난형이다. 특히 열매가 보통의 과일 열매처럼 둥글거나 타원형이 아니라 둥근 꼴을 반으로 뚝 자른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이다. 열매는 아무 맛도 없는 건과로서 익으면 열매 껍질이 말라서 목질 또는 혁질이 되어 먹지 못한다. 대추와는 전혀 다른 열매이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나 긴 타원형이며 끝이 둔하다. 잎몸에는 3개의 큰 맥이 있고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다. 잎자루에는 털이 약간 있고 어린 나무에는 턱잎이 변한 가시가 있으나 오래되면 없어진다. 꽃은 6월에 피고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며 취산꽃차례로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꽃자루는 짧고 갈색빛이 도는 흰색 털이 빽빽이 난다.

 

갯대추는 잎과 줄기, 특히 꽃이 대추나무와 비슷하고 해변에 자라 갯대추라 이름 붙었다고 한다. 2012년도에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긴 했지만, 지금도 해안 개발로 자생지가 점점 파괴되어 보호가 필요한 종이다. ​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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