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횡령사건으로 중범죄가 인정된 피고인 의뢰인과 교도소에서 의견충돌이 있었다. 며칠 동안 심적으로 힘들었다. 범죄사실이 증거로 모두 입증이 됐기 때문에 항소심에서는 반성하고 선처를 구해 양형을 적게 받는 쪽을 택하자고 조언했더니, 의뢰인은 재판을 최대한 끌어서 미결수 상태로 지금의 구치소에서 더 지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결수가 돼 타 교도소로 이송되는 것이 겁나는 듯했다. 가족이 상대방과 합의를 보려는 상황이라 판사가 재판을 조속히 종결하지는 않을 테니, 그 사이 불필요한 증인신청으로 재판을 끌면서 시간을 보내나, 반성문 제출 후 합의에 필요한 시간 동안 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판을 미루는 것이나 시간상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쓸데없는 증인을 계속 부르면 판사는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재판만 지연시키려는 것으로 보아 결과가 악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뢰인은 며칠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수감실로 돌아갔다.
무죄에 대한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범죄의 경중과 증거 유무에 상관없이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그런 희망을 종교와 같이 마음에 품게 된다. 하지만 변호인은 그럴 수 없다.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더라도 냉혹한 현실을 숨겨선 안 된다. 변호인은 기적이 아니라 차선 또는 차악을 실현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교도소는 입구부터 부정적인 기운이 감돈다. 교도소는 외딴 곳에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당연하다. 가는 길이 쓸쓸하다. 입구에서 경비가 경례를 붙이고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변호사 신분증을 보이면 별 대화 없이 지나친다.
한참을 들어가면 시멘트 반죽이 그대로 굳은 듯한 건물 덩어리가 등장한다. 웬만한 1층짜리 식당 크기의 쇠문도 붙어 있다. 그 옆 어딘가 작은 창살문에 변호인 접견용 통로가 있다. 변호사 신분증과 휴대폰을 맡기고 몸수색을 받은 뒤 수감자 이름을 확인하는 절차에선 내가 교도소에 갇힌 사람이 된 듯하다.
세상과 분리됐다는 공포다. 사랑하는 사람들, 팔다리를 움직여 노동하며 웃고 떠들던 공간, 하얗게 잘 마른 이불을 돌돌 감고 게으름을 부리던 아침, 휴일의 맑은 하늘과 계절의 냄새, 영화관과 동네 카페, 이런 일상으로부터 차단되는 시간을 상상할 수 있을까.
변호인 접견대기실엔 무채색 정장을 입고 종이컵에 봉지 커피를 타 마시며 표정 없이 앉은 사람들이 있다. 변호사들이다. 신문을 보거나 졸거나 한다. 직원이 피고인 수감번호와 이름을 부르면 본인 이름인 양 ‘네’ 대답하고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 접견장소로 이동한다.
복도를 나서면 사방이 유리인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접견실이다. 수의(囚衣)를 입은 의뢰인이 앉아 있다. 한 번은 의뢰인이 본인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수의 안에 입을 내복을 사야 하니 영치금을 넣어달라고 한 모양이다. 연로한 아버지는 내게 전화로 “얘가 왜 수의를 찾느냐, 자살하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흥분하기도 했다. 염습 때 송장에 입히는 수의(壽衣)와 다른 한자라고 설명했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지 생각하며 우울함에 빠졌다.
앉자마자 의뢰인은 자신의 요즘 생활부터 재판에서 하고 싶은 말, 사건 당시 상황들을 두서없이 쏟아낸다. 사실을 부인하든 인정하든 결국 의뢰인은 자신의 심정과 느낌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울거나 아니면 차분해지거나, 후회하거나 아니면 억울해하며 길을 찾는다.
접견의 말미에는 스스로 자신의 태도를 정한다. 변호인은 업무와 관련된 조언 말고는 의뢰인의 말을 들어줄 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때가 많다. 대부분의 의뢰인은 접견이 끝나면 감사하다고, 도움이 되었다고 인사한다. 변호사는 하나하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진심으로 들어줄 뿐이다.
얼마 전 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가 자작곡을 불렀는데,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다들 모른 척해, 내가 주저앉을 때는. 다들 아는 척해, 혼자 일어섰을 때는.” 공감이 간다. 혼자 마음을 열고 말문을 여는 것은 힘든 일이고, 혼자인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도 어렵다.
수감된 사람은 철저하게 혼자다. 수감자의 시간과 공간에는 다양한 디테일이 있으며, 결심과 선택의 과정이 치열하게 진행된다. 그들을 위해 사회는 변호사라는 직군을 만들어 직업으로 종사하도록 해놓았다. 이것은 일이다.
접견을 마치고 나온 교도소 밖 하늘은 차갑게 푸르다. 회의가 엄습할 때 생각한다. ‘이것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임하면 나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약간의 구원이 된다.
류하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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