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 책받침 4대 여신 맏언니 '파라다이스'의 피비 케이츠

[비즈한국] “침 좀 고만 삼켜라. 어떻게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리냐”, “조용히 해. 몰입 방해돼. 너는 안 설레냐?”

1990년대 초반까지 으슥한 만화방이나 대학가의 허름한 다방에선 해적판 영화 비디오를 상영하는 곳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군사정권의 엄격한 심의 잣대에 걸려 극장에서 정식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도 무삭제 버전으로 볼 수 있던 얼마 안 되는 ‘어둠의 경로’​였다. 

이 시기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유통되며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한 대표적인 영화로 피비 케이츠(Phoebe Belle Cates) 주연의 ‘파라다이스’​(Paradise, 1982)가 있었다. ​ 

사하라 사막에서 조난당한 10대 커플이 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당시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입소문을 탔다. 영화에서 피비 케이츠는 본명 중간 이름인 ‘벨(Belle, 미녀와 야수의 여주인공 이름)’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10대 후반의 초절정 미모를 선보였다. 

대다수 남성들은 영화의 압권으로 그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주저 없이 꼽는다. 이 장면에서 남성들은 ‘우와’ 하는 탄성이나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그만큼 전성기 시절 피비 케이츠의 모습은 막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요정처럼 환상적이었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 한국 청소년들 세계에선 ‘책받침 4대 여신’​이 있었다. 1963년생인 피비 케이츠를 비롯, 브룩 실즈(1965년생), 소피 마르소(1966년생), 왕조현(왕쭈센, 1967년생)이 그들이었다. 인터넷은 물론 PC통신조차 없어 해외 유명 연예인들의 사진을 구하기 어렵던 시절, 청소년들은 네 미녀의 사진을 실은 연습장을 쓰거나 이들의 사진을 코팅해 책밤침으로 사용하면서 열렬한 팬심을 발산했다.

피비 케이츠는 책밤침 4대 여신 중 맏언니였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피비 케이츠의 매력은 같은 뉴욕 출신인 브룩 실즈의 고전적이며 서구적 미모와는 차별화 된 것이었다.

피비 케이츠는 동서양의 외모적 장점이 오묘하게 조화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5피트 7인치(170cm)의 매우 날씬하면서도 베이글녀의 체형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요인이었다.  

피비 케이츠의 유니크한 매력은 동서양인의 유전자가 결합되면서 생성된 것이었다. 러시아계 유대인 혈통인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와 달리 그녀의 외할머니는 필리핀계 화교 출신이었다.

피비 케이츠의 원래의 꿈은 배우가 아닌 발레리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발레 실력을 연마해오던 중 14세 되던 해 무릎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피비 케이츠는 아버지와 삼촌이 방송과 영화계에서 종사해오던 터라 연예계에 발을 담그게 됐다. 그녀는 모델로 데뷔한 후 몇 년 간 무명배우 생활을 하다가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파라다이스’에 출연하면서 전세계적 팬덤을 형성하게 됐다. 

피비 케이츠는 정작 이 영화가 완성본을 본 후 노출 신만을 크게 부각시킨 것에 대해 크게 반감을 표했지만 할리우드는 한동안 그녀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배역만을 제안했다. 

그녀는 ‘리지몬트 연애 대소동’​(Fast time at Ridgemont High, 1982), ‘​프라이빗 스쿨’​(Private School, 1983)에서도 청순하지만 성적인 매력을 동시에 가진 배역으로 출연했다. 피비 케이츠는 그 이후 노출을 요구하는 배역 출연을 자제하고 청순한 일반 배역이나 TV 미니시리즈, 뮤지컬 등에 출연했다. 

그녀는 전세계적인 흥행작인 ‘그렘린’​(Gremlins, 1984)에도 출연했지만 전성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할리우드와 팬들은 그녀에게서 ‘파라다이스’의 주인공 청순 베이글녀​ 세라(Sarah) 이미지만을 원했던 탓이다. 

단적인 예로 1987년 작 ‘천사와의 데이트’​(Date With An Angel)가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인 이 영화에서 타이틀 롤인 천사를 프랑스의 미녀 배우 엠마뉴엘 베아르(Emmanuelle Beart)가 맡아 환상적인 미모로 주목을 받았다. 반면 피비 케이츠는 푼수 끼 넘치는 패티 역을 맡아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으나 아름다운 그녀의 망가진 배역 연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피비 케이츠는 노래를 매우 잘한다. 피비 케이츠의 평소 목소리는 매우 낭랑한 편이지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면 한없이 윤기 흐르고 나긋나긋해지는 특성이 있다. 그녀는 ‘파라다이스’ 의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프라이빗 스쿨’의 주제가인 ‘Just one touch'를 직접 불렀다. 

1989년 피비 케이츠는 16세 연상의 중견배우 케빈 클라인(Kevin Kline)과 결혼하고 두 자녀를 낳으면서 활동이 뜸해지더니 현재는 연예계를 은퇴한 상태다.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던 그녀는 2005년 뉴욕에 ‘블루 트리’​(Blue Tree)라는 부띠끄를 개점해 사업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녀는 나이 차 많은 남편인 케빈 클라인과 불화 없이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피비 케이츠의 현재 모습을 보면 예전같은 청순 베이글녀의 이미지는 사라졌지만 외모의 역변 없이 연륜을 더한 미모를 소유하고 있다. 배우로선 짧은 전성기를 가졌지만 피비 케이츠는 ‘책받침 4대 여신’ 가장 평탄한 중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

소피 마르소는 현재도 고국 프랑스에서 왕성한 배우 활동을 하고 있지만 동거, 결혼, 이혼 등 인생사에서 굴곡이 심했다. 브룩 실즈는 한때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잇는 세기의 미녀’란 영광적인 칭호를 얻었지만 짧은 전성기와 외모 변화 및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실즈는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가정을 꾸렸고 예전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배우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왕조현 역시 숱한 남성들과 스캔들에 시달리다 캐나다에서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책받침 4대 여신’은 그 시절 청춘을 보낸 현재의 중년들에겐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브룩 실즈가 제일 예뻐”, “무슨 소리야. 피비 케이츠야”, “소피 마르소처럼 청순하게 예쁜 사람은 세상에 없어”, “세 여자 다 서양인이야. 왕조현이 제일이야. 천녀유혼!” 저마다 주장했던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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