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실패란 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인생에서 중대한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큰 사건에서 실패하면 충격에 빠진다. 진짜 패배 말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와 같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변호사는 패배가 일상적인 직업이다. 사람들은 긴 생애에서 한두 번 변호사를 찾거나 소송을 하지만, 변호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싸움을 한다. 삶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큰 승부를 매일같이 치러야 하니 극도의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소송에서 이기면 보상이 크지만 패소하면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아무리 패배해도 패배는 힘들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해고사건에서 패소했다. 의뢰인들과 카페에 앉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못했다. 바둑에서는 지면 상대와 마주 앉아, 또는 집에 와서 혼자 복기를 한다. 다음에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패소 후 복기는 어렵다. 패소로 인한 불이익을 내가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들다. 나는 패배감, 죄송함, 승소보수를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을 뿐이고, 현실의 고통은 의뢰인의 몫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지지 않으려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과정에 절박해야 하고 결과에 담대해야 하는데, ‘절박과 담대’ 그것이 같이 깊어질 일이란 말인가. 같은 일을 수년, 수십 년 해온 선배들에게서 슬기, 균형 잡힌 자세를 본다. 그들은 평소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다니는데, 중요한 순간 연륜을 드러낸다.
그날도 그랬다. 카페에서 내 옆에 앉은 선배 변호사가 첫 마디를 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나는 그때까지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했고, 결과에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의 사과가 마중물이 되어 의뢰인들이 말을 이었다. 판결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이었다. 우리는 고개만 끄덕이며 잘 들었다.
의뢰인들은 항소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모았다. 선배가 말했다. “저희도 판결에 불만이 있습니다. 송구하지만 항소심을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의뢰인들은 논의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선배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판결에 대한 설명을 했어야 되지 않았는지.
선배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선고 당일에는 감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의뢰인에게 사과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판결에 대한 설명과 비평을 하게 되면 변호사도 사람이다 보니 변명이 나올 수 있어서 의뢰인들이 더 실망하게 되니 되도록 이메일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라는 조언도 들었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벼슬이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보통 대단한 인품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는 알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대부분 모자란 인품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잦다.
‘저 사람도 저렇게 사는데, 나도 대충 살아야지.’ 이런 영향들이 훨씬 빨리 세상을 바꾼다. 위대해지려 하지 말고 사람 사이 최소한의 예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선배들을 보며 배운다. 인성, 인품, 지혜는 그냥 보여주는 것이다. 패소를 하면 ‘이 일이 안 맞지 않나’ 괴로워하다가도, 잠시 평온해질 때 조금 더 오래해서 단단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한다.
패소한 변호사, 의뢰인은 둘 다 방향 잃은 공격성이 마음에서 꿈틀댄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호사는 겸허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의뢰인으로부터 일체 권한을 위임받은 자로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진흙탕을 작대기로 긁어 올리듯 변호사의 언행이 경솔하면 의뢰인의 현실상황 판단과 이성에 혼란이 생기고 문제해결은 요원해진다.
아직 기회는 있다. 패배의 책임을 진솔하게 지고 마음을 위무하는 일부터가 시작이다. 실패한 이유 중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정직하게 설명하되 핑계로 삼지는 않아야 한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다. 타고난 성품이 모자라서 연륜이 더 필요한 까닭이다.
류하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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