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한숨이 깊은 곳이 있다. 강남권 주택 보유자나 다주택 보유자 이야기가 아니다. 전·월세를 살며 맞벌이 하는 2030 부부들의 이야기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 뒤 두 달, 정부는 후속 대책을 내놨지만 젊은 부부들의 ‘서울 내 집 마련’은 여전히 봉쇄돼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 속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봤다.
8·2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투기 수요 억제’다. 고강도 규제로 고질적 투기를 잡고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서민 실수요자는 보호 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뜻밖의 곳에서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 정책에 따르면 이들이 집을 사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 8월, 두 젊은 부부는 새 집 마련을 포기했다
신혼 2년차인 서른다섯 살 A 씨는 지난 8월 이사 계획을 미뤘다. 결혼 전 세운 계획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겨운 월세 생활이 이어지게 됐다.
A 씨 부부는 각각 사회생활 4~5년차다. 두 사람의 연봉을 합치면 8000만 원 안팎. 아직 아이는 없다. 결혼 전후 서울에서 집을 구하려 했지만 포기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전셋집을 구하려니 가격이 너무 높았다. 매물이 없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보증금 1억 5000만 원, 월세 70만 원인 오피스텔에 신혼집을 구했다.
8·2 부동산 대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잠시 기대를 걸었다. 정부는 “무주택자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고자 했다”며 “청약가점제 적용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청약가점제는 △무주택 기간(최고 32점) △부양가족수(최고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을 더해 가점이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제도다. A 씨는 청약가점제 세부 내용을 보고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포기해야 했다.
A 씨의 ‘점수’는 이렇다. 청약통장 가입기간 5년(6점, 1년마다 1점). 부양가족수 0명(5점, 1명 당 5점), 만 서른이 된 시점부터 무주택 기간은 3년 6개월(5점, 만 30세 이상부터 1년마다 2점). 총 16점이다.
지난 7월까지 서울의 평균 당첨 가점은 51.5점. 아파트 크기별로는 56~74점을 웃돈다. A 씨 점수는 절반에 못 미친다. 정부는 가점제 물량을 확대한다고 했지만, 이 점수로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 건 마찬가지다.
그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로 눈을 돌렸다. 혼인기간 5년 이내인 신혼부부가 대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1순위 조건은 임신 중이거나 자녀가 있어야 했다. A 씨 부부는 야근이 잦고 주말 출근도 적지 않다.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기도 어렵다. A 씨 부모는 귀농을 했고, 아내의 부모는 지방에서 살고 있다.
임신을 계획한 뒤 다시 도전해 보려 해도, 이번엔 소득이 발목을 잡는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 기준은 맞벌이인 경우 전년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20%(세전 592만 원, 3인 가구 기준) 이하다. A 씨의 소득은 이 기준을 초과한다.
새 집 마련은 아내와 결혼 전 함께 세운 계획이었다.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거지 근처 작은 아파트를 알아봤다. 6억 원이었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 전 3억 6000만 원을 대출 받으려 했지만, 지금은 대출 한도가 2억 4000만 원으로 줄었다. 보증금을 제외하더라도 2억 원 남짓 더 필요하다. A 씨는 다시 ‘월세’를 알아 보고 있다.
맞벌이 B 씨(37) 부부는 자녀가 둘이다. 결혼 4년 차로 서울 봉천동 20년 된 아파트, 경기도 안양 15년 된 아파트 순으로 이사 하며 전세를 살고 있다. 서울 아파트에 청약을 넣어 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85㎡ 이하는 모두 청약가점제로 분양된다.
B 씨는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작은 놀이터도 있고, 경비원도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은 것도 욕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10월, 달라진 건 없다
“주택시장의 국지적 과열을 진정시키고 시장 안정을 위한 주춧돌 정도는 놓지 않았나 싶다.” 9월 28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장관은 8·2 부동산 대책 후 강남 재건축 시장이 과열되며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이 확대된 측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불안 조짐은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언제든 더 강도 높은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고도 했다.
정부는 9월 20일, 8·2 부동산 대책의 후속 조치로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1순위 청약 자격과 민영아파트 분양에서 가점제 적용 비율을 크게 올리는 등 제도를 다시 고쳤다. 투기 수요를 줄이고 무주택 실수요자들에게 기회를 확대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앞서의 사례들처럼 젊은 부부나 1주택자면서 새 집으로 옮겨가려는 수요자의 기회가 봉쇄된 점은 그대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조치로 서울 전역과 경기 과천·성남시 분당구, 세종시, 대구시 수성구 등 투기과열지구에선 전용 85㎡ 이하 민영 아파트는 100% 청약가점제로 공급된다. 조정대상지역 내 전용 85㎡ 이하 주택은 가점제 적용 비율이 40%에서 75%로, 전용 85㎡ 초과는 0%에서 30%로 각각 상향됐다.
젊은 부부들은 높은 가점을 채우는 게 불가능하다. 무주택 기간은 총 84점 만점 중 최대 32점(38%)까지 쌓을 수 있다. 2016년 한국 평균 혼인 연령은 남자 32.8세, 여자 30.1세다. 40대 중반까지 무주택자로 지내야 최고 점수를 받게 된다.
부양가족 수는 무주택 기간보다 배점이 높다(35점). 가산 점수도 부양가족 한 명 당 5점이다. 부양가족 산정에는 배우자와 미혼인 자녀가 필수다. 2016년 출산율은 1.17명. 30대 세대주의 부양가족은 보통 2명(배우자, 자녀 각 1명)으로 15점이다. 만점에서 20점 부족하다. 아이 2명을 더 낳거나 부모와 한 집에 살아야만 만점이 가능하다.
획일화된 기준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부동산과 교수는 “지금의 부동산 대책으로 전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기회가 확대된 것은 맞다”면서도 “단 조건이 있다. 무주택 기간이 길고 부양가족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약가점제 기준이 구분 없이 획일화된 부작용도 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로또 청약’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며 “중소형 아파트와 대형 아파트를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등을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등 가점 기준을 맞춤 형식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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