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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채용 오히려 채용비리 증가할수도…취준생만 오락가락

정말 스펙 안보나요 vs 모두 비공개면 기준이 뭔가요?

2017.10.12(Thu) 18:22:41

[비즈한국] 하반기 채용시즌에 맞춰 취업준비생들(취준생)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공공기관 및 사기업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돼 채용전형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그런데 블라인드 채용으로 취업준비생과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자치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인사혁신처 등은 7월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앞선 6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경선 때 ‘주간 문재인’을 통해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공약했다. 당시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취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학력이나 첫인상으로 평가하는 채용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취업준비생과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라인드 채용은 이력서에 사진, 학력, 어학점수 등의 스펙과 출신지 등 정량적 평가 요소를 기입하지 않는 방식이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화한 뒤 사기업 등 민간부문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332개 공공기관과 149개 지방공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했고, 9월부터는 모든 지방 출자·출연기관으로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된다.  

 

기업은 각기 다른 양식의 이력서를 사용하고 있다. 통상 이력서는 사진, 나이, 학력, 학점, 어학점수, 자격증, 해외경험 등을 기본 정보로 요구한다. 기업에 따라 가족관계, 주거양식, 키, 몸무게, 흡연유무, 주량, SNS계정, 셀프소개 영상 등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1차 관문인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인·​적성 평가와 면접 전형을 통해 채용이 이루어진다.  

 

정부가 기존의 학력, 학점 등을 차별요소로 본 것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과정에서 학벌이나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취준생 입장에서는 학점이나 어학점수 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만큼 새로운 채용 과정에 맞추려 우왕좌왕하고 있다. 

 

취준생 김 아무개 씨(27)는 “명문대생은 아니지만 12년간의 정규교육과정과 대학수업에 충실했고 학점, 어학성적 등을 목숨처럼 관리해왔다”며 “블라인드 채용은 내가 기울인 노력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를 부정당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20대 후반 취준생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걸맞은 인재가 되기 위해 새로운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량적 요소를 배제한 블라인드 채용이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온라인 취업카페에서는 자격증, 어학능력, 학력 등을 기재하지 못하는 대신 자기소개서에 녹여내야 하나 고민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취준생은 “(자기소개서) 마지막에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하는데 학벌이나 영어성적 같은 것을 써도 될까요?”라며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느낌이라, 거부감이 들까요”라며 고민을 올렸다.  

 

채용을 하는 입장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원자에 대한 기초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평가 기준마저 명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원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보니 지원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과 지원자의 정보 비대칭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다.

 

블라인드 채용을 결정한 유통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블라인드 채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행한다. 1차 면접 전형에서도 지원자 기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모든 전형과정에서 블라인드를 시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으로 지원자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체 채용시험을 강화해 인재를 채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기업들이 시행하는 인적성 평가도 제한시간에 언어영역·​공간지각·​수리영역·​한국사 등 문제를 풀게 해 아이큐 테스트에 버금가는 평가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채용과정에서 시험이 강화되면 직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시험을 잘 치는 인재를 뽑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정된 기업 인사팀이 자기소개서를 일일이 평가하기가 불가능 하다는 점이다. 기업이 블라인드 채용을 위해 들여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는 것도 문제다.

 

또 다른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현실적으로 수만 명 자기소개서를 일일이 보기가 불가능하다”며 “학력 등을 제외하면 자격증처럼 실제 확인 가능한 것을 갖고 평가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블라인드 채용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학벌이나 스펙 대신 능력으로 평가하는 채용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장려한다. 하지만 취준생이 직무 전문성을 기르고 자신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인턴경험은 기회가 적을 뿐더러 그마저도 경쟁이 심하다.

 

기준이 모호한 블라인드 채용으로 채용비리가 증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차례 논란이 됐던 삼성그룹 채용청탁의 경우 삼성그룹의 자체 시험인 GSAT(Global Samsung Aptitude Test)를 통과하지 못해 채용청탁이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앞서의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정치권·관·​거래처 등 각계에서 청탁이 온다. 기존에는 기준 미달을 핑계 삼아 거절이 가능했다”며 “블라인드 채용은 기준이 없다 보니 청탁 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의도와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채용방식 전환에 앞서 기업 내부 의식 변화와 청탁 등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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