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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중국은 왜 금융개혁을 하지 않나

1970년대 한국 상황과 비슷…재무건전성 개선하려면 '그림자 금융' 개혁 필요

2017.10.10(Tue) 10:57:16

[비즈한국]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2017년 9월 21일 중국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6년 9개월 만에 한 단계 하향 조정하면서 과도한 부채 증가와 ‘그림자 금융’을 위험 요인으로 지적했다.*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24일 무디스도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a3에서 A1으로 역시 한 등급 강등하면서 “중국의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재무건전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 주요 부문별 GDP 대비 부채 추이. 자료: 블룸버그, 키움증권


중국의 부채가 급증하는 이유는?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 하향은 결코 좋은 뉴스가 아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 중국은 연이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도 문제가 되는 기업 부채를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바로 중국 기업들이 저금리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는 중국 은행의 대출 및 예금금리 추이를 보여주는데, 대출금리가 연 4.5% 전후에 불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중국 경제의 상황에 비춰볼 때 ‘극단적인 저금리’ 상황이라 할 수 있다. ​

 

왜냐하면 중국 실질성장률이 7% 전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에 이르기에 시장의 적정 금리는 9%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시장금리는 결국 실질금리와 인플레이션 기대의 함수이기에 실질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실질금리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현재 대출금리는 중국 경제의 수익성과 성장 속도에 비해 너무 낮기에 대출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대출 신청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중국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대출 세일즈에 나설 이유가 없다. 그리고 대형은행이 대부분 정부 소유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 은행들은 아무에게나 해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불운이 겹치거나 혹은 사기 대출에 직면할 경우, 부실 대출이 생길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영 상업은행은 가장 위험도가 낮은 대출처, 즉 국영기업에게 대출을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예금 및 대출 금리 추이. 자료: CEIC, 키움증권

 

 

그런데 문제는 중국 국영 대기업이야말로 ‘수익성’ 및 ‘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출을 해주면 안 되는 곳이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국영기업들은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에 대출을 그렇게 많이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특유의 관료제로 인해 혁신을 주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결과 중국 경제에 만성적인 문제, 즉 ‘그림자 금융’이 부각된다. 여기서 그림자 금융이란 자산관리 계좌 및 위탁대출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결국 ‘재(再)대출’이 핵심이다. 

 

고성장 및 저금리 여건으로 인해 자금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돈 가진 사람은 국영기업밖에 없으니, 국영기업들은 돈이 급하게 필요한 벤처기업이나 민간기업에게 넉넉한 마진을 붙여 재대출하며 큰 이익을 보고 있다. ‘그림자 금융’이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중국의 기업부채 증가는 ‘재대출’을 통한 돈 놀이가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저금리 여건에서 중국 기업들은 부채를 줄일 이유가 없으며, 더 나아가 부채 증가가 멈추는 순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 

 

중국만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을 펼쳤을까

 

이 대목에서 과거 한국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저축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낮게 금리를 유지하고 대출을 수출 대기업에게 밀어주는 정책은 한국이 ‘원조’격이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는 김두얼 교수 등이 최근 발간한 책 ‘한국의 경제 위기와 극복’에서 가져온 것인데, 1960년대 한국의 금리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자율 및 수익률 비교. 출처: 김두얼 등(2017), “한국의 경제 위기와 극복”

 

 

예를 들어 1972년 한국 경제는 무려 12.0%의 성장을 기록했으며, 도매물가도 14.0% 상승했다. 경제의 규모가 연 26% 이상 성장하는 상황이니, 적정 대출금리는 30% 전후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당시 은행의 대출금리는 단 6.0%에 불과했다. 은행예금이 12.0%인데, 대출금리가 그보다 낮으니 대출은 일종의 ‘특혜’나 다름없었다. ​

 

어마어마하게 부풀어오른 사채시장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결국 기업들이 의지할 곳은 사채(私債)밖에 없었다. 물론 가계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의 외형성장이 26%를 넘어서는데 12%의 예금금리에 만족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테니까. 

 

결국 사채시장은 어마어마한 규모로 부풀어 올라 1972년 약 1조 198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972년 한국의 명목 GDP 규모 42.2조 원의 약 2.8%에 이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사채는 누구의 돈이었을까?

 

사금융 시장의 사채 규모 추정(1964-1972). 출처: 김두얼 등(2017년), “한국의 경제 위기와 극복”


누가 기업에 사채를 빌려주었나

 

1972년 박정희 정부가 단행한 ‘8·3 조치’는 사채의 주인이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업에게 사채를 빌려준 사람(사채권자)은 다름 아닌 그 회사의 주주들이었다(68쪽). 

 

어디서 사채를 조달하였으며 조건은 어떠하였는지가 공표되는 과정에서 (중략) 사채권자의 실체가 밝혀졌다. 밝혀진 다수의 사채권자가 채무기업의 주주였던 것이다. 

사업체대표가 사업체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기업회계에서 지출케 하는 위장사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8·3 조치는 정식명칭은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이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63~64쪽). ​ 

 

첫째, 1972년 8월 2일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사채를 일주일 내에 전부 신고하는 한편 사채의 이자율을 은행 금리 수준(연 16.2%)으로 인하하고 원금은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토록 하는 것이었다. (중략)

 

둘째, 은행 등 금융기관이 기업에 대출한 자금 중 단기성 대출금의 30%를 장기저리자금으로 대환하였다. (중략)

 

셋째, 은행을 이용할 수 없었던 저신용/무담보의 중소상공업자 및 농림수산업자를 위해 신용보증제도를 마련하였다. (중략)

 

넷째, 산업합리화를 위한 자금 500억 원을 조성하여 산업합리화 기준에 맞는 기업에게 장기저리로 대출해주었다.  

 

이상과 같은 8·3 조치의 주요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이었고, 이 덕분에 사채권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정부가 8·3 조치 이전 이미 상당 부분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 중이었다(68쪽). 

 

국세청은 1972년 상반기 징수된 세액을 근거로 역추산해 볼 때, 기업의 사채 이용 규모는 약 1150억 원 규모인데, 이보다 더 큰 사채가 유통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를 적발하는 것과 위장사채의 출자전환이 조치의 주요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절대적인 ‘초과 대출 수요’ 때문이었다.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은 적은데 ‘저금리’의 수혜를 입기 위해 대출을 원하는 사람은 많았다. 결국 은행 입장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윤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61쪽). 

 

자금의 고리사채로의 이전을 조장한 것은 은행이었다. 은행은 사채액을 융자로 전환하여 예금고를 높이는 브로커 역할을 하거나, 위장사채를 활용한 탈세 문제도 빈번하였다. 국세청은 사채 총 유통고를 6016억 원으로 추정하고, 그중 78%인 4700억 원 정도를 400여 개의 대기업에서 융통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사실상 사금융시장의 핵심 발원지가 대기업이고 은행이 결탁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은행 입장에서 돈을 아무에게나 빌려줄 수 없다면, 신용도가 높은 부유한 고객(400여 개의 대기업·대주주)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최선이었던 셈이다. 대주주들은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이를 다시 기업에 재대출함으로써 큰 차익을 누릴 수 있었고, 기업들은 다시 이 돈의 일부를 은행에 예치(꺾기)하여 또 다시 대주주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조성하는 먹이사슬 구조가 형성된다. 

 

물론 이 구도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1972년 한국 정부가 8·3 조치를 단행하며 사채를 일시 동결하고 이자율을 조정한 것은 제1차 석유위기 발생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자 기업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부채의 증가로 달성된 고성장은 외부 충격이 발생하는 순간, 심각한 위기로 전환될 위험을 지니고 있기에 정부는 8·3 조치라는 초법적인 조치를 취하기에 이르렀던 셈이다. 


1970년대 한국=2010년대 중국?

 

이상과 같은 1970년대 초반 한국 경제의 상황은 현재 중국 경제 상황과 오버랩된다. 물론 1970년대 한국에 비해 중국은 월등히 뛰어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다. 3조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제규모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라설 정도로 놀라운 성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1970년대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再)대출 등을 통해 경제 전반에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그림자 금융’의 영역이 확산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상황에서 중국의 선택은 자명하다. 경제의 규모에 맞지 않는 정부 주도의 금융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업, 특히 국영 대기업들은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부채가 쌓여갈수록, 그리고 더 나아가 인위적인 저금리로 경제시스템 전반에 모순이 쌓일수록 위기에 더 취약해진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하루 빨리 개혁이 단행되기를 기대해본다. 

 

*한겨레신문(2017.9.25), “신용등급 떨어진 중국, ‘회색 코뿔소’ 달려오나”

**조선일보(2017.5.24), “무디스, 중국 국가신용등급 A1으로 강등…한국보다 2단계 낮아”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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