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들꽃나들이] 우리네 부용은 사라지고 미국부용만 남아…

아욱과, 학명 Hibiscus mutabilis

2017.10.03(Tue) 09:00:00

[비즈한국] 어느새 휘영청 달이 뜨는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왔다. 높고 맑은 가을 하늘에 한가위 보름달이 둥실 뜨면 달빛 아래 세상이 환해지고 마음도 풍요로워진다. 여름 내내 힘들여 애쓰고 가꾼 농작물이 익어가고 수확을 앞둔 계절이라서 그런가 보다. 추석은 가을 달빛이 가장 곱고 아름다운 밤이라고 한다. 둥글고 환하게 밝고 고운 용모를 ‘달덩이처럼 곱다’고 했다.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달처럼 고요하고 은은한 자태를 지닌 여인을 화용월태(花容月態)라 했다. 화용월태라 하면 연상되는 꽃이 있다. 바로 부용(芙蓉)이다. 환하게 밝고 고운 한가위 보름달과 부용의 꽃은 환상적인 궁합으로 보인다.

 

같은 아욱과의 무궁화와 접시꽃을 닮은 부용은 예로부터 추석 보름달과 잘 어울리는 꽃이었다. 사진=필자 제공


식물을 탐사하러 제주에 갔다가 부용(芙蓉)을 만났다. 서울 주변과 공원에서 요즈음 한창 풍성한 꽃을 피워 올리는 ‘미국부용’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옛 조상과 함께 지내온 중국 원산인 부용이다. ‘미국부용’은 초본이지만 ‘부용’은 목본이다.

 

부용(芙蓉)을 보면 꽃처럼 곱고 달처럼 고요한 자태, 화용월태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사람들은 부용을 ‘​화용월태’​라 하여 정원에 심어 즐겨 감상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연꽃을 연(蓮)이라고도 표기하지만 원래 부용(芙 연꽃 부, 蓉 연꽃 용)이 연꽃의 한자명(漢字名)이며, 요즈음 부용이라 부르는 꽃은 목부용(木芙蓉)이라 했다고 한다. 

 

부용은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 신라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미모가 너무 빼어나 고을 원님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죽은 신라 때의 ‘부용 아씨’ 설화가 있다고 한다. 부용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 생활 주변에 자라 이 땅의 자생식물과 다름없는 친숙한 꽃이 되었다. 또 조선시대 영·정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부용 상사곡(芙蓉想思曲)’이 있다. 기생 부용의 미모에 반해 백 년 언약을 맺은 주인공 김유성 선비, 부용의 미모를 탐내는 신임 감사의 수청 강요와 부용의 대동강 투신, 어부의 손에 구출된 후에 부용이 김유성의 과거 급제 소식을 듣고 ‘상사곡(相思曲)’을 지어 보내 두 사람이 만나 해로(偕老)한다는 줄거리이다. 심청전과 춘향전을 섞어 만든 것 같은 우리 국문학 작품이다. 

 

이렇듯 부용은 예전부터 화용월태의 상징으로 여겨 설화와 소설의 소재로까지 다뤄진 매력적인 꽃이다. 덧붙여 무궁화가 대한민국의 꽃이라고 말살 정책을 썼던 일제강점기 때 만주에서 독립 운동가들은 부용꽃으로 무궁화를 대신했으며 애국지심의 표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용은 아욱과 식물이라서인지 무궁화와 접시꽃을 많이 닮았으나 무궁화나 접시꽃보다는 훨씬 더 크고 화려하다. 원래는 연한 홍색의 꽃을 피운다. 그런데 최근에 다양한 색깔을 지닌 원예종이 개발되었다. 공원이나 정원 등 우리 주변에 심어진 대부분이 원예종 미국부용이다. 

 

부용(사진)은 나무, 즉 목본이고, 미국부용은 풀, 즉 초본이다. 요즘 화단에서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미국부용이다. 사진=필자 제공


부용과 미국부용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부용은 목본이고, 미국부용은 초본이라는 점이다. 부용은 겨울에도 지상부의 줄기가 살아 있는 관목이다. 미국부용은 겨울에는 줄기가 죽어 없어지고 뿌리만 살아 있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새로 싹이 자라 꽃을 피운다. 부용은 꽃의 크기가 지름이 10cm 정도이며 꽃 색깔이 연분홍이지만, 미국부용은 15~20cm나 되고 꽃 색깔도 흰색, 붉은색, 분홍색 등 다양하다. 또 잎 모양도 부용은 보통 5~7갈래로 얕게 갈라지는데, 미국부용의 잎은 갈라지지 않고 끝이 뾰족한 타원형이다.

 

예부터 아픔과 기쁨을 우리와 함께해온 부용을 보니 마음에 그리던 옛 고향지기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튼실한 나무줄기에 화사한 화용월태의 꽃을 피운 부용의 모습에는 부귀와 화려함과 당당함의 고운 자태가 흘렀다. 이러한 부용이 왜 서울과 내륙에서는 미국부용에 밀려나 이제는 보기조차 어려운 꽃이 되었을까?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온 부용은 이제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새로 물 건너온 북미 원산의 원예식물인 미국부용만 공원이나 도로변에 심기 때문이다. 조금 더 화려하고 추위에 좀 더 강하다고 미국부용 일색으로 조경을 하여야만 하는가? 예전의 부용은 있는지조차도 모르게 만든 요즈음 세태가 조강지처를 버리는 매정한 처사인 것만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부용도 미국부용처럼 주로 관상용으로 심었으며, 제주도에서는 야생으로 자라기도 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뿌리껍질을 해독, 해열, 관절염, 늑막염 등에 처방했다고 한다. 부용의 꽃말은‘매혹’, ‘섬세한 아름다움’, ‘정숙한 여인’, ‘행운은 반드시 온다’, 등이라고 한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추석 장보기? 신선식품은 전통시장, 가공식품은 대형마트
· [홍춘욱 경제팩트] 스위스는 어떻게 시계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나
· [썬데이] '추석의 사나이' 성룡
· [들꽃나들이] 다른 식물에 기생하는 ‘숲의 요정’ 수정란풀
· [들꽃나들이] 봉선화는 외래종, 물봉선이 진짜 우리 꽃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