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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변호인] 이혼소송, 상대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모두가 '지옥행'

'빨리 끝내자'부터 '최후까지 싸우자'까지 다양…변호사가 대신 욕 먹기도

2017.09.30(Sat) 16:08:15

[비즈한국] 변호사 일을 시작하고 꿈이 하나 생겼다. 제주도에 내려가 자전거 타고 낚시 하고 서핑을 즐기며 유유자적 사는 꿈이다. 함께 할 짝이 있으면 더 좋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결혼 제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혼사건들을 진행하며 안 좋은 모습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혼하려고 재판까지 오는 분들은 협의이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재산분할이나 자녀양육권에서 의견조율이 안 돼서다. 또는 한 사람은 가해자, 한 사람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인데, 이때는 재산, 자녀 문제보다 ‘축축하게’ 진행된다. 당사자에게는 눈물, 대리인에게는 땀이 난다는 말이다. 

 

결혼은 한 가지 모습이지만, 이혼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한번은 젊은 남성이 찾아왔다. 부인의 외도로 이혼소송을 원했다. 재판이 진행되자 부인 측은 외도를 인정했다. 그런데 그 전에 남편의 지속적인 폭행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나는 생각했다. ‘마음이 떠난 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결혼이 종료되기 전 외도를 하면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다. 몇 해 전 까지는 간통죄로 형사처벌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애를 할 때는 애인에게 두들겨 맞은 여성이 다른 상대와 교제하더라도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결혼 제도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재판에서는 폭행을 당했더라도 외도에 대해 일정 부분 따진다. 판사가 그렇게 판결하지 않더라도 외도를 한 자는 상대방과 변호사로부터 말과 글로 공격 받는다. 소송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느리기 때문에 형벌 그 자체다. 

 

폭행당하고 외도한 사람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고통에 시달리는 게 옳을까. 나는 폭행한 사람의 대리인이었으나 서면에서나마 폭행을 합리화하지 않고 반성했다. 상대방의 외도에 대한 지적은 최소한으로 하고 표현에 예의를 갖추었다. 그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는 재판을 조속히 종결하기 위해 양측을 설득해 조정을 신청했다. 첫 번째 조정기일에 조정이 성립됐다. 재산을 반으로 나누고 위자료는 묻지 않는 대신 아이는 나의 의뢰인이 양육하기로 했다. 결과만 보면 불필요한 진흙탕 싸움을 한 뒤 얻게 될 판결과 대동소이하거나 오히려 더 나았다. 말과 글로 할퀴고 다투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혼소송이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험난한 재판도 있다. 부부간에 큰 사고가 있진 않았지만 돈과 자존심 문제가 뒤섞여 10년 이상 꼬인 사례였다. 이쪽에서 A를 말 저쪽에서 B를 말하고, 다시 이 쪽에서 반박하고 C를 말하는 식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결혼생활 동안 묵혀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대하드라마처럼 쏟아졌다. 

 

양측은 서로가 지쳐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변호사들은 원초적 분노와 충동이라는 강물에서 한 몸 빠져나오기도 어려웠다. 판사도 여러 번 조정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결렬되니 상호 주장·반박이 끝날 때까지 재판만 열어주고 있었다. 

 

2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재판 직후 상대방 어머니가 법원 복도에서 내 팔을 붙잡고 면전에 소리쳤다. “우리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야 이 ××년아!” ‘저는 남자인데요’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는 가족들의 만류로 멀어져가면서도 나를 향해 ‘년’이 들어가는 욕을 몇 번 더 했다. 

 

내게 욕 한 게 아니라 며느리로 간주하고 화를 쏟아낸 것이다. 며느리인 내 의뢰인도 바로 앞에 있었으나, 차마 옛정이 떠올랐거나 어떤 복잡한 마음이 들어 당사자가 아닌 내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후 나온 1심 판결은 양측 모두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애초 상대의 완전한 굴복을 원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리인으로서 실패했다. 2심은 맡지 않겠다고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한 백발의 노부부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앉자마자 남편은 “변호사님, 이 사람이 이혼을 하자고 합니다. 부디 제가 잘못한 게 없다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할아버지, 판결 내리는 사람은 판사고요, 저는 변호사여서 말씀만 들어 드릴게요.” 그러자 부인이 조곤조곤 남편에 대해 얘기한다. 과수원 낙엽청소를 안 하고, 양치 후 거품을 욕조에 뱉고, 강아지에게 소리를 지른다는 등의 ‘혐의’​였다. 

 

부인 얘기로 한 시간 정도 지났다. 내가 말할 차례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 이제 할머니 이야기대로 잘 해주세요.” 남편은 반박주장이 없었고 부인이 일어나자 따라 나섰다. 창밖을 보니 두 사람이 나란히 맞은 편 백반집으로 들어갔다. 

 

백반집 옆에는 초록 잎을 품은 나무가 서 있었다. 그 너머 보이지 않는 뒤편에는 제주의 바닷가에서 누군가가 손을 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봤다.​ 

류하경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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