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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날벌레 수액 사건' 지금껏 당연했던 일에 대한 재진단

가장 큰 원인은 '수액 세트의 단가 없음'…이 시스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2017.09.28(Thu) 11:27:40

[비즈한국] 0. 5개월 된 아이의 수액세트에서 날벌레가 나왔다. 심지어 우리 병원 일이다. 학생 때부터 병원에 줄곧 있었지만 처음 들은 일이며, 당연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솔직히 그 점적통 안에서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금시초문의 일이니, 지금까지 당연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볼 사항이 많다.

 

 

1. 수액을 놓은 사람

 

수액은 대부분 간호사가 놓는다. 간호사는 원칙상 환자에게 들어가는 모든 수액과 세트를 항시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1차적으로는 수액을 놓은 간호사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만 나처럼, 대부분의 의료진은 수액과 수액 세트가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못한다. 당연히 멸균 상태가 유지되어서 나와야 하는 물품이며, 전국에 이물질이 들어간 수액 세트가 발견된 적도, 그런 것이 있다고 들은 바도 없다. 

 

모든 세트는 밀봉되어있고, 당장 뜯자마자 사용한다. 게다가 한 사람이 하루에 챙겨야 하는 수액은 오십 개에서 많게는 백 개가 넘는다. 정말 카트에 산처럼 쌓아 다닌다. 그 작업을 매일같이 몇 년을 한다. 바쁜 와중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너무나 당연한 수액 세트의 멸균 상태를 매일같이 확인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전국에서 한 달 소비되는 수액 세트는 천만 개가 넘는다. 당연히 의료진은 기계적으로 수액 세트를 뜯어서 건다. 그 물품이 나에게 왔어도, 나도 실수로 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액을 놓은 사람은 1차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의료인의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있다.

 

2. 이 세트를 구매한 병원

 

병원에서는 멸균 포장된 상태로 구매한 제품을 납품받으며, 일일이 뜯어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제품을 납품받게 되었는가. 기본적으로 수액 세트는 보험 단가가 전혀 없어 환자의 치료비에 일절 계산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병원에서 환자에게 주는 서비스와 같고, 단순 계산상 사용할수록 손해를 본다. 

 

그렇다면 병원 입장에서 수액 세트는 이문이 전혀 생기지 않고, 환자 치료에 전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며, 누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아보지 않고, 가격이 강제되어 있지도 않은 의료 용품이다. 같은 퀄리티가 보장되어 있다면 당연히 단가가 낮은 제품을 입찰해서 대량 구매해야 손해를 덜 본다. 

 

기본적으로 업체들은 전부 정부기관에서 의료 물품으로 퀄리티가 입증된 곳들이다. 1~2년마다 한 업체와 대량 구매 계약을 맺고 납품받아, 별 의심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3. 제작업자

 

‘멸균’되어 ‘정해진 규격’을 갖추고 ‘제품의 질’이 유지된 ‘의료 물품’을 납품해야 한다. 하지만 이 수액 세트의 납품가는 개당 현 시스템에서 약 230원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려도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엄격한 제작 환경과 검수 시스템을 만드는 것조차 전부 돈이다. 마진은 1원 단위로 정해지기에, 국내에서 완벽한 멸균 시스템으로, 엄격한 제품이 만들어지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당연히 생산 라인은 해외로 나간다. 

 

사고가 난 수액 세트는 필리핀에서 위탁제조로 만들어져 왔다. 제작업자가 벌레가 든 수액 세트를 판매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위탁한 필리핀 공장의 질을 감시감독하거나 관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일정 기준에서 인증을 마치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필리핀에서 ‘정해진 규격’을 갖추고 ‘제품의 질’을 유지하며 만들어 한국에 날아와 ‘멸균’해서 병원에 판매하는 소비자가가 230원이다.

 

4. 네티즌

 

“아무리 제조사가 잘못했어도 중간에서 체크는 가능하지 않나.”

“병원에서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가격만 따지고는 필리핀에서 만드는 것이 정상인가.”

 

5. 정부

 

기본적으로 수액 세트에 단가를 부여하지 않음으로, 한 달에 20억 원이 넘는 돈을 건보료에서 아낄 수가 있다. 의료기관에서 임의로 수액 세트를 더 사용하는 일을 방지할 수도 있다. 한푼 들지 않고 관리만 했으므로 나름대로 시장 이득을 보고 있던 셈이고, “당연히 너희가 알아서 잘 하던 일인데, 왜 이번 사건을 일으켰느냐”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는 완제품 품질검사를 하지 않은 해당 업체를 품질관리를 위반했음을 확인하고 제조업무정지를 내렸고, 관련 회사 대표를 소환했다. 10월에는 특별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시 말하면 그전에는 위반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 조사도 하지 않았다. 실은, 단가가 230원이고, 한 달에만 전국에서 천만 개가 넘게 사용되는 제품을 전량 조사한다는 방법을 만드는 것조차 무리다. 만들기부터 잘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 적정한 가격대를 정하고, 적정한 이문을 병원에게, 혹은 제조업체에게 주는 방법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가장 싼 수액 세트를 찾고, 생산 라인이 우리의 통제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안전을 감시 감독하는 통제 업무가 완벽히 발휘되어, 사건 이전에 조사를 하고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했다면 어땠을까. 둘 다 이루어졌다면 이번 사건으로 발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의료는 질보다 양적인 팽창을 염두에 두고 성장했다. 그 기조가 의료인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수액 세트의 단가 없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1차적으로 병원에서 오염된 수액을 놓은 일을 넘어서, 의료계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6. 수액을 맞은 당사자와 가족

 

실은, 당사자에게 이 모든 일의 이해를 부탁하는 것조차 염치없는 일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믿고 찾아간 병원에서 오염된 수액을 가져와서 자신에게 놓았다. 그것은 누가 생각해도 불쾌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의료계가 사과할 일이다. 그리고 의료계와, 몸을 맡긴 환자의 안전과, 이 시스템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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