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제주도 식물탐사를 다녀왔다. 며칠의 탐사 기간 중 한라산을 오를 계획이었으나 때맞춰 태풍 제18호 탈림(TALIM)이 북상 중이라서 한라산 등산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족은오름, 해변, 곶자왈 등을 탐사해야만 했다. 한라산을 등산하지 못하고 영실 입구에서 내려와 거린사슴오름 입구의 숲속을 탐색하다가 뜻밖의 희귀식물을 만났다. 식물체 전체가 온통 수정체처럼 하얗고 투명한 수정란풀이었다.
수정란풀은 수정처럼 투명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신비로워 보였다. 하얗게 투명한 잎과 줄기를 가진, 풀이라고 할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고 식물이 아닌 듯했다. 버섯 같기도 하고 약간 괴기스러워 보이기도 하며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다.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것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여 후대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들고 그 영양분으로 성장하며 사는 것은 엽록소를 지닌 식물뿐이다.
엽록소를 가진 식물은 발밑에 밟히는 아무리 하찮은 풀일지라도 햇볕, 공기 그리고 물로 탄수화물을 만든다. 신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고도의 문명과 기술, 지식으로 생명체의 DNA와 모든 유전 정보인 게놈(genome)을 파악한다는 인간도 식물처럼 햇볕으로 탄수화물을 생성하지는 못한다. 식물 이외의 모든 생명체는 식물이 만든 탄수화물이라는 영양물질에 의존하여 이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식물은 탄수화물의 생산자, 식물 이외의 모든 곤충과 동물은 탄수화물의 소비자라 부른다.
그런데 식물이라 해서 모두가 자신의 영양분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고 다른 식물에 빌붙어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물도 있다. 이른바 기생식물이다. 초종용, 백양더부살이, 새삼, 겨우살이, 수정란풀, 나도수정초, 라플레시아 등이 기생식물이다. 이들 대부분은 엽록소가 없어 자신이 필요한 영양물질을 생산하지 못한다.
이 중에는 엽록소가 있어 광합성을 할 수 있지만, 양분을 조금밖에 못 만들어서 다른 나뭇가지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반기생식물도 있다. 또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지만, 더 성장하고 제대로 자라려면 땅속의 질소와 인 같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땅속에 이런 영양분이 부족하면 어떤 식물은 벌레를 잡아먹어 영양분을 보충하는데 이를 식충식물이라 한다.
수정란풀은 엽록체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다른 동식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분해해 유기물을 얻는 희귀식물이다. 썩은 나무나 숲속 낙엽에 붙어서 부생(腐生)하는 기생식물이다. 덩어리처럼 생긴 뿌리에서 엽록체가 없는 몇 개의 꽃자루가 흰색으로 자라서 끝에 1개씩의 꽃이 밑을 향하여 달린다. 비늘과 같이 퇴화한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며 다소 톱니가 있다. 꽃은 9월 전후에 은빛이 도는 흰색 꽃이 피는데 꽃 속 암술 부분이 연한 노란색이다. 꽃받침조각은 1~3개, 꽃잎은 3~5개이며 안쪽에 털이 있다. 10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씨방은 둥글고 성숙하여 장과로 된다. 민간에서는 풀 전체를 기침과 해수(咳嗽)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약용하며 이뇨제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재배는 불가능하다. 햇빛을 받으면 윗부분이 타는 현상이 발생하고 기생할 수 있는 식물이 항상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처럼 하얗고 투명한 수정란풀 잎과 줄기를 어둑한 숲속에서 만나면 약간 괴기스러움에 오싹하며 으스스하기도 하다. 주로 숲속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번식하며 독특한 생김새와 새하얀색 때문에 ‘숲의 요정’이라는 별칭이 있다. 엽록체가 없이 다른 동식물의 사체나 썩은 나무에 붙어살고 새하얀 잎과 줄기 탓에 ‘시체꽃’이라고도 한다.
비슷한 식물로 나도수정초와 구상난풀이 있다. 나도수정초는 수정란풀과 같은 부생식물로 봄에 피는데 꽃 속 암술 부분이 암청색이다. 봄에 피는 것은 나도수정초, 가을에 피는 것은 수정난풀로 보면 무방하다. 구상난풀은 제주도 구상나무 밑에서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줄기는 연한 황갈색에 원기둥꼴이고 잔털이 있으며 6~7월에 개화한다, 줄기 끝에 여러 개의 꽃이 총상으로 달리며 꽃도 황백색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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