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역 작곡가 중 최고는 누구일까요? 많은 이가 있지만 패럴 윌리엄스를 뽑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작곡가임에도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솔로 곡 ‘해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그는 어떤 음악 인생을 살았을까요?
패럴은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드럼을 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채드는 색소폰을 연주했지요. 둘은 셰이 헤일리(Shay Haley)와 마이크 에더리지(Mike Etheridge)와 함께 넵튠스(The Neptunes)라는 이름의 밴드를 만듭니다.
지역 공연에서 그들을 주목한 이가 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 앨범을 총괄하며 전성기에 돌입했던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였습니다. 그는 넵튠스와 계약을 체결합니다. 마이크와 셰이는 사정상 빠졌고, 패럴과 채드만이 남은 채였습니다.
밴드 넵튠스는 테디 라일리 밑에서 조금씩 음악을 만듭니다. 둘은 전통적인 밴드라기보다는 프로듀싱 팀으로 활동했습니다. 흑인음악 뮤지션인 테디 라일리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요. 2000년대에 들어와서 둘은 저스틴 팀버레이크, 비욘세, 앨리시아 키스, 제이지, 스눕독, 넬리 등 수많은 팝스타의 히트곡을 작곡하며 음악계를 지배했습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세뇨리타(Senorita). 아이돌 밴드 엔싱크의 멤버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알앤비 스타로 만들어준 음악이다. 그의 뒤에는 수록곡 대부분을 작곡한 패럴이 있었다.
패럴과 채드는 사정상 함께하지 못했던 셰이와 함께 본격적인 밴드도 결성합니다. 엔이알디(N.E.R.D)라는 이름의 밴드였습니다. 이 밴드는 넵튠스 특유의 음악을 유지하지만 여기에 록적인 어프로치를 가미했습니다. 좀 더 ‘밴드’다운 느낌을 내기 위해서였지요.
엔이알디는 흑인음악에 록을 가미한 독특한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유행을 선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팝적인 느낌이 살아있어 대중성도 갖추고 있었지요. 다만 넘버원 히트곡을 쏟아낸 넵튠스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엔이알디는 3집까지 앨범을 내고 사실상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2010년에 4집을 냈고, 2015년에는 스폰지밥 영화에 사운드 트랙을 만드는 등 간간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엔이알디의 ‘쉬 원츠 투 무브(She Wants To Move)’.
이때까지의 패럴은 가수라기보다는 ‘보컬 피처링을 많이 하는 히트 작곡가’였습니다. 2006년 솔로 앨범을 만들었지만 경험에 가까웠지요. 리드보컬로 밴드 활동도 했지만, 밴드는 프로듀서만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넵튠즈는 활동을 점차 줄였습니다. 대신 패럴은 단독 프로듀서로 활동을 이어갑니다. 2013년 최고 히트곡 ‘블러드 라인(Blurred Line)’을 작곡하고, 에드 시런의 ‘싱(Sing)’을 만드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지요.
패럴은 유니버셜 뮤직과 솔로 가수 계약을 합니다. 다프트 펑크의 예에서 보듯 대형 기획사와의 계약은 큰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패럴은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만드는데요, 이 앨범에는 슈퍼 히트곡 ‘해피(Happy)’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술 더 떠 다프트 펑크의 앨범에 보컬로 참여해 팝 차트를 휩쓸기도 했지요.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켄드릭 라마의 곡 ‘올라이트(Alright)’에도 보컬 피처링을 해 의미까지 잡습니다. 패럴은 초기부터 특유의 느낌을 더한 가성 피처링을 선보였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딱 맞는 곡들을 만나 가수로도 대성한 셈입니다.
패럴의 ‘해피(Happy)’. 솔로 가수 패럴의 최대 히트곡이다.
패럴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커리어가 바로 영화음악입니다. 그의 최대 히트곡 ‘해피(Happy)’가 ‘슈퍼 배드 2’의 OST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그는 ‘슈퍼배드’, ‘스폰지밥’,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그리고 최근에는 ‘히든 피겨스’까지, 다양한 영화음악에 참여했습니다. 히든 피겨스는 제작에 참여해 오스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성과까지 거두었지요.
패럴은 패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특유의 패션 센스로 알려져 있죠. 한국에서도 모자를 쓴 세련된 스타일로 기억됩니다.
그는 패션 사업에도 과감하게 뛰어들었는데요,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BAPE를 발굴해 전 세계에 유행시켰습니다. 일본의 아티스트 타카시 무라카미와 협업하기도 했지요. 일본의 디자이너와 협업해 ‘빌리어네어 보이스 클럽(Billionaire Boys Club)’과 ‘아이스크림 풋웨어(Ice Cream footwear)’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내 역시 모델이자 패션 디자이너일 정도로 패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패션 사업 외에도 그는 다양한 사업적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작이 대표적이지요. 또 FOHTA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교육 사업입니다.
패럴의 커리어는 굉장합니다. 5년이면 쉽사리 뒤집어지는 음악계에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는 ‘꾸준함’이 눈에 뜁니다. 힙합이 팝 음악을 점령하던 1990년대 힙합 대중화를 이끌던 젊은 프로듀서가 지금까지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죠.
갱스터 래퍼로 기억되는 스눕독에게 패럴이 선사한 파티 음악 ‘드롭 잇 라이크 잇츠 핫(Drop It Like It’s Hot)’. 심플하면서도 대중적인 비트를 만드는 넵튠스의 재능이 제대로 발휘된 대형 히트곡이다.
심지어 그는 다양한 재능을 보여주었고,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 합니다. 밴드로도 4집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프로듀서로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절반은 넵튠스 음악이다’라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요. 솔로 가수로도 그래미상 주요 부문을 휩쓰는 슈퍼 히트곡들에 참여했습니다. 영화 작곡가로 성공을 거둔 건 물론입니다. 사업가로도 승승장구하고 있지요.
다양한 성공은 그가 가진 하나의 재능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춤추게 만드는, 유쾌하면서도 부드러운 힙합 음악을 만드는 재능 말이죠. 혹자는 그의 음악이 모두 비슷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슷함이야말로 그의 정체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체성이 20년 동안 사랑받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곡을 패럴답게 만드는 개성이 없었다면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하나의 재능으로 오래토록 세상을 사로잡은 프로듀서이자 가수이자 밴드 리더이자 패션 사업가, 패럴 윌리엄스였습니다.
김은우 아이엠스쿨 콘텐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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