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금세기 예술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서정의 회복이다. 예술가들이 서정을 되찾겠다니, 그러면 그동안 예술에서 서정을 버렸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서 기대하는 것이 서정성인데, 예술에 서정성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 현대미술 지고의 가치는 ‘새로움’이었다. 미술이 선봉에 서서 이를 위한 아이디어 생산에 몰두해왔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미술가로 대접받는 세상이다.
인간 본성인 감성을 자극해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서정성은 타고난 기질에서 나온다. 그게 예술적 재능이다. 서정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그런 감동의 힘으로 인류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런 특별한 능력을 자양분 삼아 자라난 서양 예술은 심지가 깊고 튼실한 몸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서정성 대신 예술의 동력으로 들어앉은 것은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는 그 어떤 것이라도 용납되었다. 새로움을 찬양하는 것이면.
추악한 것, 더러운 것, 파괴적인 것, 부도덕적인 것, 잔인한 것, 끔찍한 것, 엽기적인 것도 새로움의 논리로 포장하면 예술이 되었다. 심지어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조차 수준 높은 예술로 둔갑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정현은 이런 흐름에 반기를 드는 작품을 한다. 그는 동심의 세계를 드로잉으로 표현한다. 회화의 근본으로 돌아가 놀이적 감수성을 담아낸다. 어린이 낙서처럼 보이는 그림에서 생생한 서정의 힘이 보인다. 어눌한 형태와 다소 무질서해 보이는 선으로 채워지는 그의 회화가 서정의 생생한 힘을 보여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하정현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작업 방식 자체를 자신의 회화관으로 설정해 놓았다. 회화는 정해진 나무틀에 천을 씌운 화면(캔버스)에다 이미지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회화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는 나무틀에 씌우기 전의 캔버스 천에다 작업을 한다. 자신의 자유로운 드로잉 욕구를 그대로 쏟아내려는 생각이라고 한다. 정해진 화면에다 그리면 틀 속에 갇히기 때문에 생생한 느낌을 살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주장으로 보인다.
연필, 콩테, 크레파스, 오일 스틱 등 선을 그릴 수 있는 다양한 재료로 무심한 상태에서 드로잉을 한다. 거기에는 동물, 꽃과 같은 사물을 짐작케 하는 형태서부터 기호나 상징, 추상적인 선들이 겹쳐서 나타난다. 이런 작업 후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해 드로잉을 지운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낙서하듯 드로잉을 한다. 그리고 지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 그 자체를 하정현은 자신의 회화라고 말한다.
본능적 그리기 과정의 반복에서 서정의 힘이 생기는 셈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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