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의뢰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작은 사회봉사 모임의 전임 대표가 대표실에 난입해 본인이 아직 대표이니 직인을 가져오라며 점거 난동 중이라고 한다. 그날 오전 가처분 결정에서 이미 대표 임기가 끝났다고 했음에도. 전임 대표는 재직 중 절차도 없이 본인의 임기를 마음대로 연장하고 직원들을 부당 해고하는 등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를 싫어하는 압도적 다수의 회원들이 나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그와 소송으로 다투었다. 그는 왜 아직도 패악을 부릴까.
제법 큰 법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사장이 공금을 횡령하고 직원들을 성추행해 총회에서 투표로 제명한 사건이었다. 적반하장으로 이사장은 총회 의장과 성폭력 피해 직원들을 명예훼손, 무고죄 등으로 모조리 형사고소하고 제명이 무효라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직원들은 제명만 하고 조용히 끝내려고 했는데, 상대가 먼저 법을 내세우며 달려드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맞고소와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결과는 이사장의 주장이 모두 터무니없다는 판결이었고, 반대로 이사장이 피고소인이 된 형사사건에서는 유죄가 인정되었으며 민사사건에서는 직원들과 회사에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어주라고 법원이 엄히 꾸짖었다.
구성원들 대부분은 자신(전임 대표)을 원하지 않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터무니없는 소송을 걸어 싸우는 아집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그 사람의 변호사라면 수임료는 안 벌어도 되니 이렇게 조언해줄 것 같다.
“그냥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어느 정도 존중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면 되고요.”
그런 조언이 통할지는 의문이다. 자존감이 낮고 품격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조언에는 귀를 닫는 경향이 있다. 결국에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특히 그렇다. 자신의 의견과 행위에 대한 비판을 마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탓에, ‘공격 받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잦다.
사실 그는 겁이 나는 것이다. 공감과 대화, 성찰과 사과, 그리고 행동 개선을 통한 관계 회복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약한 자신이 버텨낼 수 있을까 겁이 나고, 누추한 자아가 또 들킬까봐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또는, 귀찮은 것이다. 설명하고 토론해 오해의 폭을 좁힌 다음 최선의 방안을 찾아 나서는 길이 번거롭다고 느낀다. 그 길에 나서본 적도 별로 없어서 방법을 모른다. 대화를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다.
독재자들을 보자. 명분이 없는 자는 논리와 이성을 마주했을 때 언성을 높이며 주먹을 휘두르고 만다. 낮게 형성된 자존감이 열등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민주적 공동체라면 명분 없이 날뛰는 자마저도 차분히 설득해 감싸 안는다. 대화, 성찰보다 법을 먼저 꺼내는 자는 평화로운 공동체의 적이라 할 만하다.
법은 최후의 보루다. 형사범죄의 피해자라면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수사기관으로 가야하지만, 사사로운 인간관계 갈등 및 사회활동 중의 분쟁인 경우에는 대화가 불가능할 때 가는 곳이 법원이다. 소통을 차단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해 사람들과 불화를 빚은 후 변호사 사무실이나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 속으로 혼잣말을 하게 된다.
‘법 되게 좋아하네.’
류하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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