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산 비리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7월.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수사 개시 2개월이 지났지만,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초기 수사 성과에 가이드라인이 되는 구속영장 발부율을 보면 처참하다.
KAI 분식회계 장부 삭제 등 방산비리 본질과 관계가 있는 여러 혐의들을 찾아 전‧현직 KAI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을 상대로 5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 준 것은 두 차례에 불과하다. 영장 청구 대상을 KAI 전‧현직 임직원으로만 국한하면 발부율은 25%로 뚝 떨어진다.
특히 하성용 전 KAI 사장까지 관여했을 것이라고 검찰이 보고 있는 유력인들의 자제, 친인척 채용 비리 부분 영장 청구와 기각을 놓고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폭발했다. 검찰은 ‘법원이 사건의 중대성을 잘 모른다’고 이례적으로 언론을 통해 법원을 비난했는데, 법조계에서는 ‘채용 비리’는 새롭게 두드러지는 수사 혐의이기 때문에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분석이 나온다.
“사실 채용 비리 수사는 검찰 입장에서 봤을 때 새로운 돌파구입니다. 20대 청년층의 취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힘든데, 있는 집 자식들은 부모나 친척의 청탁으로 좋은 직장에 쉽게 갔다고 하면 국민적인 공분이 생기지 않습니까. 검찰 입장에서 좋은 수사 동력임에는 틀림없죠.”
현직 부장검사의 설명이다. 그는 “자식을 대학교까지 보낸 부모 입장에서 좋은 직장을 얻었으면 하는 게 공통된 희망이지 않나. 하지만 그 전에는 암암리에 이뤄졌던 부분(채용 청탁)들에 대해 사회가 그냥 지나갈 수 없게 된 것이고 검찰이 공기업 영역에서 이런 부분을 찾아내 범죄 혐의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조심스러웠다. 상반된 입장이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이 KAI 본부장 이 아무개 씨에 대한 영장 청구 때였다.
검찰은 정치인이나 언론인 등 유력 인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KAI 부정채용에 관여한 혐의(업무방해, 뇌물공여)로 KAI 현 본부장인 이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 씨가 2015년 무렵부터 공채 지원자의 서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 10여 명을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했다고 밝혔는데, 한 지원자는 300등이 넘는 평가를 받았지만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씨가 한 차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불참하면서 ‘도주 우려’까지 더해진 탓에 영장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상황.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기각’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재판부는 “회사 내부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 등에 비춰 볼 때 피의자의 죄책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거주가 일정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노골적 취업 비리가 10여 명에 대해 반복됐다’며 이례적으로 언론을 통해 법원의 영장 기각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이 국민여론과 너무 동떨어지고 자의적인 것 아니냐”는 성난 목소리가 들끓었다.
하지만 법원의 설명은 다르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회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인 것은 맞지만,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채용 청탁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고 그 결정이 ‘부정한 것’이라고 법원이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마다 채용 규정과 방식이 다 있는데, 그 업무를 관장하는 본부장이 채용 평가 과정에 직접 관여한 것을 구속될 만큼 잘못했다고 법원이 영장청구 단계에서 판단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덧붙였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 역시 “채용이 크게 서류와 면접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고 봤을 때, 면접 과정이 있기 때문에 부정 청탁 채용을 입증하기가 더 어렵다”며 “얼마 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서 ‘우병우 전 수석의 아들 운전병 채택’ 때도 ‘코너링을 잘해 뽑았다’는 답변에 수사까지 확대하지는 못했었지 않느냐. 면접 때 채용 담당자들이 느끼는 ‘평가’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채용 과정을 ‘범죄로 처벌할 만큼 잘못했다’고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재판까지 이어질 이번 사건을 통해 ‘기업 채용 청탁 논란’의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선 부장검사는 “미국에서는 유력 정치인의 자제라고 하면 취업이 굉장히 쉽지 않나. 그 집안의 네트워크를 노린 기업의 목적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며 “‘이윤’이 목적인 기업 입장에 부합한다면 유력인의 자제를 채용하는 게 당연한 결정이지만, KAI와 같은 공기업 같은 사기업은 또 다른 빈틈이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재판을 통해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민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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