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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김영란법 논란' 애플 아이폰X 발표 행사 초청장의 비밀

애플은 자체 기준으로 매체 상대해와…자비로 간다 해도 행사장 못 들어가

2017.09.13(Wed) 18:50:33

[비즈한국] 기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해외 취재는 언제나 흥분되는 기회다. 단순히 공짜 해외여행을 떠나서가 아니다. 낯선 문화와 환경을 접하고 그 안에서 차별화 된 기사거리를 발굴해 낼 수 있어서다.

 

그 중에서도 IT 혹은 산업을 담당하는 기자라면 꼭 가보고 싶은 해외 출장 중 하나가 바로 애플의 신제품 발표 행사다. 기자는 지금까지 운 좋게 애플의 초청을 받아 다섯 번이나 현장에서 취재를 할 기회를 얻었다.

 

당시에는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는 일도 없어서 현장에서 발 빠르게 기사를 송고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기자 입장에서도 인사이트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이후 몇 차례 이직으로 인해 취재 분야가 바뀌면서 애플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애플의 초청을 받지 않더라도 신제품 발표나 WWDC 등은 기자로서도, 혹은 개인적으로도 챙겨야 할 중요한 이벤트다 보니 열심히 밤을 새워 라이브를 시청했다.

 

행사 시작 전 전 세계 수많은 기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발표 내용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애플 제공

 

그런데 ‘아이폰X’​ 발표 하루 전 꽤나 흥미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김영란법 때문에 한국 기자들이 애플로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며 이는 역차별이라는 한 언론의 보도로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기사의 댓글에는 ‘역시 기레기’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자비로 가면 되는 것 아니냐며, 김영란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우선 애플이 김영란법 때문에 언론사 기자를 초청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김영란법에서는 언론사의 대표자 혹은 임직원을 적용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언론사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언론사를 말한다. 신문, 방송, 인터넷신문, 잡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애플은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그 이상의 기준을 세우고 매체와 기자들을 상대해왔다. 가령 애플 언론 담당자와 식사를 하게 되면 더치페이를 하거나 혹은 각자 개인 돈으로 번갈아가면서 샀다. 기자와 하는 식사는 내부적으로 비용 처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기준인 3만 원이 아니라 커피 한 잔조차 마찬가지다. 그래서 애플은 보통 기자와 식사를 하기보다는 사무실로 불러 회의실에서 만나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애플도 취재 편의를 위한 왕복항공권이나 숙박은 공식적으로 제공한다. 초청에 따른 일종의 비즈니스 매너다. 하지만 이때도 호텔에 포함된 조식 이외에 식사 제공은 없다. 단지 행사 첫 날 공식 환영 만찬만 있을 뿐이다.

 

김영란법이 생기기 수년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중앙일간지 소속의 한 기자가 애플의 초청을 받아 행사에 참석했다. 발표 행사가 끝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접한 실리콘벨리를 취재하겠다며 렌터카 제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애플 담당자는 규정에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결국 해당 매체와 기자는 다시는 애플의 초청을 받지 못했다.

 

김영란법이 생긴 이후에는 애플이 기자들에게 왕복항공권이나 숙박을 제공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국내 법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한국에서 아무도 초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신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기자나 블로거를 초청했다. 이들은 김영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번 행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애플은 발표 행사를 대부분 실시간 중계해주고 있기 때문에, 굳이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취재가 가능하다. 다만 현장에서는 행사 직후 기자들에게 시연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참석자에게 유리하다. 사진=애플 제공

 

법이 그렇다면 언론사가 비용을 들여서 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문제는 행사장 자리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각 국가별로 할당된 자리 숫자가 정해져 있다. 자비로 간다고 해도 초청장이 없으면 행사장에 들어갈 수 없다. 과거에 자비로 행사에 참석한 기자가 있었는데, 이는 사전에 애플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담이지만 취재기자 입장에서 애플 출장은 상당히 빡빡하다. 별도 일정이 없다면 보통은 일요일에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 3시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다음날 오전 7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시차적응이 안돼서 잠을 설치면 어김없이 꾸벅꾸벅 졸면서 행사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행사가 끝나고 기사를 송고하고 나면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귀국한다. 전체 2박 4일의 일정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라이브를 보면서 기사를 쓰는 편이 몸은 더 편하다.

 

해당 보도가 나온 이후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례적으로 해명자료를 냈다. 외국 기업이 신제품 발표 혹은 홍보 행사를 위해 국내 기자들을 초청할 때, 세계 각국 기자들에게 제공되는 수준의 항공권, 숙박, 음식물을 제공하는 것은 청탁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예외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다만 예외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행사 관련 내용을 공개적인 방법으로 초청하고 특정 집단으로 대상을 한정하지 않거나, 즉 전문기자로 한정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 등 합리적인 기준이 소명되거나, 순번제로 동등하게 기회가 부여되거나 해야 한다.

 

경험상 애플은 그 세 가지 모두 부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공개 행사도 아닐 뿐더러 순번제로 기회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문기자와 같은 합리적인 기준을 소명하는 방법이 있는데, 사실 그것도 명확치 않다. 지금까지 애플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초청 기준은 ‘애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정도다. 애당초 기업이 누굴 초청하느냐는 그들의 고유 권한이자 선택의 문제다.

 

애플은 언론사의 위상보다는 기자 개개인의 역량을 본다. 그리고 한번 행사에 초청한 기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계속 초청하는 편이다. 보통 기자들은 어떤 기업이 개최하는 행사에 경쟁 매체 기자는 초청됐는데, 자신은 초청되지 않을 경우 소위 ‘물 먹었다’며 분노한다. 그래도 애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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